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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디한 그녀들의 식사 브런치

 최근 한국에 상륙한 디저트 숍 '페이야드'의 인기메뉴 '애플타틴'
최근 한국에 상륙한 디저트 숍 '페이야드'의 인기메뉴 '애플타틴' ⓒ 정지은

평소 트랜드에 민감하기로 유명한 선배가 맛있는 걸 사주겠다며 나를 이끌었다. 그리하여 도착한 곳은 롯데백화점 명품관 꼭대기 층에 위치한 디저트 숍 '페이야드'.

'페이야드'는 <섹스 앤 더 시티>에서 캐리가 "뉴욕에서 최고의 디저트를 먹을 수 있는 곳!" 이라며 특유의 행복한 표정을 지은 장면으로 유명한 그 곳이다. 그 곳은 아직 이른 시간 임에도 불구하고 한 눈에도 스타일리시해 보이는 여자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들은 저마다 한껏 차려입고 브런치를 즐기고 있었다.  

<섹스 앤 더 시티>에서 우리나라 여자들이 가장 열광하며 받아들인 것은 브런치와 하이힐이었다. 특히 브런치는 서울 강남과 삼청동 일대에 수많은 브런치 전문점을 양산해냈을 정도로 열풍을 낳았다. 심지어 이태원 한 카페의 경우 밤까지 '브런치'를 판매한다. 주말의 경우 예약을 하지 않으면 1시간 이상 기다려야만 할 정도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실제 뉴요커들의 '브런치'는 불가피한 선택일 뿐

'블랙퍼스트'와 '런치'를 합한 '브런치', 우리나라에서 '아점'(아침 겸 점심)을 뜻하는 이 식사는 어느새 멋진 의상을 차려입고 강남이나 이태원에서 먹어야 하는 고급 음식이 돼버렸다.

즉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브런치는 필요에 의한 식사라기 보다는 하나의 '이벤트'성 식사로 자리 잡은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아점' 하면 주말에 늦잠을 자고 집에서 대충 끼니를 때우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와 같은 의미임에도 '브런치' 하면 좋은 옷을 입고 멋진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실제 뉴요커들에게 브런치는 어떤 의미일까? 뉴욕에서 2년간 유학 생활을 했다는 취업준비생 박미정씨는 "뉴요커들에게 브런치는 불가피한 선택"이라며며 "좁아터진 아파트에서 음식을 해먹을 상황이 여의치 않은 이들이 점심시간 전 문을 여는 식당에 나가 비슷한 사정의 사람들과 여유로운 늦은 아침을 먹는 것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이어 "미국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에서 브런치 붐이 일기 전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점을 먹었다"며  "브런치는 상술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대다수 브런치 카페는 마치 서양 음식을 식당에 가서 먹어야 브런치인 것 같은 인상을 심어 준다. 브런치 카페를 표방한 그 곳에서는 거의 서양식 음식을 팔고 있고, 마치 그걸 먹어야 브런치인 것처럼 홍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껍데기만 따라한다고 뉴요커가 될까? 

 우리나라 여성들에게 뉴욕에 대한 환상을 심어준 영화 '섹스 앤 더 시티'의 한 장면.
우리나라 여성들에게 뉴욕에 대한 환상을 심어준 영화 '섹스 앤 더 시티'의 한 장면. ⓒ 최은경

나는 브런치를 자주 즐기는 친구 K에게 브런치를 즐기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다. "내가 <섹스 앤 더 시티>의 캐리가 된 느낌이야. 뉴요커의 여유를 즐기는 거지"라고 그녀는 답했다. 

그렇다면 왜 그녀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 말끔히 차려입고 몇 십분 씩 달려가 브런치를 먹으면서 까지 뉴요커를 모방하고 싶어 하는 걸까?

19세기 프랑스 작가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을 떠올려보자. 무미건조한 시골 의사와 결혼한 엠마는 낭만적 소설 속에서 느꼈던 달콤한 연애와 화려한 시의 세계를 미치도록 그리워한다. 즉, 시골의 보바리 부인이 파리를 동경했듯이, 21세기 한국인들은 상상 속의 뉴욕을 동경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 물론 '뉴요커'처럼 살고 싶은 그녀들의 마음은 자유다. 하지만 상술에 의해 제시된 '뉴요커'의 단편적인 껍데기를 따라한다고 해서 정말 '뉴요커'처럼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브런치#섹스앤더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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