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촛불정국은 당이 진화하는 과정이 됐다."

 

진보신당의 젊은 이론가인 장석준 정책팀장은 촛불시위가 원외정당인 진보신당에 미친 영향을 이렇게 평가했다.

 

"국회가 개원하기 2개월 전까지 우리의 연단이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일어난 촛불정국은 소중한 기회였다. (총선 이후) 적응 방향을 혼란없이 찾아갈 수 있고, 어떻게 해야 할지 단서가 잡혔다. 진보신당이 촛불의 수혜를 본 셈이다."

 

'촛불의 수혜'는 당원과 후원금의 증가에 그치지 않는다. 장 팀장은 "촛불정국에서 진보신당은 대중을 앞서가기보다 대중과 동행했다"며 "그런 과정을 통해 한국사회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첨단의 발전 측면과 시민사회의 능력을 학습했다"고 말했다.

 

"촛불을 너무 신비화하는 논설이 많아 걱정"

 

장 팀장은 16일 오후 여의도 당사에서 진행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21세기 대중사회의 가능성'이라는 관점에서 촛불시위의 사회적 맥락을 짚었다.

 

"20세기 대중사회와 지금은 확연하게 달라졌다. 20세기 때는 대중사회의 부정적 측면을 많이 얘기했다. 매스미디어가 사람을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 일차원적 인간으로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지금은 매스미디어가 진화해서 쌍방향 소통이 가능해지면서 대중이 스스로 통제하고 자기 것들을 만들 여지가 생겨났다. 이전에 부정적이고 비판적으로 봤던 것들이 이제는 대중이 성공할 수 있는 기반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사회의 정치 후진성과 달리 (촛불은) 21세기 대중사회의 가능성을 어느 나라 못지않게 선진적으로 보여준 게 아닌가 싶다."

 

장 팀장은 "촛불 과정에서 크게 반성해야 할 세력"으로 '정당'과 '노동운동세력'을 꼽은 뒤,  특히 "노동조합운동이 촛불에서 교훈을 얻지 않으며 안 된다"고 강조했다. 

 

"촛불을 동원한 주체는 82쿡, 소울드레서 등 인터넷 카페들이었다. 노조가 여성이든 중소기업 노동자든 그들의 생활문제에 다가가 그들을 조직화할 수 있는 조직이어야 했다. 하지만 기업별 노조라는 경직된 조직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시대가 요구하는 조직으로까지 가지 못한 것이다. 산별노조도 말로만 산별노조가 아니라 노동운동 경험이 전혀 없는 20대 청년이나 여성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조직이어야 한다. 파업 하나로만 수렴되는 동원논리가 아니라 다양한 논리를 갖추어야 한다. 그렇게 거듭나지 않으면 노동운동도 크게 정체될 것이다."

 

이어 장 팀장은 최근 쏟아지고 있는 '촛불 해석들'에 대해 "하나하나가 틀린 주장은 아니다"라면서도 "특정한 측면에서만 바라본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촛불은 다양한 얼굴을 가진 현상이다. '성숙한 대중사회'라는 것도 '집단지성'이나 '다중'으로 표현할 수 있다. 다만 우려되는 점은 특정한 측면을 너무 과장해서 신비화하는 논설이 많다는 것이다. 직접민주주의의 가능성을 통해 정당정치의 시대는 갔다는 식은 일면적 주장이다. (김원 박사처럼) 제도정치의 역할을 너무 보이콧하는 것은 분명 오류다. 반대로 촛불시위는 일회적 분출에 불과하기 때문에 정상적인 정당정치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도 역편향이다."

 

장 팀장은 "촛불에 현혹된" 혹은 "촛불을 신비화한" 등의 직설적인 표현을 써가며 비판적 시각을 이어갔다.

 

"촛불은 한국사회에서 전통적인 집단행동이다. 대의정치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은 상황에서 대중의 분출은 주기적으로 있어 왔다. 물론 촛불은 10년 전 집단행동보다 더 발전된 측면이 있다. 하지만 패턴은 반복되고 있다. 이는 근본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증거다. 일상적 대의가 안되고 있기 때문에 거리로 나오지 않으면 안 된 것이다. 그래서 대의구조는 그대로 놔주고 촛불의 집단행동이라는 측면만 가져가자는 것은 일면적 처방이 될 수밖에 없다."

