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이 잦아들고 있다고 한다. 참말인가? 촛불의 규모 면에서는 맞다. 그러나 촛불 행진은 쉼 없이 일정을 채우고 있다. 어제(23일) 서울 청계광장에서는 언론노조 주관으로 '언론장악 저지, 민영화 반대', 77차 촛불문화제가 쏫아지는 폭우를 뚫고 어김없이 헌법 제1조를 합창했다.
오늘은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주관으로 '안 먹어! 안 팔어! 요리 안해! 미친 소 너나 먹어'를 캐치프레이즈로 걸고 78차 촛불문화제가 열리며, 내일도 모레(26일,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주최, '미친 소 반대 미친 교육 심판' 80차 집중촛불문화제 개최)도 촛불은 꺼지지 않고 행진할 예정이다.
사실은 언론의 보도 빈도가 잦아들었을 뿐, 대책회의에서 공지한 대로 부분 단체별 역할 배분에 따라 사안별로 촛불의 의지와 지혜를 계승하고 있는 셈이다. 10만이면 어떻고 1만이면 어떠며 1천이면 어떠리. 꺼지지 않는 희망의 촛불로 내일의 민주주의를 밝히겠다는 데에야.
개혁과 진보의 개념을 질기디 질긴 참여와 행동을 통해 사회정의와 연대와 공공선을 추구하고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하는 만남으로 정의할 수 있다면, 광장에서의 촛불의 만남과 만남이야말로 개혁과 진보를 실천하는 살아 있는 주체고 중심 아닌가?
참여와 공유와 개방의 웹 2.0 시대 도래
미국의 시사 잡지 <타임>은 지난해 올해의 표지 인물을 'You', '당신'이라고 명명했다. 그 전 해 올해의 인물이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빌 게이츠 부부였던 것에 비하면 격세지감이다. 큰 바위 얼굴 같은 시대의 영웅이 아닌 평범한 '우리'가 선정되다니. 황망하기 짝이 없으나, 웹 2.0 시대의 도래를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자기 스스로 컴퓨터 앞에 앉아 인터넷을 통해 여러 콘텐츠와 만나고(참여), 세상의 다른 이들과 사통팔달 오만 가지 얘깃거리와 UCC로 쑥덕공론을 주고받고(공유), 그 과정이 사방팔방 만천하에 활짝 열려 있는(개방) 시대. 자기도 모르는 새 능동적으로 세상을 바꿔나가는 평범한 누리꾼, 바로 '당신'이 <타임>의 주인공이었던 것이다.
누리꾼의 참여로 정보와 지식과 새로운 가치를 만들고 공유하는 열린 인터넷, 웹 2.0, 인터넷의 광대역화와 디지털 기기의 눈부신 발달을 밑천삼아 무명씨인 '당신'이 제작한 멀티미디어 콘텐츠로 그물망을 쳐 세계를 엮는 웹 2.0 시대. 원, 이런 세상에! 내가 세상의 주인이라니…!
그렇게 우리는 다음 아고라에서, 방송놀이 신대륙 아프리카에서, 오마이뉴스에서, 유튜브 UCC에서, 블로그 중심지 올블로그에서, 위키피디아 백과사전에서 그리고 마침내 촛불광장에서 참여의 문화와 집단지성과 전혀 새로운 모델을 창조하고 있으니, 세상을 바꾸는 주인답지 않은가?
웹2.0의 시대정신인 참여와 공유와 개방이라는 화두는 단순한 개인이 아니었다. 열린 인터넷을 통해 참여문화의 성숙한 시민으로 개인의 권리와 가치를 각성하고, 개인과 개인은 웹 소통으로 집단적인 아이디어와 기지와 지혜와 의지를 발휘하고, 결국엔 큰 바위 얼굴들이 주도해 온 위로부터의 닫힌 세상을 뒤집어엎는 아래로부터의 '열린 세상'을 열어 가고 있는 것이다.
웹 2.0과 촛불이 만나다
웹 2.0의 발달은 말하고 쓰고 모이고 만드는 데서도 변화를 낳았다. 우리나라 헌법 제21조는 모든 국민은 언론 출판의 자유와 집회 결사의 자유를 가지며(1항), 언론 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 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않는다(2항)고 못 박고 있다.
그러나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은 5·16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박정희가 군정을 반대하는 국민의 눈과 귀와 입과 행동을 틀어막기 위해 1962년 12월 31일 제정한 악법 중의 악법이었다.
무릇 악법은 범해서 고치라고 했던가? 웹 2.0 시대는 촛불로 보여 주고 있다. YTN과 KBS, MBC 등 방송 장악과 누리꾼 탄압에 혈안이 된 이명박 정부에 대한 촛불 항전이 그것이다. 쇠고기 재협상을 비롯해 어느 것 하나 신통치 않은 야당에 대한 촛불 경고가 그것이다. 여의도식 대의제에 맞서 웹 2.0으로 모이고 만들고 말하고 쓰면서 악법을 범한 것이 촛불행진, 그것이다.
웹 2.0 시대 정치는 개인의 참여를 전제로 한다. 멀거니 지켜보기만 하나? 사통팔달, 온라인-오프라인 토론의 광장에서 무리지어 만나 집단지성을 발휘한다. 누리세상에서 놀기만 하나? 아래로부터의 대중적 정치의제까지 설정한다. 탁상공론만 하고 손 떼나? 아니다. 실천의 중심으로, 해결의 주체로 촛불을 든 것이다.
