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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 다니는 길도 호젓할 수 있을까? 그렇다! 개심사 가는 길은 다르다. 오가는 차량들이 많지 않아서 좋다. 거기다 경관은 또 어떤가! 주변 산들은 온통 초지를 조성한 목장 터이다. 삼화목장 터라나? 풀을 뜯는 누렁이 소 떼들이 한가롭다. 주변 산이라고 생긴 산은 죄다 바리캉으로 밀어버린 것처럼 단정하다. 녹음우거진 산과는 또 다른 맛이 느껴진다.

 

개심사 가는 길, 마음의 문을 열고

 

운전을 하는 일행이 슬그머니 차창을 내린다. 맑은 산들바람이 차 안으로 들어온다. 풀냄새가 느껴진다. 싱그러운 바람이 참 좋다. 에어컨 바람이 시원하다지만 산들바람만 할까 싶다.

 

우리 일행들은 개심사로 발걸음을 옮긴다. 정말 느릿느릿 걷는다. 한껏 여유가 있다. 함께한 일행이 내게 묻는다.

 

"개심사할 때 '개' 자가 고칠 개(改)자요, 열 개(開)자요?"

"열 개(開)를 쓰는 것 같던데요."

"마음을 연다는 것이구먼. 어떻게 하면 마음을 열까요?"

"그거야…."

 

세상 사람들이 모두 마음을 열고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개심사를 둘러보고 나면 마음이 열리게 될까?

 

지은 지가 얼마 되지 않을 것 같은 일주문이 우리를 반긴다. 잡목이 우거진 소나무 숲길이 고즈넉하다. 안타깝게도 아름드리 홍송(紅松) 몇 그루가 죽어있다.

 

계단 길로 접어들기 전, 개심사입구(開心寺入口), 세심동(洗心洞)이라는 표지석이 길을 안내한다. 다듬어지지 않은 돌에 새긴 글씨에 정감이 간다. 마음이 활짝 열리고, 마음을 깨끗이 씻는 곳이라는 의미를 담은 것 같다.

 

투박한 맛이 있는 계단길이 지루하지 않다. 굽잇길을 절묘하게 휘감아 자연석으로 계단을 쌓았다. 어느새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쉬엄쉬엄 산길을 오르면서 숨도 고르고, 마음도 고른다. 질러갈 수 있는 길을 돌아가도록 만든 뜻을 헤아리면서….

 

어느새 개심사 경내이다. 직사각형의 작은 연못이 눈에 띈다. 개구리밥이 온통 연못을 덮고 있다. 사이사이에 어리연꽃이 예쁜 꽃망울을 터트렸다. 노란색이 참 예쁘다. 연못을 가로질러 외나무다리가 있다. 피안과 현세를 나누는 경계를 나타내는 걸까? 극락의 세계를 들어가는 마음으로 조심조심 다리를 건너본다. 마음이 잔잔해진다.

 

개심사에서는 편안한 마음으로

 

개심사에 들어서면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한다. 꾸미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에 아늑히 안긴다. 그리고 정갈함에 반한다.

 

충남 서산 개심사. 가야산의 한 줄기가 내려온 상왕산 가파른 비탈을 깎아 터를 잡았다. 유명한 덕숭총림 수덕사의 말사이다. 개심사는 백제 의자왕 때 혜감국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대웅전 기단만 백제시대의 것이고, 건물은 조선조 성종 때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개심사는 그럴싸한 절은 아니다. 여느 절에서 느끼는 호방함이 없다. 더욱이 화려하지도 않다. 크고 웅장한 것을 쫒는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초라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개심사에서는 절제된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다. 자연스러움에 거스르지 않고, 이를 순종하는 멋스러움을 느낀다. 절이라는 것만 아니라면 어릴 적 고향마을에 온 것 같은 푸근함이 느껴진다.

 

종루를 보고 돌계단을 오르면 안양루가 한 눈에 들어온다. 안양루 현판인 '상왕산 개심사'라고 쓰인 현판 글씨가 재미있다. '상'(象)자를 코끼리 코처럼 길쭉하게 늘어 썼다. 뭔가 해학을 담으려는 멋이 엿보인다.

 

개심사는 유구한 역사에 비하여 전각 수가 많지 않다. 규모가 아담하다. 산지 사찰의 기본적인 입구(口)자 형식을 따르고 있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왼쪽에 심검당, 오른쪽에 무량수각, 그리고 맞은편에 안양루가 마당을 둘러싸고 있는 것이다.