 

"대의구조 놔두고 사회운동 전력하자는 것은 무책임한 주장"

 

자연스럽게 화제는 최근 '촛불의 미래'를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으로 옮아갔다. 최근 <오마이뉴스>를 통해 벌어진 촛불논쟁 중 가장 주목받은 주장은 김원 박사(<여공 1970, 그녀들의 반역사>)가 제기한 '진보정당 역할 마감론'이었다. 잠시 그의 주장을 다시 한번 들어보자.

 

"작년이 87년이 20년 되는 해였다. 좋은 정당, 진보정당의 실험을 더 할 게 남았나? 더 이상 거기에 목을 매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파산 선고까지는 아니더라도 분명히 한계가 있다는 것을 경험하지 않았나? 대중들이 자신들의 일상적 문제를 자기문제로 표출하기에는 정당은 너무 낡았다. 그런 것들이 명백한데 계속 (진보)정당에 목을 매야 하느냐? (진보) 정당이 대안이라고 얘기해야 하느냐?"

 

장 팀장은 "최근 정당정치의 한계를 지적하는 사람 중에 김원 박사가 가장 화끈하게 얘기한 것 같다"고 촌평한 뒤, 일부 젊은 지식인그룹에서 제기되고 있는 '정당정치 무용론'(혹은 '진보정당 역할 마감론')에 적극적인 반론을 시도했다.

 

"단적으로 잘못된 주장이다. 너무 일면적으로 나간 게 아닌가 싶다. 저는 이중의 변화 과정, 즉 이중혁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정당정치가 포함된 정당(체제) 수준의 변화도 필요하고, 또 정당정치가 포함되지 않은 시민사회 수준에서 사회운동, 대중의 직접 참여, 대중자치 등의 활동영역을 늘려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한국사회의 실질적 변화를 이룰 수 있다.

 

일본을 보면 더 명확해진다. 일본 시민사회의 진보적 역량이 한국 시민사회에 뒤진다고 할 수 없다. 오히려 더 진보적이고 민주적인 영역이 발전했다. 그런데 한국과 비슷한 정치양상을 보이고 있다. (보수적인) 전국단위 정치구조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정당정치를 해도 안되니까 보이콧하고 시민사회의 사회운동에 전력하자는 것은 무책임한 주장이다."

 

이어 장 팀장은 촛불을 바라보는 '최장집 사단'의 시각에 대해 "여전히 대의민주주의에서 정당정치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지적은 적절하다"면서도 비판적 평가를 곁들였다.

 

"박상훈 박사(후마니타스 대표)의 지적처럼, 역사장 가장 전형적인 민중권력의 사례라는 파리코뮨(Paris Commune)이나 소비에트(Soviet)도 역시 대의기구였다. 대의제에서 벗어난 직접민주주의는 아니었다. 하지만 (최장집 사단은) 대의제가 중요하기 때문에 대의제도 개혁되어야 한다는 점을 간과한 것 같다. 그런 점에서 국민소환제가 핵심적 요구일 수 있다. 민의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경우 선출주체인 민중이 대표를 소환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대의제를 개혁하는 것이다."

 

"촛불의 성과가 진보정치세력의 약진으로 나타나야"

 

또한 장 팀장은 '촛불의 역사성'을 언급하며 "촛불의 효과가 진보적 정치세력의 약진으로 나타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전에 있던 집단행동은 한국 제도정치권이 더 나은 방향으로 가는 데 큰 기여를 했다. 87년 집단행동은 파시즘 정부를 물러나게 한 뒤 여소야대 국회를 만들었고, 96·97년 총파업은 진보정당을 성장시키는 데는 실패했지만 김대중 정부라는 수평적 정권교체를 처음으로 만들었다. 그런 점에서 촛불의 성과가 기존의 정치스펙트럼을 넘어 진보적 정치세력의 약진으로 나타나야만 한국사회가 한발 더 나아갈 수 있다."

 

그런데 장 팀장의 얘기대로 촛불의 성과가 진보정당의 약진에 기여할 수 있을까? 이는 '촛불의 거리정치가 표로 연결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도 단순화할 수 있다. 그의 대답은 일단 '낙관적'이었다.

 

"약진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웃음). 진보정치세력도 나름대로 활동하면서 학습효과, 교훈을 얻었다. 그걸 제대로 살려 나가면 가능하다. 진보정치의 큰 한계 중 하나가 지역적 토대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지역은 보수세력이 다 장악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2년 후에 있을 지방선거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서울 중심이던 촛불의 힘이 지역으로 스며들 수 있도록 2010년 지방선거에서 구체적인 성과를 낼 수 있을지가 진보정치의 과제다. 이 과제를 제대로 수행한다면 촛불의 열망을 한국사회에 (더 오랫동안) 지속시킬 수 있을 것이다."

