박희태 한나라당 대표가 서울시의회 의장선거 금품살포 사건에 대해 17일 사과했다. 지난 12일 김귀환 서울시의회 의장이 경찰에 체포돼 수사를 받기 시작한 지 엿새만이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이 당초 이 사건을 어물쩡 넘기려다 파문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뒤늦게 사과에 나섰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16일 공개된 서울지방경찰청의 김 의장에 대한 구속영장 신청서에 따르면, 그는 한나라당 소속 30명의 의원에게 모두 3900만 원을 건넨 것으로 나타났다.
엿새간 손 놓고 있다가 이제서야 "정말 죄송"
박 대표는 이날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한나라당 소속 김귀환 서울시의회 의장이 구속된 데 대해 국민과 시민들에게 정말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공개 사과했다.
이어 "아직 이 사건의 확실한 진상이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먼저 진상을 규명하고 여기에 따른 응분의 강력한 조치를 취해, '비리를 척결하려 했다'는 의지를 국민 앞에 분명히 보이도록 하겠다"고 말해 진상조사와 징계조치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혔다.
장광근 서울시당위원장도 이날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유감을 표시했다. 장 위원장은 "시의회 의장 선거와 관련해 의장이 구속되는 등 여러 의혹이 불거진 데 대해 송구함을 금치 못한다"며 "비록 본인이 시당위원장을 맡기 전 일이지만, 감독 소홀의 책임을 통감한다"고 밝혔다.
또 "수사당국의 수사 결과를 예의주시하겠다"며 "당의 명예를 심대하게 훼손하는 결과가 드러날 때에는 중앙당과 협의해 엄중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이같은 사과 표명은 '늑장 대처'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한나라당은 지난 12일 김 의장 체포 사실이 알려지고 난 이후 이날까지 엿새간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다.
전날(16일) 홍준표 원내대표가 "거대 여당에 걸맞은 자정 기능을 빨리 회복해야 한다"며 "최근 전국 기초광역지역 의장단 선출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작태는 중앙당 차원에서 빨리 윤리위를 열어 조사를 해야할 것으로 본다"고 밝혔지만, 뒤따르는 조치는 없었다.
최고위원들은 비공개회의에서 김 의장 구속 사건에 대해 당이 의견을 낼 지 논의했지만, "법원 판결이 나올 때까지 지켜보자"는 쪽으로 결론을 맺었다고 한다.
이번 사건에는 시의원 뿐 아니라 일부 현역 국회의원도 연루됐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한나라당은 아직 진상조사단조차 꾸리지 않았다. 서울시당도 이날 오후 4시 윤리위를 열 계획이지만, 연루 시의원들의 징계를 논의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장광근 위원장은 "당헌·당규상 기소가 돼야 당원권이 정지되고 1심에서 유죄판결이 나와야 징계조치를 할 수 있게 돼있다"라며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일단 수사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려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어 "오늘 열릴 윤리위도 현재까지 진행된 사건 상황을 보고하고 수사 결과에 따라 앞으로 어떻게 대처할지를 미리 논의해두는 자리"라고 덧붙였다. 또한 현역 국회의원 연루설에 대해서도 "의혹만 가지고 뭐라고 말할 수는 없다, (진상조사 여부도) 중앙당에서 판단할 부분"이라며 책임을 중앙당에 미뤘다.
야당 "한나라당 '돈 선거' 목불인견... 이제야 사과하나"
야당들은 이번 서울시의회 사건을 '돈선거'로 못박고 한나라당의 어정쩡한 대처를 비판했다.
김유정 민주당 대변인은 16일 "한나라당의 서울시의회 의장 돈선거는 절대권력은 절대부패한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 사건"이라고 비판했다.
박선영 자유선진당 대변인은 17일 논평을 통해 "김 의장에 대한 구속영장 신청서를 보면 돈 받은 장소는 사무실과 길거리·커피숍에서부터 영안실까지 천태만상이었다"며 "정말 목불인견이 아닐 수 없다"고 꼬집었다.
또 박 대변인은 "이런 총체적인 부패 상황에서 한나라당 대표는 오늘에 이르러서야 국민 앞에 죄송하다고 밝혔다"며 박 대표의 '늑장 사과'를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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