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 산천단 근처에서 시작하여 동쪽으로 향하는 1117번 도로는 99번 도로(1100도로)를 가로질러 제주운전면허시험장 인근에서 95번 도로(서부관공도로)에 이어진다. 서귀포시내와 제주시내를 연결하는 대표적인 세 도로인 11번 도로(5.16도로), 99번 도로, 95번 도로가 해발 550미터 고지대를 지나는 이 도로를 통해 서로 연결된다.
제주시내에서 99번 도로를 따라 가다 산천단을 막 지나 산업정보대학에 이르기 전 해발고도 약 400미터쯤 되는 지점에서 1117번 도로 진입로가 있다. 이 도로에 접어든 다음 4킬로미터쯤을 지나면 한라산 진입로 중 하나인 관음사 야영장이 나온다. 그 관음사 야영장을 3킬로미터쯤 지난 거리에 탐라교육원과 제주과학고가 있다.
제주과학고를 지나 2킬로미터쯤 더 가면 이 도로는 과거 1100도로(해발 1100미터 고지대를 지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라고 부르던 99번 도로와 만난다. 제주공설묘지는 두 길이 서로 만나는 지점 남쪽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다.
제주시내에서 차를 운전해서 공설묘지에 이르는 시간은 20분 안팎이다. 공설묘지의 해발고도는 600미터에 이른다. 시내가 맑은 날에도 고개를 넘던 구름은 이 일대 산마루에 걸려 비를 뿌려대기 일쑤다. 게다가 주변이 푸른 나무와 풀들로 둘러싸여 있어서 무더운 여름 낮에도 근처 계곡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시원하다 못해 싸늘하기까지 하다. 이곳 바람에 맛을 들이고 나니 무더운 날이면 잠시 짬을 내서 자연이 주는 시원한 바람을 만끽하고서야 직성이 풀린다.
제주에는 한식과 음력 8월 1일에 조상의 묘를 찾아 벌초를 하는 풍속이 전해온다. 죽은 자를 위해 장례를 지내는 경우와 조상의 묘지에 벌초를 하는 날을 제외하면 이 묘지를 찾는 시민들은 거의 없다.
그래서인지 이 묘지에 오면 풀과 나무와 꽃과 새와 나비들이 어우러져 야생 생물의 천국을 이룬다. 매우 역설적으로 들리지만 죽은 자들의 터전은 살아있는 사람들이 자주 찾아오지 않으므로 인해 생명의 낙원으로 지켜지고 있었다. 야생 생물들 만나는 일도 이곳을 찾아서 얻어지는 기쁨 중 하나다.
묘지가 해발 600미터의 고지대 언덕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맑은 날 이곳에 서면 제주시가지와 바다가 훤히 내려다 보인다. 가끔 지나가는 구름이 이곳에 멈춰서 시야를 가리는 경우가 아니라면 이곳에서 제주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 보면서 한라산 산신령이나 누릴 법한 풍류를 체험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1117번 도로를 따라 이 묘지에 올랐다면, 내려올 때는 99번도로를 따라 내려오는 것이 좋다. 내려오다 보면 도중에 말이나 소를 방목해서 키우는 목장뿐만 아니라 사슴을 키우는 사슴목장도 있다. 아이들에게는 좋은 체험학습장이 된다.
게다가 이 길 중간에 물체가 중력을 거슬러 올라가는 수수께끼 같은 현상 때문에 '도깨비도로'라는 별명이 붙은 '신비의 도로'가 있다. 지나가는 길에 잠시 자동차 엔진을 멈추고 차가 저절로 언덕을 오르는 현상을 몸소 체험하는 것도 즐거운 경험이 된다.
며칠 밤 기온이 30도에 근접한 열대야가 지속됐다. 견디다 못한 아이들이 시원한 곳으로 가자고 졸랐다. 해수욕장을 갈까 생각했지만 밤공기가 뜨거운 것은 해수욕장도 마찬가지다. 짐을 챙겨서 공설묘지로 갔다.
