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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 나가본 사람들은 안다. 언어와 문화가 다른 타국에서 대면하는 작은 친절, 작은 나눔이 현지 생활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며칠 머무르다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계속 살아야 한다면 친절과 나눔의 효용도는 더 커진다.

 

국제 결혼이 증가하며 천안 지역 여성 결혼 이주민의 숫자도 늘었다. 2005년 12월 천안시 여성 결혼 이주민은 141명으로 조사됐다. 2006년 12월 기준해서는 181명으로 전년 대비 40명이 증가했다. 2008년 6월 현재 333명으로 4년새 2배 이상 늘었다.

 

여성 결혼 이주민이 증가하며 아픈 소식도 있었다. 2007년 베트남에서 천안으로 시집 온 스무살 꽃다운 나이의 후인마이씨가 26살 연상인 한국인 남편에게 처참히 죽임을 당한 사건은 지역 사회 여성 결혼 이주민들의 관심을 환기시켰다.

 

후인마이씨의 죽음이 계기가 된 것은 아니지만, 현재 천안은 여러 단체와 기관에서 여성 결혼 이주민들의 정착을 돕는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사업간 중복성, 지역특성을 감안하지 않은 일회성 행사 등의 문제도 나타나고 있지만, 더 이상 외부인이 아닌, 여성 결혼 이주민들을 지원하고 돕는 활동은 더 많은 활성화가 요구된다. 자신의 능력을 나눠 여성 결혼 이주민들의 지역사회 안착을 돕는 세 명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여성 결혼 이주민들의 한국어 선생님 최윤순씨

 

지난해 천안시 보건소는 천안지역 181명 여성 결혼 이주민들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벌였다. 조사 결과 한국어를 잘한다고 밝힌 이주 여성은 31%(51명), 37%(67명)는 보통, 31%(57명)는 약간 한다고 응답했다.
 

이주 여성들이 생활에서 겪는 가장 큰 곤란함이 언어소통의 어려움이다. 최윤순(52, 천안시 쌍용동)씨는 작년 3월부터 천안시 여성회관에서 여성 결혼 이주민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방학기간을 제외하고 최씨는 3월부터 6월까지, 9월부터 12월까지 상하반기 2번에 걸쳐 각각 16주씩 한국어 교실을 진행한다.

 

"이주 여성 한국어 교실을 맡기 전 2003년부터 여성회관에서 할머니들에게 한글을 알려드렸죠. 지금도 계속합니다. 월요일과 수요일 오전은 할머니반을, 오후에는 여성 결혼 이주민반을 2시간씩 지도한답니다."

 

결혼과 동시에 초등학교 교단을 떠난 최윤순씨는 가슴 한켠에 늘 학생들과 만남을 꿈꿨다. 정식 학교는 아니지만 백발의 할머니부터 여러 나라에서 온 국제(?) 제자들을 대하는 기쁨은 오히려 더 크다. 특히 1년이 넘게 한 번의 결강도 없이 이주 여성 한국어 교실을 진행하면서 본인 생각이 달라진 점도 많다고 최윤순씨는 말했다.

 

"나라만 다를 뿐 이주 여성들도 똑같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예전에는 아들이 외국인과 결혼한다면 절대 허락하지 않겠다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요. 이주민을 바라보는 제 생각과 시선이 한결 넉넉히 바뀐 점이 가장 큰 보람이죠."

 

수요일 오후 한국어 수업이 끝난 뒤에는 이주 여성들의 요리강습 통역까지 자청해 활동하고 있는 최윤순씨. 아쉬움도 밝혔다.

 

"이곳에 오는 이주 여성들은 그래도 선택받은 사람들이죠. 남편과 가족들이 외출을 막아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도 오지 못하는 이주 여성들도 있습니다. 그분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필요하죠."

 

이주 여성으로 여성 결혼 이주민 돕는 유승미씨

 

한국 기업체로 해외취업해 근무하던 중 남편을 만나 2003년 결혼한 유승미(37, 천안시 목천읍)씨. 결혼 후 한국 국적을 취득해 이름도 한국 이름으로 바꾼 유승미씨는 세 자녀를 출산해 다복한 가정을 이루고 있다.