 

장 팀장이 이렇게 '낙관적 답변'을 내놓을 수 있는 배경에는 '촛불로 인한 20∼40대의 각성'이라는 변화가 자리잡고 있었다.  

 

"계급, 지역 등과 함께 세대가 중요한 변수다. (한국에서는) 10년 단위로 경험하는 게 많이 다르다. 그래서 세대 정체성이 정치적 의견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변수가 된다. 촛불 정국에도 50·60대 이상은 거의 안움직였다. '한국은 미국의 뜻을 거슬러서는 안 된다'는 그들의 보수적 가치체계가 이런 격변기에도 안 바뀐 셈이다. 

 

반면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바람의 한축을 이룬 20대의 성장에 대한 기대는 촛불을 거치면서 분명하게 정리됐다. 20대가 보수로 쏠린 것은 경제성장에 대한 기대심리였다. 하지만 촛불의 주체로 참여하면서 정리됐다. 또 노무현 정권의 실정 때문에 의기소침했던 30·40대가 '이명박 반대'로 정리됐다. 이렇게 가치 혼란의 상황이 일정하게 정리되면서 정치세력들이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여기가 마련됐다."

 

"인터넷에서 숙의하고 거리에서 행동하는 아고라모델 주목해야"

 

문제는 '촛불의 열망을 어떻게 정당정치에 담아낼 것인가'에 있다. 여기에 장 팀장뿐만 아니라 진보정치세력의 고민이 있다. 장 팀장은 "인터넷과 거리가 서로 소통하며 환류했던" '아고라 모델을 하나의 대안으로 내놓았다. 

 

"아고라와 거리가 소통하는 모델이 정당정치에 도입되어야 한다. 아고라에서 숙의(熟議)하고, 거리에서 행동하는 '아고라 모델'을 정당이 수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21세기에 걸맞는 대의제 개혁과 관련돼 있다. 아고라가 선(善)의 공간만은 아니지만 중요한 것은 자생적으로 걸려지는 매커니즘이 작동한다는 점이다. 정당이 그런 매커니즘에 주목해야 한다. 아고라에서 끝나지 않고 (숙의해서 합의한 내용이) 거리로 연결됐기 때문에 촛불이 가능했다." 

 

장 팀장은 '기존의 정당모델'과 '아고라모델'을 대비시키며 자신의 논지를 전개해나갔다.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기존의 정당모델은 계몽적 모델이었다. 보수정당이든 진보정당이든 정당은 특정한 지식이 모여있는 중심점이었다. 그런 체제를 갖고 대중을 설득하고 교양한다. 하지만 아고라모델에서는 시민들이 직접 발언한다. 게다가 인터넷에만 머물지 않고 행동으로 이어진다.

 

정당 자체가 광장이 될 수는 없지만 정당 앞에는 광장이 열려 있어야 한다. 정당은 그 광장에서 대중을 만나고 소통해야 한다. 정태인 전 비서관이 '넷의회'를 제안했는데 그걸 구체화해보려고 고민중이다. '말랑말랑한 국회'를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이런 넷의회가 활성화되면 진짜 국회도 말랑말랑하게 변할 수 있을 것이다."

 

장 팀장은 "기존의 국회 안에 갇혀서는 (아고라모델을 적용한) 활동을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장 팀장은 "대의제가 항상 그렇듯 정당이 대중의 열망을 100% 채울 수 없다"며 이를 '지도력의 문제'로 풀 것을 주문했다. 

 

"진보정당은 대중의 열망을 상징할 수 있는 지도자군을 형성해야 한다. 87년에는 김영삼, 김대중이라는 지도자군이 있었다. 지금 대중들이 진보정당을 대안으로 여기지 않는 것은 진보정당의 지도자들이 그런 정도의 지도자군으로 부상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결국 지도자 후보군들이 대중들과 부대끼면서 창조적인 정치활동 상을 만들어 대중들에게 인정받는 수밖에 없다. 다만 노회찬, 심상정, 강기갑 등 잠재력을 가진 지도자 후부군이 나왔다는 점에서 그리 비관적이지는 않다."


태그:#촛불논쟁, #장석준, #진보신당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