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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에너지의 포항저유소에 설치된 유류저장탱크 T-9. SK에너지는 지난 89년 이 탱크를 중유용으로 허가받았지만 15년간 등유용으로 사용해왔다.
 SK에너지의 포항저유소에 설치된 유류저장탱크 T-9. SK에너지는 지난 89년 이 탱크를 중유용으로 허가받았지만 15년간 등유용으로 사용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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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그룹의 계열사인 SK에너지가 지난 15년간 불법 유류저장탱크를 운영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SK에너지는 지난 93년부터 2008년 2월까지 중유용으로 허가받은 포항저유소의 유류저장탱크(T-9)를 실내등유용으로 사용했다.

지금까지 이곳에 저장해온 등유를 액수로 환산하면 수천억원대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SK에너지는 그동안 부당한 수단을 동원해 막대한 액수의 매출을 올린 것이다.

특히 SK에너지는 내부감사를 통해 이 같은 사실을 적발하고도 관련법상 처벌(500만원 이하 벌금)이 미약하다는 점을 이용해 제대로 된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유류저장탱크 불법운영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시정을 건의해온 한 간부에게 명예퇴직을 강요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SK에너지 측은 유류저장탱크 불법운영에 대해서는 "과거에 그런 사실이 있었다"고 시인했다. 

'중유용'으로 허가받아 15년간 '등유용'으로 사용

현재 SK에너지는 포항저유소(포항시 송도동 소재) 안에 8기의 유류저장탱크를 설치해 운영해오고 있다. 울산공장에서 수송된 기름을 이곳에 저장하고 있다가 탱크로리를 통해 주유소에 기름을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이 가운데 불법운영 문제가 불거진 유류저장탱크는 T-9탱크다. T-9탱크는 109만리터의 저장용량을 가지고 있다. 

T-9탱크는 지난 89년 소방서로부터 '중유 저장용'(위험물관리법상 제3석유류)으로 허가를 받았다. 애초에 SK에너지는 '실내등유용'(제2석유류)으로 허가를 받으려고 했다. 하지만 '위험물안전관리법' 등에서 규정한 '탱크 간 이격거리'를 충족하지 못해 '중유 저장용'으로 허가를 받았다.

위험물안전관리법 등에 따르면, 유류저장탱크를 실내등유용으로 사용할 경우 탱크 간 이격거리는 9미터 이상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T-9와 T-6(휘발유 저장용) 탱크 사이의 거리는 5.5미터에 불과했다. 애초에 부지가 협소해 등유용 탱크의 설치가 불가능했던 것이다. 

이렇게 관련법에서 규정한 이격거리를 충족하지 못해 '중유용'으로 허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SK에너지는 93년부터 올 2월 중순까지 '중유'가 아닌 '실내등유'를 T-9탱크에 저장해왔다.

포항저유소에 근무하다 지난 4월말 명예퇴직한 A씨는 "T-9탱크가 중유로 사용허가를 받았음에도 수급상의 이유로 용도변경 허가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올 2월 15일까지 15년 동안 실내등유용으로 사용해왔다"며 "허가를 받은 후 T-9탱크에 중유를 취급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A씨는 "89년 포항물류센터 저장탱크 건설 당시 등유 수요량이 증가하여 등유용 탱크가 많이 필요하게 됐으나 저장탱크 지역 내에 등유용 탱크설치 부지가 협소해 법적으로 설치 허가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며 "당시 등유용 허가조건이 충족되지 않음을 사전에 인지하고 계획적으로 중유용으로 신청했다"고 주장했다.

A씨는 "등유와 경유는 제2석유류로 분류돼 유종의 용도를 변경해 사용해도 문제가 없으나 제3석유류인 중유와 제2석유류인 등유는 법적 지정수량이 다르므로 용도 변경을 허가받은 후에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15년간 불법으로 저장해온 실내등유량은 총 4억3051여만리터(270여만 배럴)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금액으로 환산할 경우 3961억원(리터당 920원)에 이른다.

A씨는 "T-9탱크를 실내등유용으로 활용함에 따라 기존의 실내등유탱크(T-3)를 수요가 많은 경유용으로 전환해 운영함으로써 1450억원(경유 1억 리터)의 추가 매출을 올렸다"고 주장했다.

결국 SK에너지가 T-9탱크를 불법으로 운영하면서 얻은 매출은 5400억여원으로 추정되는 셈이다.  

