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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내 딸!

한창 낭만적인 꿈에 젖어 젊음의 꽃을 피워야 할 고교 2학년인 너에게, 이른 아침 학교보충수업으로 시작해서 영어, 수학 과외수업과 인터넷 강의를 마치면 자정이 후다닥 지나갈 정도로 엄청난 양의 공부를 안겨서 미안해.

아버지는 "성적에 매몰되지 않으마" 약속했는데, 끝내 공수표가 되고 말았다. 갖가지 시덥잖은 이유를 붙여 책상 앞에 감금하고야 마는 이 애비의 마음도 편치만은 않다는 것을 이해할 수는 있겠니?

칠레가 원산지로 귀화식물이다. 꽃이 아침부터 저녁까지는 오므라들었다가 밤이 되면 활짝 벌어지기 때문에 밤에 달을 맞이하는 꽃이라고 해서 '달맞이꽃'이란 이름이 붙었다.
▲ 활짝핀 달맞이꽃 칠레가 원산지로 귀화식물이다. 꽃이 아침부터 저녁까지는 오므라들었다가 밤이 되면 활짝 벌어지기 때문에 밤에 달을 맞이하는 꽃이라고 해서 '달맞이꽃'이란 이름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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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을 했는데도 보충수업에 늦었다는 너를 차에 태우고 가는데, 너는 길가에 핀 샛노란 꽃에 대해 물었지? 키가 멀쑥하게 핀 그 꽃은 '달맞이꽃'이란다. 낮에는 수줍어 봉오리를 오므리고 있다가 달님이 오시는 밤이면 활짝 웃는 낯으로 고개를 내민단다.

또 무덤가에 하얗게 핀 들국화를 보고 너는 '왠지 슬프다'고 했지. 10살짜리 동민이는 그 꽃을 보고 '계란프라이꽃'이라고 이름 지었는데, 그 꽃이 '개망초'라고 불리는 꽃이야.

국화과의 두해살이 풀로 북아메리카에서 귀화한 식물로 어린 잎은 먹을 수 있으며, 길가나 들에서 7-8월에 꽃이 핀다.
▲ 서러운 개망초 국화과의 두해살이 풀로 북아메리카에서 귀화한 식물로 어린 잎은 먹을 수 있으며, 길가나 들에서 7-8월에 꽃이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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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망초는 북아메리카가 원산지로 20세기 초에 우리 산야에 들어온 귀화식물인데, 그때 우리나라가 망해서 망국초, 동민이가 본 것처럼 계란꽃 등으로도 불린다는구나! 우리가 그냥 들국화라고 부르는 꽃도 가을에 피는 쑥부쟁이, 구절초 등 쑥과 식물로 각 그 이름은 있단다. 길옆에 무심히 핀 들풀도 모두 제 이름을 가지고 있단다. 다만 사람들이 관심이 없어 모르고 있을 뿐이지.

그냥 잡초라고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은 들풀도 제각각의 특색을 지니고 있지. 그들은 홀씨로 바람에 날리어, 더러 동물의 먹이가 되었다가 똥 속에서, 짐승의 털에 묻어서 다시 생명을 잉태하게 되지. 물론 그 중에서 몇은 벌레나 짐승의 먹이가 되기도 하고, 또 몇은 척박한 땅에서 싹을 틔우지도 못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야. 오직 운이 좋은 선택된 소수의 씨앗만이 새싹으로 세상을 열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다시 씨앗으로 영글게 되겠지.

흰색의 땅속줄기에서 여러 개의 덩굴로 된 줄기가 나와 다른 물체를 감아 올라가며 자란다. 잎은 긴 타원형이며 어긋나고 잎밑 양쪽은 귓불처럼 조금 나와 있다. 아버지가 어릴때 논둑에서 '메밀싹'이라 불리는 흰색줄기를 캐서 구워먹기도 했고, 어린 잎은 나물로 먹지만 많이 먹으면 현기증이나 설사가 나기도 한다.
▲ 분홍 메꽃 흰색의 땅속줄기에서 여러 개의 덩굴로 된 줄기가 나와 다른 물체를 감아 올라가며 자란다. 잎은 긴 타원형이며 어긋나고 잎밑 양쪽은 귓불처럼 조금 나와 있다. 아버지가 어릴때 논둑에서 '메밀싹'이라 불리는 흰색줄기를 캐서 구워먹기도 했고, 어린 잎은 나물로 먹지만 많이 먹으면 현기증이나 설사가 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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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들꽃은 특유의 색깔과 아름다움이 있고, 스스로 향기를 내뿜는단다. 그래, 그런데 어찌 사람에게 향기가 없겠느냐? 아버지의 역할은 어쩌면 우리 딸에게 숨어있는 고유의 향기와 아름다움을 찾아주는 일인지도 몰라. 지금 힘들게 공부를 하고 그림공부에 대해 고민하는 것도 '네가 있어야할 자리를 찾는 과정'이라고 생각하자! 지금의 어려움이 '씨앗'에서 '새싹'으로 너를 이끌어준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좀 편하지 않겠니?