챙긴 짐이란 가스버너, 냄비, 라면, 김치, 젓가락 등이 전부다. 더위가 더해질까 봐 물을 끓이는 것도 자제하며 살고 있다. 시원한 산마루라면 더위 때문에 라면 끓일 때 발생하는 열 따위에는 부담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아빠, 어딜 갈 거야?"밤에 야외로 나가자는 말을 듣고 진주가 즐거운 표정으로 물어왔다.
"응, 관음사 야영장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그 근처에 있는 조용한 들판으로 갈려고."아이들이 겁을 집어먹게 될까봐 묘지로 간다고는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차를 몰고 가도 보니 관음사 야영장에서 야영객들이 장작을 피워놓고 캠프파이어를 즐기고 있었다. 밤공기가 시원해서 장작을 피워도 그다지 덥지 않았던 모양이다.
충혼묘지 진입로 입구에 마련된 쉼터에 자리를 잡았다. 바닥에 보도 블럭이 깔려 있고, 벤치까지 있어서 아이들 눈에는 영락없이 작은 공원으로 보였을 것이다. 충혼묘지는 제주공설묘지로 들어가는 길목에 자리잡고 있다.
보름달이 이 일대를 환히 비추고 있었다. 그래도 거기에 밝기를 더하기 위해 준비해온 촛불을 밝혔다. 사람이 다녀간 지 오래 되었는지 보도블럭 틈 사이로 산야초가 높게 자라 있었다. 바람 한 점 없는 날이라 초는 꺼지지 않았다. 어릴 적 가슴 졸이며 봤던 <전설의 고향> 한 장면이 떠올랐다.
물을 넣고 라면을 끓였다. 집에서는 더워서 끓일 생각도 먹을 엄두도 나지 않는데, 이곳에 오니 보글보글 끓는 라면이 너무 맛있게 보였다. 라면을 끓이는 중간에 아들 우진이가 춥다며 옷을 한 겹 더 입겠다고 했다. 진주가 옷을 입혀 주며 누나 역할을 했다. 집에서는 매일 다투던 아이들이 밖에 나오면 이렇게 사이가 좋아진다.
식구들이 모여 라면을 맛있게 먹은 뒤 근처를 둘러봤다. 아이들은 달 밝은 밤 잘 보이지 않는 산길을 엄마 아빠와 걷고 있는 걸로 생각하고 즐거워했다. 하지만 밤 11시를 넘은 시간에 묘지 근처를 배회하는 아내의 말 속엔 근심이 가득 배어 있었다.
"내가 살다보니 밤중에 별 곳을 다 와보게 된다니까."근심어린 아내의 말을 애써 무시하며 주변을 걷고 있는데, 어디선가 풀 속에서 물체 하나가 급히 뛰어나왔다. 노루였을 것이다. 잠시 등골이 오싹해지면서 내가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됐다. 졸음에 겨워 아이들 눈이 감기기 시작했다.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넘었다는 것이다. 자정이 다 된 시각에 차에 오르면서 아이들은 "재미있었다"고 했다.
한밤중에 공설묘지를 혼자 찾아오는 것은 소름이 끼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유약해 보이는 이 어린 아이와 아내가 함께 있었으니 난 그곳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 걸음을 걸을 있을 수 있었다. 사십에 접어든 가장이 아이들에게 전하는 고백이다.
"내가 두려움 가득한 세상 가운데서도 아무 일 없는 듯 서 있을 수 있는 것은 너희들이 있기 때문이야. 너희들이 없다면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을 거야. 함께 있어서 행복하다."차에 오르자 아이들이 잠에 빠졌다. 얘들을 방의 이부자리까지 들고 가는 것이 부모에게 남겨진 마지막 과제다.
덧붙이는 글 | <이 여름을 시원하게> 공모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