SK에너지 감사팀이 2005년에 작성한 '내부품질심사 결과 조치 계획서'. 여기에서도 T-9탱크의 불법운영 문제가 지적되어 있다.
 SK에너지 감사팀이 2005년에 작성한 '내부품질심사 결과 조치 계획서'. 여기에서도 T-9탱크의 불법운영 문제가 지적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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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감사에서 적발하고도 불법운영 계속... 문제 지적한 간부 인사조치

그런데도 SK에너지는 이러한 불법사실을 묵인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심지어 포항저유소의 한 전직 근무자는 "관공서에서 점검을 나오면 중유를 취급하고 있다고 현장근무자에게 교육시켜왔다"고 주장했다는 게 A씨의 전언이다. 

SK에너지는 지난 2005년 하반기 내부감사에서 T-9탱크가 불법으로 운영해왔다는 사실을 적발했다. 감사팀의 '내부품질심사 결과 조치 계획서'라는 문서는 적발된 내용을 이렇게 적시해놓았다. 

'탱크(No.T-009)의 경우 B-A(중유) 용도로 신설되었으나 수급상의 이유로 93년부터 등유 용도로 사용해왔으나, 위험물안전관리법에서 요구하는 탱크간 이격거리가 충분하지 않아 인허가를 득하지 않고 사용하고 있음.'

감사팀은 '조치계획'에서 "등유용 탱크로 용도변경을 할 수 있는지 법률검토를 하되 법적 요구조건을 충족하지 못해 용도변경이 불가능할 경우 등유용으로는 사용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T-9탱크의 불법운영은 중단되지 않았다.

또 2006년 3월 포항저유소의 한 간부는 대구물류센터소장에게 '포항위탁사업장 내부 ISO 심사 시정관련'이라는 제목의 '메모보고서'를 올렸다.

'2005년 내부 ISO 심사시에 당사가 관리중인 포항위탁사업장 T-9 용도변경 사용과 관련하여 시정지시를 받았으나, 연말 등유수요 등을 감안하여 계속 임의 용도변경하여 사용해오고 있습니다만, 실내등유 수요도 감소하고 있으므로 기존의 등유탱크만으로 운영하고 T-9탱크는 사용을 중단하는 것이 맞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말씀하신 대로 향후 등유 수요 증가시에는 다소 탱크용량 부족으로 수급에 차질이 발생할 수 있으나, 배선/출하 등 관련부서와 협의하여 수급차질을 최소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됩니다.'

특히 앞서 언급된 A씨가 올 초 T-9탱크 불법운영의 문제점을 최태원 SK 회장, 김명곤 SK에너지 사장 등 최고위층에도 보고했지만 지난 2월 15일까지 실내등유를 취급해왔다. SK에너지는 2월 중순에서야 T-9탱크에 저장된 등유를 모두 비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A씨는 "2월 중순 등유 수요가 줄어들어 T-9탱크의 필요성이 없어지자 2월 18일 회사 경영진은 관할기관인 포항 남부소방서도 모르게 외부 협력업체를 통해 T-9탱크의 잔유를 비우는 작업을 마쳤다"고 말했다.

하지만 T-9탱크의 불법운영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시정조치를 요청한 A씨는 지난 4월 11일자로 인사조치됐고, 결국 4월 30일 명예퇴직하기에 이르렀다.

A씨는 "T-9탱크 불법사용의 문제점과 대책을 수차례 사장과 회장 등 경영진에 요청했다"며 "그런데 불법으로 부당 매출을 올린 관리자는 승진하고 문제점을 보고한 나는 경영진에 투서한 사람으로 찍혀 팀장에서 무보직 팀원으로 강등되는 부당한 인사발령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A씨는 "분식회계사건으로 국민의 지탄을 받아온 회사가 앞으로는 투명경영과 사회공헌을 외치고 뒤로는 자기 회사 뱃속만 채우기 위해 15년 동안 계속 불법을 자행했다"며 "SK에너지를 엄중하게 법적으로 처벌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포항저유소의 한 간부가 상사인 대구물류센터 소장에게 보낸 메모 형식의 보고서. 이 간부는 "T-9탱크의 사용을 중단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포항저유소의 한 간부가 상사인 대구물류센터 소장에게 보낸 메모 형식의 보고서. 이 간부는 "T-9탱크의 사용을 중단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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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에너지 측 "과거에 그런 사실 있었다... 지금은 비워둔 상태"

SK에너지 홍보실의 한 관계자는 17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과거에 그런 사실이 있었다"고 T-9탱크 불법운영 사실을 인정했다.

이 관계자는 "등유를 저장하는 포항저유소가 중유 제품을 취급하지 않다 보니 내부 필요에 의해 등유를 저장해왔다"며 "지적을 받고 나서 T-9탱크는 비워둔 상태"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2005년 내부감사에서 지적을 받고 적법하게 시정하고자 계획을 잡았는데 시정하는 데까지 좀 시간이 걸린 것"이라고 해명했다.


태그:# SK에너지, #불법유류탱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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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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