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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실록에서 챙기지 못한-<뜻밖의 한국사> 겉그림
 조선왕조 실록에서 챙기지 못한-<뜻밖의 한국사> 겉그림
ⓒ 오늘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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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린 시절, 친정 부모님은 해마다 고구마를 무척 많이 심었다. 어림짐작, 몇 마지기의 밭에 고랑 끝이 까마득할 만큼 심었던지라 가을이면 스무 가마가 넘는 고구마를 캐곤 했다. 그 고구마를 윗목 옷장 뒤에 쌓아두고 겨울을 나곤 했다.

거의 날마다 아침 설거지 후 고구마를 작은 가마솥에 쪄서 점심은 물론 오후 내 간식으로 먹곤 했다. "날로 먹으면 회충이 생긴다"는 아버지의 잔소리도 아랑곳없이, 귀한 간식 대신 깎아먹고 잘게 잘라 소꿉놀이를 했다. 군불 속에 밀어 넣고 입이 까맣도록 구워도 먹었다. 설에 쓸 조청을 만들고 봄이 움틀 무렵이면 그 많던 고구마는 씨로 쓸 정도만 남았다.

고구마에 대한 어린 날의 추억, 그 간략한 회상이다. 한때는 거들떠보지도 않을 만큼 너무 질리고 흔하도록 먹었던 고구마, 하지만 이제는 사계절 내내 박스째 사다두고 쪄먹을 만큼 즐겨먹는 고구마이다.

이처럼 쉽게 맘껏 먹을 수 있는 고구마에 이 땅의 가난한 백성들을 기아에서 구하려는 수많은 학자들의 노력이 스며있음을 <뜻밖의 조선사>(오늘의 책 펴냄)에서 만나게 되었다.

우리에게 '고구마는 조선시대 영조 39년(1763년) 10월, 조엄이 일본에서 들여와 재배하여 널리 퍼뜨렸다' 정도로 알려져 있다. 통신사 일행으로 일본에 간 조엄이 대마도에서 고구마를 보고 구황작물로 마땅하다고 들여와 동래지방 및 제주도에 심어 퍼뜨렸다는 정도로만 알려져 있다. 혹은 부산진에 들여와 심었다는 말도 있다.

3백년 동안 이 땅을 거부한 고구마 재배에 삶을 다한 사람들

"고구마 재배서인 <종저방>에 의하면 고구마가 조선에 최초로 소개된 것은 16세기 말인 선조 때였다. 그 후 비변사에서 고구마 보급에 노력했지만 거의 효과를 보지 못했던 것 같다. 그것이 1633년(인조 11년)의 일이다. 조선시대에는 남해안의 어부들이 고기를 잡으러 바닷가에 나갔다가 풍랑에 표류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운 좋게 살아남은 사람들은 대개 대마도나 일본 땅에 도착했다. 일본 사람들이 먹는 고구마를 보고 조선에 돌아온 어느 어부가, 고구마가 구황작물로 적당하다고 보고했다는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남아 있다. 1663년(현종 4년)의 일이다. 하지만 여전히 고구마 재배는 시작되지 않았다."(책 속에서)

영조 재위 중에 이광려(1720~1783)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문장이 뛰어나고 덕행과 학식이 높았으나 벼슬이라고는 참봉, 더 이상 벼슬에 나가지 않고 학문을 실용화하는 데 힘썼다. 그의 문장은 명분이나 격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연의 순리에 따르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남긴 저술서로는 <이참봉집>과 <담로후서>가 있다.

학문으로 그치는 학문이 아닌 실용되어 사람에게 이로운 학문을 추구한 이광려는 중국의 여러 서적들을 뒤져 고구마야말로 백성들의 배고픔을 해결할 수 있는 작물이라고 판단한다. 그리하여 중국으로 가는 사신이나 역관에게 고구마 종자를 구해다 줄 것을 부탁하나 아무도 가져오지 않는다. 이렇게 해서 통신사로 가는 조엄에게 부탁한다. 그때가 1763년.

이런 우여곡절로 고구마 한 포기를 간신히 구해 집에서 시험재배를 하지만 실패하고 만다. 이광려는 이번에는 동래부사 강필려에게 부탁해 몇 포기를 더 구하게 된다. 하지만 이번에도 실패, 그는 끝내 재배에 실패하고 만다.