 

보물 제143호 지정된 대웅보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되어있다. 다포계와 주포계의 양식을 갖춘 맞배지붕, 그리고 단층겹처마의 건물로 건축사적 가치가 높다고 한다. 단아함이 풍겨난다. 수수하지만 기품이 묻어나오는 건축미를 느낄 수 있다.

 

개심사에서 사람의 눈을 끄는 것은 심검당이다. 건물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이며 서까래로 쓴 나무가 자연 그대로이다. 휘어진 기둥을 다듬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여 자연스러움을 강조하고 있다. 멋을 부리지 않았는데도 멋이 느껴진다. 소박함이 내 마음을 조금씩 빼앗는다. 단청을 하지 않아 절집이라기보다 사대부가의 고택과 같은 분위기가 난다. 질박함이 묻어있는 천연덕스러움을 연출한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자연 그대로의 멋을 살린 것은 심검당뿐만이 아니다. 종루의 기둥도 제멋대로 생긴 나무를 사용하여 자연미를 살렸다. 비틀어지고 휘어졌지만 나름대로 역할을 하는 데는 이상이 없다. 곧은 나무만 쓸모가 있을 거라는 생각은 편견이다. 자연스러움에 편안함을 느끼는 것은 비단 나만이 아닐 것 같다.

 

슬레이트 지붕을 한 건물이 몇 채가 보인다. 이곳도 초가지붕을 헐고 슬레이트로 지붕 개량을 한 걸까? 어떤 건물의 벽은 막돌로 마구 쌓았다. 그런데도 왠지 모를 정감이 간다. 겨우 비바람만 가려 수도 정진하려는 수도승들의 검약한 모습이 연상된다.

 

명부전 뜰에 서 있는 배롱나무도 근사하다. 몇 번이나 허물을 벗었을까? 홍자색을 한 나무를 사포질한 것처럼 반질반질 윤이 난다. 아직 꽃을 피우지 않아 붉은 꽃을 볼 수 없는 게 아쉽다.

 

나무 그늘이 시원하다. 명부전을 가로질러 산에 오르자 산신각이 숲 속에 푹 잠겨있다. 산신각 현판이 너무 낡았다. 이 또한 개심사답다고 해야 하나? 산신각 앞에 서서 아래를 처다 보니 나무들 사이로 개심사 전경이 들어온다. 멀리 보이는 내포(內浦)의 땅도 아늑하다.

 

잃어버린 옛 추억을 건지다

 

한참을 구경하다 보니 용변이 마렵다. 화장실을 찾았다. 화장실과 처갓집은 떨어져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가? 심검당 뒤편으로 멀찍이 해우소가 자리 잡고 있다. 흙길을 따라가자 웬걸! 아직도 이런 화장실이 남아 있다니! 놀랍다. 문짝도 떨어졌다. 낡고 허술한 건물이 곧 쓰러질듯 위태롭기까지 하다.

 

내 어렸을 적 친숙하게 드나들던 영락없는 우리 집 화장실이다. 낮은 칸막이를 해놓았다. 나무 판지에 다듬어지지 않은 구멍이 나있다. 용변을 보고 난 뒤 낙엽을 한 줌을 뿌려달라고 한다. 긁어모은 낙엽을 요긴하게 사용하는 지혜가 돋보인다.

 

어찌되었건 참았던 일을 보고나니 몸이 가뿐하다. 잃어버린 옛 추억을 하나 끄집어낸 것 같다.

 

일행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가 묻는다.

 

"화장실 다녀오셨어요? 전 화장실 밑을 쳐다 보다 죽는 줄 알았어요?"

"이런 화장실 처음 봤어요? 우리 클 때보다는 양반이구먼!"

"예전에 어떠했는데요?"

"더 심했죠! 냄새도 많이 나고, 구더기도 나왔구!"

 

내 이야기에 코를 막으며 비위가 거슬린다는 표정을 짓는다. 재래식 화장실을 접할 기회가 없는 신세대들에게 개심사 해우소는 색다른 문화체험이 될 듯싶다. 화장실이 바뀐 것만 보아도 세상은 참 많이 변했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은 질박함이 숨쉬는 개심사. 푸근함과 편안함을 마음에 담고 서두를 것도 없는 발길을 돌린다. 녹음 우거진 숲 속에서 매미가 악다구니를 쓰며 울어댄다. 올 들어 처음 들어보는 매미 소리인 것 같다.

 

녀석들은 마음을 열고서 소리를 지르는 걸까?


태그:#개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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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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