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는 강력한 군대와 잘 놓인 길, 넓은 영토를 떠올리게 한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제국 중 으뜸에 자리할 만큼 로마는 강한 인상을 후대 사람들에 남겼다. 후대 제국들은 로마를 담기 위하여 노력했다. 하지만 그 어느 제국도 로마에 버금가는 대제국을 건설하지 못했다.
<한겨레> 기획위원인 홍세화씨가 쓴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를 통하여 우리에게 잘 알려진 말로 우리말에는 적당한 말이 없지만 '관용' 정도로 표현될 수 있는 '똘레랑스'가 있다.
강력한 군대와 제국에는 어울리지 않는 로마를 '똘레랑스의 제국'으로 표현한 책이 있다. 한형곤이 쓴 살림출판사가 문고판 시리즈물로 펴내고 있는 살림지식총서 102번째 책으로 낸 책<로마 : 똘레랑스의 제국>이다.
로마는 강력한 군대만 가진 군사제국이 아니었다. 로마는 문화와 종교, 정신을 가진 제국이었다. 군사력만으로 그 강력한 제국을 건설하고 유지하지 않았다. 문화와 종교가 함께 했던 제국이었다. 로마는 정치와 종교적인 중심지로서 그 역할을 감당해왔다.
로마는 유럽의 문명과 정신사의 중심에 있다. 그리스 문화와 그리스도교의 전파 이후에도 로마는 세계 문명의 지도자적인 역할을 하였다. 중세에 유럽의 중심이 알프스 이북으로 이전되기는 하였으나 정신문화적으로는 여전히 세계의 중심적인 위치를 고수하였고, 근대 이후에도 신앙의 근원지로서 예술의 도시로서 로마의 위치는 확고했다. 전세계 문명사회에서는 로마를 가리켜 ‘영원한 도시’, ‘우주적인 도시’, ‘세계의 머리’, ‘지구의 총체’라고 부른다. 그 중에서도 특히 ‘영원한 도시’라고 부르는 이유는 아마 로마가 정치적인 제국과 종교적인 제국의 중심지로서 그리고 문화의 제국으로서 오늘날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리라.(3쪽)
중국, 인도, 한국, 북아메리카 등 유럽이 아닌 다른 대륙에서도 종교와 문화가 발전했는데도 전 세계 문명사회에서는 로마를 가리켜 '영원한 도시'라는 칭송은 읽기 거북할 수 있지만 서양 문명에 끼친 영향력을 볼 때는 결코 작은 찬사는 아니다. 모든 제국이 탄생 신화를 가지고 있듯이 로마 역시 탄생 신화를 가지고 있다.
글쓴이는 로마의 탄생에 관한 전설을 트로이의 비극에서 살아남은 아에네아스의 후손인 쌍둥이 로물루스와 레무스 사이에서 벌어진 형제 살해의 비극이 로마의 유명한 건국 전설에서 찾았고, 로마 창건일은 역사학자 바로(Varro)가 말한 기원전 753년 4월 21일이라고 한다.
영원한 도시, 세계의 머리인 로마의 보르게세 정원 안에는 어제와 오늘을 이어주는 시계바늘인 물시계가 있다고 한다. 이 물시계는 유리 상자 안에 물줄기가 쉼 없이 움직이면서 시간을 만들어주었다. 물에 따라 움직이는 시계바늘이지만 보르게세 정원 물시계는 로마 역사를, 아니 유럽 역사를 고스란히 담았다.
로마에는 삶의 거리 '코르소', 로마를 가장 아름답게 담은 '나보나' 광장, 옛 로마사람들이 신들에게 제사드린 '판테온'이 있다. 그리고 로마의 심장부 '베네치아' 광장이 있다. 글쓴이가 이끄는 대로 읽어가면 읽는 이는 로마 속으로 들어가고, 로마 역사 속으로 들어가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나를 이끈 곳은 고대 로마인들이 시민 생활 중심지로 생각하던 신전과 공회당 등 공공기구와 함께 일상 생활에 필요한 시설이었던 '포로 로마노'(Foro romano)였다. 포로 로마노는 문화와 정치, 시민 생활의 중심지로 열린 문화공간이었다. 열린 토론이 이루어졌던 포로 로마노는 결국 위대한 로마 제국을 건설하는 데 중심지였다.
포로 로마노를 접하면서 아테네의 '아고라'를 연상했다. 그리스 문명이 유럽 정신 문명의 한 축이었듯이 로마가 위대한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이유는 포로 로마노 같은 논쟁과 토론 광장을 통하여 문화와 정치를 논할 뿐만 아니라 자신들 삶까지 논쟁으로 풀어갔음을 알게 될 때 우리 시대 인터넷 토론 공간을 막으려는 민주공화국 대한민국 현실이 얼마나 가슴 아픈지 알 수 있다.
로마는 또한 성스러운 도시였다고 글쓴이는 말한다. 로마는 기독교를 빼놓고는 상상살 수 없다. 바울과 베드로가 로마에서 최후를 맞는다. 성베드로 대성당. 기독교는 그들에게서 벗어날 수가 없다. 대성당의 화려한 장식과 건축은 숱한 민중의 피로 이루어진 것이지만 실로 기독교 문화의 정수를 볼 수 있다.
카타콤 그들은 믿음을 버릴 수 없었다. 육신의 생명을 칼과 창, 짐승이 끊어 놓을지라도 신을 향한 믿음을 저버릴 수 없었다. 그 순수한 믿음이 종교화되고, 정치화될 때 죽음의 길로 들어섰다. 우리 시대 기독교도 정치권력와 결탁함으로써 파멸이라는 길에 들어섰다. 생명으로 인도한다는 종교가 파멸로 인도하는 비극을 로마와 기독교가 보여주었듯이 대한민국과 기독교가 다시 보여주고 있다.
다양한 문화가 융합하여 이루어낸 로마. 도시의 수많은 유적들은 그 위대하고 때로는 슬픈 역사를 웅변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로마문화가 태동된 곳에서 출발하여 그리스도교 이전과 이후의 유적지를 순례하며, 현재 로마의 숨결을 조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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