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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숨비소리는 시원한 생명의 소리다
▲ 제주 해녀 그들의 숨비소리는 시원한 생명의 소리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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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녀들이 잠수했다가 숨을 고르기 위해 물 위로 얼굴을 내밀며 '호오이, 호오이!' 토해내는 휘파람소리를 숨비소리라고 한다. 바다에 서면 파도소리, 갈매기 소리, 바람소리를 위시해서 수많은 소리가 어울려 노래를 만든다. 그중에서도 단연 주된 멜로디처럼 마음에 와 닿는 소리는 숨비소리나 그물을 거두며 "어여차! 어여차!"하는 사람들이 내어놓는 소리다. 이런 소리를 가장 극명하게 들을 수 있는 시간은 세상의 소리가 다 깨어나지 않은 시간, 여명의 시간이다.

배마다 만선의 꿈을 가득 싣고 있다.
▲ 성산항 배마다 만선의 꿈을 가득 싣고 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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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바다에서 작업을 마치고 돌아온 배를 맞이하는 소리, 포구에 밤새 잡은 고기를 옮기며 내뱉는 어부들의 거친 숨소리, 뱃머리를 돌며 먹이를 얻으려는 갈매들의 울음소리, 만선을 꿈꾸며 바다로 나가는 배들의 정적소리, 철썩거리며 방파제에 부서지는 파도소리, 가끔은 손발이 맞지 않아 들려오는 쌍소리까지도 다정다감한 소리로 들려온다.

귀로 듣는 소리가 전부가 아니다. 마음의 귀를 열고 바닷가 모래밭의 빈 고동을 들어 귀에 대자 "텅 빈 충만이란 이런 것이지!"하며 제 몸을 비워낸 곳에 파도소리를 담아두었다가 파도처럼 '쏴아!' 쏟아낸다. 마음의 귀를 열고 몇 마디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수없이 많은 내면의 소리들을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의 빈 공간에는 바다의 소리가 들어있다.
▲ 소라껍데기 그들의 빈 공간에는 바다의 소리가 들어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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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역시 투박한 사람들, 손에 굳은살이 박힌 사람들, 삶에 옹이가 있는 사람들의 말이 살가웠다. 저것이 사람의 소리다 싶었다. 그들은 입술 혹은 혀로 하는 말이 아니라 삶으로 들려주었다. 그들의 주름살, 검은 얼굴에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 꾸덕살이 박힌 손바닥과 쩍쩍 갈라진 손마디만으로도 나는 전율했다. 그들의 말은 세련되지 않았으나 살아있었고, 투박하고 거칠었으나 정이 듬뿍 들어있었다.

너무 가깝지도 않고 멀지도 않은 곳, 너무 섭섭하거나 슬프지 않을 만큼의 거리를 두고 그들을 만나기 가장 좋은 시간은 여명이 동터오는 시간의 새벽바다거나 바다가 속내를 가장 많이 보여주는 썰물의 바다였다. 낮에는 들을 수 없었던 바다의 소리, 바다에 나간 사람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그 시간은 아직 세상의 모든 소리들이 깨어나기 전이라 작은 소리들도 선명하게 들려온다. 수많은 소리가 혼재되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과 대조적이다.

그들이 있어 밤배는 자유롭다.
▲ 집어등 그들이 있어 밤배는 자유롭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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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불 밝혔던 집어등에 아직도 온기가 남아있을 만한 시간에 포구로 돌아오는 이들과 이제 막 바다로 나가는 이들이 바통을 넘겨받고, 바다가 속내를 드러내면 할망들이 골갱이를 들고 "찬값이라도 해야지 쉬면 뭐하누"하며 바다로 나간다. '찬값', 그것은 거짓말이다. 그렇게 골갱이 하나 들고 나가 조개를 캔 돈으로 자식새끼들 다 키워 시집장가를 보냈고, 어렵다 손 벌리면 "옛다!"하고 건네주고, 손주새끼들 오면 고사리 손에 용돈까지 쥐어주니 말이다. 어디 그뿐이랴, 비 오는 날이면 삭신이 쑤신다고 병원에 가서 링거도 맞고, 침도 맞는다. 이게 다 '찬값'이란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거짓말인가?
미사여구로 치장한 구역질 나는 말, 사랑한다는 말 뒤에 숨긴 비수, 건수 잡을 한 마디 말에 열중하는 귀, 이 더럽고 치졸한 거짓말과는 차원이 다른 거짓말, 난 이런 거짓말이 좋다. 사람살이 같아서 이런 거짓말하는 노인네들은 꼭 안아주고 싶을 만큼 사랑스럽다.

저 멀리 우도가 보인다.
▲ 새벽바다 저 멀리 우도가 보인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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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바다에서 해돋이를 만나는 일은 황홀한 일이다.

해가 바다와 맞붙어 오메가(Ω)의 형상을 만드는 모습을 보면 자신도 모르게 "와!" 감탄사가 나온다. 하루의 시작, 알파(Α)의 시간에 오메가의 형상을 본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처음과 끝은 다르지 않다는 것이요,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순간 '처음처럼, 마지막처럼' 살아가야 한다는 소리가 아닌가?

해돋이의 시간과 해넘이의 시간이 닮은 것도 그런 까닭이요, 너무 아름다운 순간이라 길지 않고 짧은 것이다. 그렇다. 아름다운 순간은 그렇게 짧은 순간이다. 그러나 인생은 그리 짧지많은 않다. 그러니 더 아름답게 살아가야 하고, 늘 처음처럼 마지막처럼 살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세화 근처의 작은 방파제에서
▲ 제주도민 세화 근처의 작은 방파제에서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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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비소리, 그것은 재충전이다.

수천번의 숨비소리가 있어야 테왁 아래 매달려 있는 망사리를 채울 수 있고, 망사리가 채워지는 만큼 이런저런 희망들도 채워지는 것이다. 단순히 우리가 귀로 듣는 숨비소리 '호오이, 호오이!' 그게 전부가 아니라 마음으로 듣는 숨비소리가 소중한 이유다. 나는 단언한다. 귀로 듣고 다 들었다고 하는 이들은 실은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한 것이요, 마음으로 듣는 이들이야말로 참 소리를 들었다고.

그 어느 날, 그는 아주 오랫동안 방파제에 서있었다. 그가 서있는 만큼 나도 서있었다. 단 한 마디도 말을 나누지 않았고, 순한 멍멍이만 오가며 반갑다고 꼬리를 흔들어대며 쓰다듬어 달라고 혓바닥을 낼름거렸다. 서로가 서로에게 물어도 다 대답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마음에 담겨있음을 알았다. 서로의 갈 길을 가기 위해 가벼운 인사를 나눌 때 눈으로 "힘들죠? 그래도 살만한 세상이죠?"했다. 이젠 내가 저 깊은 폐부에서 '호오이! 호오이!' 숨비소리를 지른다.


태그:#숨비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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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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