그의 이런 노력은 강필려가 고구마 재배에 관심을 두는 계기가 된다. 이광려의 열정에 감동한 강필려는 통신사 조엄에게 고구마 종자를 다시 부탁해 따뜻한 고장인 동래에서 시험 재배하여 성공한다. 그리고 고구마 재배법을 담은 책 한 권을 발간한다. <감저보>(1766년)는 이렇게 나온다.

시어른께서 포대에 흙을 가득 채운 후 구멍을 송송 낸 후 고구마 순을 찔러넣어 심으셨다. 예전에는 짚으로 엮어만든 가마니에 심었다고. "그럼 거름을 많이 섞어야 겠네요?" "아니, 거름이 지나치면 순이 웃자라 고구마는 덜 맺힌단다"(5월 20일쯤)
 시어른께서 포대에 흙을 가득 채운 후 구멍을 송송 낸 후 고구마 순을 찔러넣어 심으셨다. 예전에는 짚으로 엮어만든 가마니에 심었다고. "그럼 거름을 많이 섞어야 겠네요?" "아니, 거름이 지나치면 순이 웃자라 고구마는 덜 맺힌단다"(5월 20일쯤)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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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0일 이후 일주일쯤 지나자 한바탕 몸살을 앓았었다. 순이 까맣게 타들어 가 있었는데 아버님은 "원래 그런거란다. 저렇게 앓고 나면 훨씬 잘자라지!" 그로부터 두달 후 이렇게 자랐다.가을이 기다리며 자주 들여다 보고 있다.(7월 20일)
 5월 20일 이후 일주일쯤 지나자 한바탕 몸살을 앓았었다. 순이 까맣게 타들어 가 있었는데 아버님은 "원래 그런거란다. 저렇게 앓고 나면 훨씬 잘자라지!" 그로부터 두달 후 이렇게 자랐다.가을이 기다리며 자주 들여다 보고 있다.(7월 20일)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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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고구마는 여전히 따뜻한 남쪽에서나 재배될 뿐이었다. 따라서 만백성들의 배고픔을 해결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이런 단점을 안타까운 소회로만 그치지 않고 난관을 극복하고자 고민했던 사람은 김장순. 그는 중부지방에서도 고구마 재배를 하여 널리 퍼뜨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마침 그는 전라도 보성에서 9년 동안이나 고구마 재매를 연구한 선종한이라는 사람을 만났다. 둘은 힘을 합하여 서울에서 시험재배를 시작했고 마침내 성공한다. 그리하여 1813년(순조 11년), 김장순은 자신의 재배 경험과 선종한의 연구결과를 토대로 <감저신보>라는 책을 펴내게 된다. 이후 고구마는 중부지방에서도 재배되기 시작했다."(책 속에서)

고구마 재배 확산에 서경창도 빼놓을 수 없다. 그가 실학을 연구하는 최대 목적이자 과제는 백성들의 주린 배를 채워줄 식량문제의 해결이었다. 고구마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뜻은 있으나 시험재배를 할 땅 한 조각조차 없는 가난한 양반이었다. 이렇다 할 지위조차 없던 그는 고구마 재배법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데 힘을 쏟는다.

그는 시중에 분분하게 떠도는 고구마 재배법들을 취합하고 비교해 고구마의 파종 시기, 씨고구마의 소요량, 줄기의 선택과 심는 시기, 착생 부위 등 고구마 재배에 가장 중요한 것들을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기술한다. <종저방>이란 역작은 이렇게 나온다.

조선최대의 농학서인 <임원경제>의 저자 서유구(1764~1846)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서유구는 일찍이 농학에 관심이 많았다. 그의 농학에 대한 관심은 이조판서를 거쳐 대제학에 이르는 동안에도 계속되어 지속적으로 농서들을 기술하게 된다.

"1834년에 그는 전라도 관찰사를 지내고 있었는데 그해에 전라도 지방에 대흉년이 들었다. 이에 구황작물인 고구마를 좀 더 널리 확산시켜 활발하게 재배해야겠다고 생각한 그는 강필려의 <감저보>, 김장순의 <감저신보>에다 중국과 일본의 농서를 참조하여 <종저보>를 짓는다. 동시에 고구마 재배농가에서 씨고구마를 구하여 모든 고을에서 이를 재배토록 했다. 서유구에 의해 고구마는 남쪽 거의 모든 지역으로 전파된다."(책 속에서)

조선왕조실록이 미처 챙기지 못한 역사 '뜻밖의 한국사'

안심 먹거리 전도사 안병수씨의 추천 도서 한 권
ⓒ 한언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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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날 때부터 허약했던 저자가 심장병, 위장질환, 간질환, 신장병, 손발이 마비되는 증상 등을 병원이나 약에 의존하지 않고 혼자 치유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책이다.  그녀가 제시하는 가장 이상적인 음식은 고구마다. 

