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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객님 개고기 드세요?"

가끔 듣는 질문이다. 그럴 때마다 이렇게 대답하지.

"예전엔 먹었는데 요즘은 안먹습니다."

 

아! 오해는 마시라. 주체성도 없이 서구 사상만을 숭배해서 멀리 하는 건 아니니까. 요즘의 개고기는 맛이 없다. 제 아무리 잘한다는 집에 가서 먹어봐도 도통 어린 시절 어머니가 끓여주시던 그런 맛이 아니다. 그러니 자연적으로 멀리 하게 될 수밖에.

 

맛이 없는 이유는 꼭 손맛의 차이 때문만은 아니다. 요즘 유통되는 고기는 황구가 아니라 대부분 몸집만 큰 도사견이다. 그런 개를 사료먹이로 키웠으니 우리네 황구만한 맛이 안 나는 건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언젠가 장충동에 있는 한 개장국집에서 도마고기를 주문했었다. 도마 아래로 흥건하게 흘러내리는 기름이라니. 개고기는 기름기가 별로 없어 식은 걸 먹어도 될 정도로 담백한 음식이다. 헌데 이 느끼함은 대체 뭐란 말이지?

 

안 먹는 두번째 이유는 신뢰의 문제이다. 개고기 유통 자체를 신뢰하지 못하니 맛을 제대로 느끼겠는가 말이다. 쇠고기처럼 원산지표시를 하지 않는 이상 맛있게 먹을 일은 별로 없을 듯하다.

 

그런데 맛객이 자발적으로 개고기를 주문한 사태가 벌어졌다. 지난 2월, 베이징에 있는 북한음식점 '해당화'에 들러서다.

 

해당화는 북한의 유명호텔인 고려호텔 직영점이다. 2005년 베이징국제미식절축제에서는 100대식당으로 선정되었을 뿐만 아니라, 우수상까지 받았다.

 

그러니 식재료와 맛에서 최상을 추구하겠다는 믿음, 그런 신뢰감이 있었기에 과감하게 단고기를 주문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새로운 맛에 대한 호기심은 맛객의 본능이기도 하고.

 

북경 북한 음식점에서 맛본 단고기

 

해당화를 찾아간 첫날 출입문에 다음과 같은 안내문이....

 

알립니다. 매월 8일은 휴식합니다. 미안합니다. 해당화 왕징분점과 란도분점은 영업합니다.

 

이런… 세상에 이런 황당함이라니. 할 수 없이 발길을 돌려 옥류관에서 아쉬움을 달랬다. 그리고 다음날 다시 찾았다.

 

먼저 명태식해로 입맛을 돋은 뒤 7색나물의 순수한 맛을 즐겼다. 만두찜은 만두피와 만두 '소'의 비율이 절묘했다. 중국식당에서 맛본 만두보다 덜 느끼하고 담백한 맛이었다.

 

기대하던 단고기 뒷다리찜이 나왔다. 단고기가 절반 정도는 국물에 잠겨있어 찜이라기보단 전골에 가깝다. 뒷다리 형태 그대로 썰어져 있어 다른 부위를 뒷다리라고 속이는 일은 없을 듯하다. 빨간 국물이 제법 먹음직스럽다. 보기엔 매콤해 보여도 자극적이지 않다.

 

단고기 특유의 담백함을 고스란히 살린 맛이랄까. 한나절 푹 고운 탓인지 육질도 참으로 보드랍다. 위장 약한 사람이 먹어도 금세 소화할 정도로 부담 없는 음식이다. 평양단고기, 역시 명불허전이로다.

 

마무리는 냉면이다. 메밀 면 가락 하나 흐트러짐 없이 유기대접에 앉히는 솜씨 좀 보라지. 단아하게 쌓아올린 꾸미는 어떻고. 정성이 보이는 냉면인지라 쉽게 손 댈 수 없는 자태는 한마디로 정갈함 그 자체다.

 

그윽한 육수에는 드러내지 않는 깊음이 있다. 면은 남쪽의 냉면 명가보다 탱탱한 편인데, 이는 전분이 많이 날 수밖에 없는 북한의 지리 특성이 냉면에 끼친 영향이 아닌가 싶다. 시각미와 맛 정성에서 모두 옥류관의 냉면을 압도하고도 남는다. 혹, 베이징에 갈 일 있다면 해당화에서 북한 음식의 진수를 느껴보기를 권한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단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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