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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탑사. 보배로운 탑이 있다는 사찰. 도대체 얼마나 보배로운 탑이기에 절의 이름에 '탑'이라는 글자가 들어 있을까? 대저 탑이라는 것은 부처님의 흔적을 모셔놓은 것일진대 그럼 이 사찰에 있는 탑에는 부처님의 흔적이 오롯이 스며 있단 말인가?

 

충청북도 진천군 연곡리의 보련산에 위치한 보탑사로 작은 발걸음을 옮겼다. 산세가 연꽃모양을 이루고 있다하여 연곡리라는 명칭을 얻은 소담하고 조용한 마을. 보탑사로 가는 길에는 투명한 새소리가 옥색 구름과 더불어 조용하게 흐르고 있었고, 연꽃을 닮은 마을은 단아하면서도 정갈한 품위를 지니고 있었다.

 

그 조용한 서기에 마냥 마음이 끌려 하릴없이 걸어보았다. 한참을 걸었을까? 저 멀리서 보탑사로 가는 길을 알려주는 이정표가 해맑은 웃음을 띠며 지나가는 과객을 맞이했다.

 

보탑사로 진입하는 길을 따라 조금 걸어가니 사찰의 입구 계단이 나타났다. 눈부신 화강석으로 이루어진 순백의 계단은 싱그러움을 지니고 있었다. 청정무구한 비구니 스님들이 계시는 도량이어서 그런가? 보탑사에는 가녀린 향훈이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귀엽고도 아기자기한 모습들이 맺혀 있었다.

 

보탑사는 연륜이 그리 오래된 절은 아니다. 지난 1992년에 지어졌으니 20년도 채 되지 않은 신생 절인 셈이다. 그러나 이 절을 지으면서 들인 공력은 20년이 아니라 200년도 더 되고도 남음이 있다. 왜냐하면 보탑사에는 한국 목조 건축의 모든 기술이 응축된 3층 목탑이 있기 때문이다.

 

이 목탑에는 전통 목조 건축의 모든 기술이 집약되어 있으며 천 삼백년 전에 존재했던 황룡사 구층 목탑의 기술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달리 말해 '현대판 아비지'들이 총동원되어 이 목탑을 만든 것이다. 그리하여 보탑사의 목탑은 천 삼백년의 그리움을 안고 이 땅에 비밀스런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현재 국내에는 보탑사의 목탑을 비롯하여 총 3개의 목탑이 있다. 속리산 법주사 팔상전과 쌍봉사 대웅전이 그것인데, 이 두 탑은 겉으로 보면 다층구조이지만 내부는 통층 구조로 되어 있어 위층으로 올라갈 수 없다.

 

그에 반해 보탑사 목탑은 계단을 따라 각 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구조여서 천 삼백년 전의 황룡사 구층목탑과 유사한 구조를 지닌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보탑사 목탑은 국내 유일의 각층 구조를 지닌 목탑인 것이다.

 

이 시점에서 참으로 안타까운 우리 역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기록에 의하면 4세기에서 6세기 사이에 이 땅에도 수많은 목탑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대륙의 갖은 침략과 바다 건너 왜의 침략에 의해 그 아름다웠던 목탑들이 거의 다 한줌의 재로 화하고 말았으니 비애를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힘없는 민족, 힘없는 나라의 설움이 그대로 느껴져서 그저 한숨만 나올 뿐이다. 이 땅에 비해 중국과 일본에는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목탑이 남아 있지 않은가. 그 유명한 중국 응현의 불궁사 목탑은 어떠하며, 일본의 법륭사 목탑은 또 어떠한가.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목탑을 연구하기 위해 이들 목탑을 견학해야 하니 그 설움이야 말해서 무엇 하겠는가. 

 

이런 민족의 비원을 부처님께서 돌보신 탓인가. 20세기의 여울이 넘어갈 즈음, 이 땅의 모든 아비지 후손들이 너도나도 팔을 걷어붙여 보탑사에 목탑다운 목탑을 만들었으니 정말 다행이라고 할 수 밖에. 그래서 보탑사의 목탑은 천 년, 이천년 후에도 이 땅에 소중히 남아야 할 귀중한 문화유산인 것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보탑사 목탑은 1층에서 3층까지 사람이 계단으로 오르내릴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리고 각 층마다 법당이 마련되어 있는 특이한 구조를 갖추고 있다. 황룡사구층 목탑 이래 1300년 만에 사람이 오를 수 있게 지어진 목탑인 셈이다. 탑의 높이는 백팔번뇌의 의미를 담아 108척, 32.7m로 되어 있으며 상륜부까지 포함하면 전체 높이는 42.7m에 이른다.