2006년 9월, 한언출판사에서 낸 이 책은 <과자, 내 아이를 해치는 달콤한 유혹>이라는 책으로 가공식품의 실체를 파헤친 안병수씨가 '트랜스 지방' 관련 인터뷰 당시 '우리 몸을 살리는 바람직한 먹거리'를 제시하면서 추천했던 책이다. 안병수씨도 이 책 덕분에 고구마의 우수함을 톡톡히 누리고 있다고.

'자라는 동안 평균 22℃가 유지되어야 한다거나 15℃가 내려가면 성장이 멈춘다는 것, 일교차가 크고 물이 잘 스며드는 땅에서만 자라는' 고구마의 특성 때문에 우리 땅에서 쉽게 자랄 수 없었던 고구마가 전국적인 작물이 된 것은 1900년대 초. 16세기 말인 선조 때 어부들에 의해 소개되고 재배가 시도된 이후 3백년 만에 전국 토착화에 성공한 셈이다.

오늘날 우리들이 사계절 내내 쉽게 사먹을 수 있는 고구마에는 이처럼 ‘백성들의 굶주림을 해결하겠다’는 뜻있는 양반들의 숭고한 뜻과, '학문만을 위한 학문이 아닌 인간에게 실질적으로 이로운 학문을 추구'하였던 학자들의 지난하고 고단한 노력이 스며있는 것이다.

붕당 정치와 사리사욕으로 얼룩진 조선시대, 개인의 영달보다는 남을 살리는 데에 삶의 뜻을 두고 고구마재배에 삶을 다한, 제대로 된 선비정신과 배운 자의 자존심을 제대로 뿌리내리게 한 이 선비들의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다.

<뜻밖의 한국사>는 이처럼 우리 일상의 소재들을 통해 쉽게 만나는 역사이다. 고구마처럼 흔한 우리 일상의 것들의 숨은 이야기들을 역사 속에서 발굴, 재미있고 쉽게 들려주고 있다. 워낙 많은 주제들을 다루고 있어서 깊이가 다소 떨어지는 느낌도 있지만, 외워야 하는 학문으로 생각하다 보니 딱딱하고 어려울 수밖에 없는 역사를 우리 곁에 쉽게 돌려주고 있다는 장점이 앞선다고 할까?

아래는 <뜻밖의 한국사>가 다루고 있는 주요한 내용들.

▲연지곤지는 생리중이라는 표시? ▲무서운 새디스트였던 선비의 아내들 ▲고려시대엔 오누이간에도 혼인을 했다 ▲왜 한국인만 시집간 여자가 성을 바꾸지 않을까? ▲신라시대에 대중목욕탕이 있었다? ▲고려 때는 60일에 한 번씩 전 국민이 밤을 세웠다 ▲조선시대까진 남자들도 귀를 뚫고 귀고리를 했다! ▲조선 사람의 밥 짓기 기술은 천하제일 ▲김밥은 전래 식품일까 ▲우리는 언제부터 우유를 마셨을까 ▲식혜의 선조는 젓갈국물이다 ▲뭐? 신라시대에 기독교가 들어왔다고? ▲조선시대의 외국어교과서 ‘노걸대’ ▲조선시대에도 대중언론이 있었다 ▲18세기 인삼수출의 최대경쟁국은 미국?

덧붙이는 글 | 조선왕조실록에서 챙기지 못한-<뜻밖의 한국사>/김경훈 지음/오늘의 책/2004년/10,000원...이 책은 최근 일부 출판인들의 '부담없이 사서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책을 만들자'는 뜻에 의해 문고판(보급판)으로 2008년 3월 25일에 재발행되었다. 이 문고판은 크기와 가격은 3분의 2로 줄었지만 내용도 같고 무게가 줄어 직장인들 사이에 인기가 높다. 흠이라면 내용은 그대로, 책크기를 줄이다보니 활자가 작아졌다는 것이다. 시리즈가 꽤 알차다. 이 책의 문고판 가격은 6000원이다.



뜻밖의 한국사 (보급판 문고본) - 조선왕조실록에서 챙기지 못한

김경훈 지음, 오늘의책(2008)


태그:#고구마, #뜻밖의 한국사, #감저보, #조엄, #서유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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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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