사람들을 흔히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든 사람'과 '난 사람', '된 사람'이 그것이다. '든 사람'은 머릿속에 지혜가 아닌 지식만 많이 든 사람을 말한다. 또 '난 사람'이란 재주가 뛰어나서 출세를 해서 이름이 널리 알려진 '잘난 사람'을 가리킨다. '된 사람'은 인품이 훌륭하고 덕이 있어 사람 됨됨이가 제대로 된 사람을 일컬을 것이다. 그들은 말과 행동이 일치하고,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도 스스로에게 엄격한(愼獨) 사람이란다.

메꽃과의 한해살이 풀로 기생덩굴풀이다. 7~8월에 흰색꽃이 피는데, 씨는 약재로 쓴다.
▲ 실새삼 메꽃과의 한해살이 풀로 기생덩굴풀이다. 7~8월에 흰색꽃이 피는데, 씨는 약재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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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선생님에게 '숙제를 많이 내어 주고, 반드시 점검을 해서 벌을 주기'를 부탁했는데, 네가 언짢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100m를 달리는 단거리 선수와 42.195km를 달리는 마라톤선수는 자세부터 다른 법이다. 인생은 마라톤보다 훨씬 먼 거리를 달려야 한다. 지금 네가 어렵게 공부하는 것은 인생이란 경주의 봇짐을 싸는 일이라고 생각해다오. 체력을 기르는 과정이라고 여겨다오.

어쩌면 아버지의 역할을 그 봇짐 싸는 일을 찬찬히 도와주는데 불과하다. 정작 네가 사회라는 바다에서 험한 파도에 시달릴 때 아버지는 뒷짐을 지고 있거나 어쩌면 네 옆에 없을 지도 모르겠다. 그때 목이 마르면 지금 네가 갈무리해 둔 봇짐에서 물을 꺼내어 마시고, 배가 고프면 주먹밥을 챙겨 먹어야 한다. 당황하거나 울지 말고 담담하게 헤쳐 나가야 한단다.

닭개비 또는 닭의밑씻개라고도 하며, 산과 들에 무성하게 자란다. 줄기는 옆으로 뻗으면서 자라며, 마디에서 새로운 뿌리가 나오기도 한다. 꽃은 연한 파란색이고 7~8월에 나비와 비슷한 생김새로 피는데, 나물로 먹기도 하며 꽃에서 푸른색 염료를 뽑아 종이를 염색하기도 한다.
▲ 파란 달개비 닭개비 또는 닭의밑씻개라고도 하며, 산과 들에 무성하게 자란다. 줄기는 옆으로 뻗으면서 자라며, 마디에서 새로운 뿌리가 나오기도 한다. 꽃은 연한 파란색이고 7~8월에 나비와 비슷한 생김새로 피는데, 나물로 먹기도 하며 꽃에서 푸른색 염료를 뽑아 종이를 염색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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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하는 딸아! 지금 어렵고 힘들더라도 여유를 가져야한다. 그래야 인생이란 길을 걸을 때 길가에 조그맣게 핀 들꽃을 볼 수가 있을 것이다. 다리가 아파 길에 주저앉은 할머니를 어깨로 부축해주고 말동무가 될 수가 있을 것이다. 배고픈 네 밥을 덜어 낼 수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너의 싱그러운 향기로 삶에 지친 사람들이 힘을 낼 수 있으면 참 좋겠다.

들풀도 길가에 아무렇게나 뿌리를 내려 숨죽이며 영양분을 모아두었다가 저렇게 자신의 모든 것을 겨워내어 화려한 들꽃을 피워내는데, 하물며 빛깔 없고 향기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조금은 마음이 진정되고, 옳게 해 주지 못하면서도 공부하라는 아버지 마음도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구나.


태그:#여름들꽃, #보충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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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에 있는 소시민의 세상사는 기쁨과 슬픔을 나누고 싶어서 가입을 원합니다. 또 가족간의 아프고 시리고 따뜻한 글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글공부를 정식으로 하지 않아 가능할 지 모르겠으나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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