 

자녀들의 뒷바라지와 가정 일로 바쁘지만 일상을 쪼개 유씨는 지난 3월부터 여성 결혼 이주민 자국민 서포터즈로 활동하고 있다.

 

"이주 여성들이 병원 등에 갈 때 동행하고 집을 방문해 한국어 교육도 돕습니다. 집에서 간단히 할 수 있는 한국 반찬 요리법도 알려주죠. 남편이나 시어머니 등 가족과 대화에 통역자 역할을 할 때도 종종 있습니다."

 

천안시 건강가정지원센터가 주최한 행사 참석을 계기로 다른 4명 여성 결혼 이주민과 함께 자국민 서포터즈 활동을 시작했다. 서울과 천안을 오가며 사전 교육도 받은 유승미씨.

 

처음에는 가족의 반대도 있었다. 특히 남편은 서포터즈 활동 초반 유씨의 도움을 요청하는 이주 여성들의 전화가 자주 걸려오고 통화도 길어지자 활동을 만류했다.

 

"막내가 일곱 살로 엄마를 많이 찾고 남편의 걱정도 공감은 해요. 하지만 저와 같은 모국인 필리핀에서 온 이주 여성들이 이곳에서 마음 터 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겠어요? 남편에게 그런 점을 설명하니 지금은 당신을 믿는다며 이해합니다."

 

후배들의 고충을 상담하며 유승미씨는 꼭 빼놓지 않는 말이 있다.

 

"조금 참으라고 해요. 어린 나이에 타국으로 결혼해 와 하고 싶은 일이 오죽 많겠어요? 쇼핑도 마음껏 하고 외출도 아무 때나 하고 싶겠죠. 그런데 여건이 그렇지 않잖아요. 조금 참고 지내며 가족과 소통을 하게 되다보면 나중에 자연스레 하게 된다는 사실을 강조하죠."

 

유승미씨는 여성 결혼 이주민들이 초기에 시어머니와 관계 설정에 어려움을 많이 겪는다며 이주 여성 뿐만 아니라 가족 전체의 교육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술치료로 이주 여성 상처 보듬는 김명숙씨

 

세례명이 카타리나인 김명숙(54, 천안시 직산읍)씨는 매주 목요일마다 천안모이세 이주여성의 집을 찾는다.
 
2004년 1월 문을 연 모이세 이주여성의 집은 가정폭력, 인권침해 등 어려움에 직면한 이주 여성들을 위한 쉼터. 김씨는 쉼터의 이주여성들을 대상으로 미술치료를 진행한다. 2005년부터 시작해 벌써 4년째 계속하고 있다.
 

"다니는 성당에 모이세 사목을 하고 계신 신부님이 방문하셨죠. 모이세 활동을 소개하며 관심과 참여를 권유하셨습니다. 영어미사가 있다는 소식도 그때 처음 알았죠."

 

매주 일요일 오후 오룡동 성당에서 열리는 이주민과 함께하는 영어미사에 참석한 일이 쉼터의 미술치료로까지 이어졌다.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김명숙씨는 미술치료 1급 자격증의 전문가이다. 그림은 그리는 이의 마음을 담는 법. 도화지 위 그림 속 투영된 이주 여성들의 상처는 어떨까.

 

"아기를 사산한 한 이주여성은 아기가 천사가 되어 날아가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어느 이주 여성은 그리고 싶은 걸 그리라는 주문에 여러 사람이 악수하는 그림을 그렸더군요. 그만큼 가족간 혹은 구성원간 불화가 심해 화합이 절실한 심정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죠."

 

타국에서 정신적, 물리적 상처를 입은 이주여성들의 아픔을 더 잘 보듬기 위해 김명숙씨는 작년부터 사회복지대학원에서 가족 치료를 공부하고 있다. 그런 김씨를 쉼터의 이주 여성들은 '엄마'라고 부르며 속 이야기를 털어 놓는다.

 

이주 여성의 상처를 가까이서 지켜 본 김명숙씨는 "한국 남성들의 뿌리깊은 우월주의가 여성 결혼 이주민들의 안정과 정착에 걸림돌이 된다"며 쓴소리도 내 놓았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천안지역 주간신문인 천안신문 489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윤평호 기자의 블로그 주소는 http://blog.naver.com/cnsisa


태그:#여성결혼이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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