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태풍) '갈매기'인지 뭔지 알고 떠나기나 했나? 내려가는 중에 날씨가 꾸물거리고 대전쯤 가니 지역성 호우로 변해 비가 변덕부리듯 쏟아 붓는다.

 

19일, 20일 양일간 강천산(전북 순창군 팔덕면) 입구에서 도라지축제를 한다 하여 손주 때문에 옴짝달싹 못하는 집사람 머리나 식히자고 떠난 나들이였다. 빗속에 강천사를 구경하고 순창으로 들어서니 장이 서지 않는 장은 시장인지 아닌지 구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한산했다. 점심을 먹기 위해 음식점을 찾았으나 한산한 시장과 마찬가지로 사람이 들지 않는 음식점들은 영업을 하는지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조용하다.

 

지도를 보기 위해 길가에 차를 세우니 건너편 음식점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다. 지방에서 한끼 때우는 요령은 관공서 근방, 시장통,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읍내 웨딩부페(바닷가쪽에서는 권할 만하다)이지만 이렇게 사람들이 밀려 나오면 크게 실패하지는 않는다. 삼계탕이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아 그러고 보니 오늘이 복날이로구나.' 음식점으로 들어간다.

 

ⓒ 이덕은

방으로 꾸며진 음식점은 방방이 먹다 남은 상들이 미처 치우지 못한 채로 꽉 차있어 빈자리 찾기 어려울 정도다. 일하는 아주머니가 오더니 주문을 받는다. 치우지 못한 식탁들은 오늘이 복날이라 삼계탕을 든 자리란다. 먹을 수 있냐는 물음에 남은 게 있나 하고 주방으로 가보더니 딱 2개 남았단다.

 

식탁에 우선 모조지가 깔리고, 반찬이 들어온다. 배추김치, 콩나물, 풋고추, 무채, 죽순들깨무침, 갓김치 맛이 나는 열무김치, 김과 파래로 버무린 무침 그리고 펄펄 끓는 삼계탕. 숟가락으로 바닥을 훑으니 바닥이 약간 눌어 있어 아줌마 말처럼 딱 2개 남았었던 모양이다. 

 

특이하게 수저와 함께 갖다 준 포크(잘 나가는 식당에서는 이렇게 손님이 얘기하기도 전에 살 바르기 좋게 포크를 준비한다든가 냅킨통에 고무밴드를 걸어 다음 휴지가 통 속으로 말려 들어가지 않게 하는 노하우를 하나씩 가지고 있다)로 살을 헤쳐 한 점 건지니 기대치 이상이다.

 

잘 물러진 살은 혀로 눌러도 힘들이지 않고 뜯어지고 군내가 없다. 작은 닭이라 다리를 뜯어도 살이 많아 퍽퍽하지 않다. 뱃속에는 인삼, 대추, 녹각 조각이 든 찰진 찹쌀밥이 들어있고 녹두가 들어 간 국물은 죽으로 만들어 한 숟갈 푸면 입 속에서 녹두 퍼지는 게 일품이다. 바닥에 누른 죽까지 빡빡 긁어먹고 계산하러 카운터로 가니 뒤쪽 칠판에 예약 손님이 빼곡하다. 명함을 달랐더니 없다며 이쁘장한 여주인은 미소지며 미안해 한다.

 

 자칫 손님이 없으면 군내가 나기 일수인 삼계탕. 알맞게 고아지고 먹으면서 닭죽으로 변하는 삼계탕.
자칫 손님이 없으면 군내가 나기 일수인 삼계탕. 알맞게 고아지고 먹으면서 닭죽으로 변하는 삼계탕. ⓒ 이덕은

맑은 날 사진을 찍지 못한 붓재에 들러 차밭을 구경하고 남해도를 거쳐 삼천포에서 일박한 후 진주로 들어섰다.

 

일요일 아침. 시간이 이른지 아직 가게를 열지 않은 곳들이 눈에 뜨인다. 물어 물어 찾아간 먹자골목. 아니 '먹자건물'이다. 후덥지근한 공기가 밀려오니 식욕이 딱 떨어진다. 해장국, 순대국, 아구찜... 한 구석에 아줌마 둘이서 생선을 씻고 있고 몇몇 손님이 앉아있는 음식점으로 가니 '하동복국'이라 써있다.

 

이 집은 해장으로 복국을 주나 보다. 메뉴를 살펴보니 일명 '할매복집, 50년전통'이라 써있고, '가을국화' 6천원, '가을소나타' 9천원이라 써있다. 가을소나타는 소주와 가을국화란 술을 섞은 것이다. 작명은 젊은 손님들이 했거나 주인 아줌마가 풍류에 능하거나 둘 중 하나일 텐테 여주인은 웃기만 할 뿐 정확히 대답하지 않는다.

 

무김치, 고추장에 절인 마늘, 무채, 무를 썰어 넣은 젓갈, 톳과 김을 섞은 무침, 멸치볶음, 특이하게 곱게 간 고춧가루, 고추장, 초고추장, 근본을 알 수 없는 뻘건 새우젓 국물이 함께 놓여 친구처럼 그럴 듯하게 배색을 이룬다.
 
이름을 알 수 없는 국물을 맛보니 시큼, 매콤, 달콤한 국물이다. 배즙에 식초와 고춧가루를 섞어 놓은 것인데 국물에 넣으면 시원해진다 한다. 지금은 그렇게 먹는 사람이 없지만 옛날 밀가루가 좋지 않아 밀가루 냄새와 소다 냄새를 줄이기 위해 자장면에 식초를 넣어 먹는 사람들이 간혹 있었는데 그 흔적인가?

 

 냉동복으로 조리를 하지만 쫄깃함이 아직 살아있다.
냉동복으로 조리를 하지만 쫄깃함이 아직 살아있다. ⓒ 이덕은

펄펄 끓는 냄비에는 복덩어리가 충분히 들어 있고 대가리 따낸 콩나물과 미나리도 푸짐하다. 같이 가져다 준 김이 깔린 양푼에 국에서 건진 콩나물과 반찬들을 골고루 넣고 거기에 고추장 한 숟갈, 밥을 덜어 식혀서 비빌 준비해 놓고, 우선 복을 건져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다.

 

냉동 복이라 할지라도 한참 건져먹는 복의 쫄깃함은 아직 없어지지 않았다. 뜨끈한 국물에 고춧가루 풀고 신 배즙을 넣으니 시원하면서도 참으로 희안한 맛이 난다. 전날 먹었던 닭죽과 더불어 다음에 두고두고 생각나게 만드는 맛이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닥다리즈(연세56치과)포토갤러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순창중앙회관#진주하동복국집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