 

보탑사 목탑의 1층은 사방불전이다. 심초석에서 솟은 심주 안에 사리를 봉안하고 그 둘레에 999개의 조그만 백자 탑들을 놓았다. 1층의 동서남북에는 네 개의 편액이 걸려 있으며 각 방향에는 약사여래, 아미타여래, 석가여래, 비로자나불 등이 모셔져 있다. 결국 보탑사의 목탑은 단순한 탑이 아니라 사찰의 중심인 대웅전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2층에 올라가면 가운데에 자리 잡은 윤장대에 안치된 팔만대장경을 볼 수 있다. 부처님의 원력을 판자 하나하나에 새겨 널리 전하겠다는 비원인 셈이다. 앞으로 그 사방에 법화경17만자를 화강석에 새겨 봉안할 예정이라고 한다. 3층은 미륵삼존을 모신 미륵전이다. 이 3층에도 네 방향에 용화보전, 대자보전, 미륵보전, 도솔타전이란 편액이 걸려 있다.

 

또한 보탑사의 목탑에는 한 가지 비밀이 숨겨져 있다. 그것은 2층과 3층 사이에 있는 암층이다. 그래서 보탑사 목탑은 겉으로 보면 3층이지만 내부적으로 4층인 셈이다. 이 암층에는 인도와 중국, 우리나라, 일본에 있는 다양한 탑들에 관한 자료를 전시하였는데, 이 암층의 존재야말로 천 삼백년의 신비를 가진 구조라 할 수 있다.

 

당시 보탑사 목탑을 설계할 때 설계상 가장 큰 문제는 밖에서 볼 때의 층수와 실제 내부의 층수가 다른 점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점을 해결하기 위해 2층과 3층 사이에 암층을 만들어 공간을 확보했던 것이다. 이 목탑의 도감이었던 신영훈 선생은 암층의 존재에 대해 "신라가 자존심을 무릅쓰고 백제 장인 아비지를 초청한 것은 이 암층 때문이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지난 30년간 목조건축에 평생을 바친 김영일씨가 총지휘를 맡고, 살아 있는 목조건축의 대가 신영훈 선생이 도감을 맡은 보탑사의 목탑. 또한 이 시대의 진정한 도편수 조희환씨가 참여했고, 조선 단청의 맥을 이어 온 한석성 화사가 혼신의 힘을 발휘한 보탑사의 목탑은 진정 이 시대의 가장 뛰어난 예술품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한 낮의 태양은 지글거리는 열기를 지상에 뿌려대고 있다. 그러나 보탑사의 목탑 안은 너무나도 시원하다. 자연의 신비인지 인공의 신비인지 1층 법당 안에는 수박이 한 무더기 부처님 전에 놓여 있다. 이 수박은 일 년 내내 이곳에서 머물다가 동짓날에 사방 대중들에게 공양한다고 한다. 신기하게도 그동안 단 한 통의 수박도 썩지 않았다고 한다. 

 

전통기법대로 금속 못을 단 하나도 쓰지 않고 모든 목재를 짜 맞추어 3년에 걸쳐 지은 보탑사의 목탑. 공사에 참여한 대목들이 앞으로 천년을 장담하며 정성들여 지었다는 보탑사의 목탑은 가히 민족의 보물이라 해도 결코 손색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보탑사에는 이 목탑만 있는 것이 아니다. 보탑사에서 목탑과 함께 반드시 보아야 할 곳은 바로 산신각이다. 산신각의 지붕이 바로 너와지붕인 것이다. 그 발상이 너무 신선해서, 그 마음이 너무 아름다워서 꼭 보아야 할 곳이 산신각임을 잊지 말라. 그리고 산신각에서 내려다 본 보탑사 목탑의 부드러운 처마곡선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그래야만 보탑사의 진면목을 보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가는 길에 잠시 사찰 마당을 뒤돌아보았다. 그때 고요한 사찰에 내린 푸른 서기가 목탑의 처마에 그림처럼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그림 속에는 천 삼백년의 신비가 다정하게 웃음 짓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유포터에도 송고함


태그:#보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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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스토리텔링 전문가. <영화처럼 재미있는 부산>,<토요일에 떠나는 부산의 박물관 여행>. <잃어버린 왕국, 가야를 찾아서>저자. 단편소설집, 프러시안 블루 출간. 광범위한 글쓰기에 매진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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