바로 촛불 민주주의, 즉 웹 2.0과 직접 민주주의가 조우한 것이다.
직접 민주주의 시대 예고하는 웹 2.0
웹 2.0과 만난 촛불은 통치 형식의 변화를 예고한다. 민주주의하면 당연히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지존인 줄로만 알았던 대의 민주주의에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만고불변의 대의제가 '의심'을 사는 사단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내 손으로 선택한 후보와 정당을 통해 법률을 제정하고 정책을 결정하면서 국가를 운영해 온 대의 민주주의가 촛불을 들게 되면서 긴가민가해진 기막힌 상황. 촛불의 등장은 민주주의와 정치의 관계에서 무언가 역모(?)를 꿈꾸고 있다는 것을 가늠케 해 준다.
대의 민주주의가 오랜 역사 발전의 산물이듯이, 웹 2.0과 촛불로 만난 직접 민주주의 역시 한국사회의 현재를 반영하는 역사물이다. 웹 2.0 참여계층의 불평등성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직접 민주주의가 대의제를 대체할 수는 물론 없다. 언감생심이다.
비록 웹 2.0이 아직 기술적 한계와 개인별 정보량과 지식의 차이와 정보격차와 이해관계의 정도에 따라 조만간 직적 민주주의에 가까운 꼴로 질적 전환을 가져 오긴 어렵다 해도. 그러나 웹 2.0의 역동성은 직접 민주주의의 지평을 확장하는 '세계로 열린 창(窓)'임은 분명하다.
따라서 시대적 한계와 기술발전을 전제한다 해도 소수 정치 엘리트들이 주도하는 대의제 정치의 양대 특징인 대표성과 책임성이 흔들리고 있는 마당에 '대안의 정치원리'에 대한 기대와 요구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 되었다. 왜? 역사는 원든 원치 않든 웹 2.0 시대로, 다시 웹 3.0 시대로 혁신해 갈 테니까.
일하는 생활인들의 건강한 상식, 집단적 상식이 웹 2.0 시대의 기본이라고 한다면 직접 민주주의는 웹 2.0 시대를 대표하는 민주주의의 새로운 작동원리에 다름 아니다. 비록 현실의 정치와 민주주의가 높은 합리성과 책임성을 요구하며 그런 면에서 직접 민주주의의 한계가 명백할지라도 말이다.
직접 민주주의 시대를 맞이하는 웹 2.0식 생각
어떻게 하면 거리 민주주의, 촛불의 창조성과 다이나믹을 새로운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꽃 피우기가 위한 실천으로 계승 발전시켜 나갈 수 있을까?
웹 2.0 시대는 인식과 발상에서 대전환을 요구한다. 이를 테면, 촛불의 시대정신과 시대적 요구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에서 웹 1.0 시대는 찬밥신세다. 웹 1.0이 웹 2.0의 기반이자 근거임엔 자명하나 웹 2.0은 1.0에서 진화한 게 아니라 혁신한 것임에 동의한다면 ‘당신’도 혁신해야 한다. 그래야 설 자리가 있다.
어떻게 혁신할까. 21세기 웹 2.0 시대가 요구하는 진취적이고 역동적이며 진보적인 삶의 가치를 생성하기 위해선 먼저 참여와 공유와 개방의 생활화가 전제되어야 하지 않을까?
네 거 내 거 모두 내 거라는 기득권의 탐욕을 거부한다면, 네 거는 네 거 내 거는 내 거라는 이기적 타산을 거부한다면, 네 거 내 거 모두 우리 거라는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의 가치를 인정하다면, 말이다.
경영학의 전설, 피터 드러커는 말했다. '고객이 원하는 가치에서 출발하는 것이 혁신의 출발점'이라고. 웹 2.0 시대로 의역한다면, 공급자, 생산자, 기득권, 영웅이 중심이 아니라 수요자, 소비자, 누리꾼, '당신'이 원하는 가치에서 출발하는 것이 웹 2.0 시대의 혁신이라고.
따라서 웹 2.0 시대의 직접 민주주의를 맞이하기 위해 '당신'과 시민운동가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진취적인 정치인과 인터넷 언론과 논객들이 소통과 연대의 <웹 2.0 허브>를 구축해야 한다. 집단 지성과 지혜의 광장 웹 2.0 시대를 맞이하겠다면.
글이든 사진이든 영상이든 미디어든 참여와 공유와 개방의 웹 2.0의 바다에서 재미있는 항해를 하고자 한다면, 서울에서 안산에서 대전에서 전주에서 광주에서 제주도에서 부산에서 울산에서 대구에서 원주에서 춘천에서 <웹 2.0 허브>를 만들어 볼 생각을 해야 하지 않을까?
웹 2.0의 진정한 정신이 뭐를 통해 매개되고 구현되었든, '촛불 광장'에서 사람과 사람이 직접 대면하는 '만남'으로 귀결된 것은 결국은 오프라인 토론의 광장에서 소통과 연대로 하나 됨을 지향하는 게 웹 2.0 시대의 민주주의이니까.
'당신'은, 준비되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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