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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은 큰 누님 생일(75회)이었고, 24일은 장모님 생일(81회)이었습니다. 멀리서 축하를 하러 온 가족들을 만나고, 큰 누님이 입원해있는 병원에 다녀오느라 바빴는데요. 맛있는 걸 먹느라 발보다 입이 더 바빴던 것 같습니다.  

 ‘사돈’이면서 친척처럼 가깝게 지내며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건강을 염려하던 장모님(왼쪽)과 큰누님(오른쪽)의 새 각시 때 모습.
‘사돈’이면서 친척처럼 가깝게 지내며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건강을 염려하던 장모님(왼쪽)과 큰누님(오른쪽)의 새 각시 때 모습. ⓒ 조종안

입이 바빠지기 시작한 때는 아내가 집에 도착하던 22일 밤부터였습니다. 아내가 오면 자랑해야겠다고 준비하고 있던 시원한 ‘치자 콩국수’를 만들어 먹었거든요. 오랜만에 아내와 마주앉아 대화를 나누며 먹으니까 맛도 배가 되는 것 같았습니다. 아내도 맛있다며 한 그릇을 다 비우더라고요.

'부산에 오겠다'는 동생의 전화

큰누님 생일인 23일 아침에는 제가 사는 아파트 주소를 묻는 전화가 동생에게 걸려왔습니다. 전에도 비슷한 전화를 받고 “뭘 보내려고?”라고 물었다가 머쓱해했던 경험이 있어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더군요. 

시계를 지난 5월 초순으로 돌립니다. 5월2일로 기억하는데요. 아침 일찍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사기 전화나 부동산을 소개하는 전화가 짜증날 정도로 걸려오지만, 웃으며 끊을 정도로 여유가 생겼고, 아내와 떨어져 지내니까 그런지 전화 소리가 반갑게 들렸습니다. 

“아~ 여보세요!”
“저에요! 잘 지내시지요? 메모해둔 게 날아가 버려서 그러는데 형님 아파트 주소 좀 알려주세요.”

어쩌다 고향에 가면 먹고 싶은 거 사드시라며 용돈을 주던 동생이라서 제가 좋아하는 마른 생선을 택배로 보내주려고 주소를 묻는 줄 알았지요. 하지만 먼저 묻기도 그렇고 해서 참았습니다. 그런데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더라고요. 해서 주소를 알려주면서 “뭘 보내려고?”라고 물었습니다.

“다른 게 아니고요. 오늘 큰형님과 형수님을 모시고 큰누님 면회를 가는데, 형님 아파트 주소를 내비게이션에 저장하고 가려고요. 전에 다녀오긴 했지만 오래돼서 헷갈리네요.”

주소를 내비게이션에 담으려 한다는 말에, 얼마나 머쓱했는지 모릅니다. 자라목처럼 들어가는 걸 느꼈으니까요. 전화를 끊으며 ‘앞으로는 무슨 일이 있어도 뭘 주려느냐고 묻지 않겠다’라고 다짐을 했는데, 주소를 묻는 전화가 또 걸려온 것입니다.      

동생은 아내와 대학에 다니는 아들과 함께 평택 누님 집에 와있다며 오늘(23일)이 큰누님 생일이니 부산에 내려와 점심이나 먹고 가려고 한다고 했습니다. 해서 점심시간인 12시 30분에 병원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큰누님의 75회 생일

큰누님 생일날 점심을 함께 할 숫자를 세어보니 모두 여덟 명이더라고요. 해서 조금 일찍 병원에 가서 근처에 있는 식당을 예약하려고 아내와 오전 11시에 집을 출발해 12시쯤 도착했습니다.    

큰누님은 예상대로 아내를 몰라봤습니다. 제가 부부싸움을 할 때도 항상 아내 편에 서주었고, 집에 들를 때마다 고생한다며 격려해주던 사람인데 몰라보다니, 큰누님은 자아를 상실한 병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집을 나오면서 아내에게 병원에 가면 가족이 아닌 간호사 입장에서 큰누님을 보고 느낀 점을 얘기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과거 경험을 얘기하며 안타까워할 뿐 제가 듣고 싶은 얘기는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제 욕심에 무리한 부탁을 했다는 것을 깨닫기 까지는 1분도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원장도 기적이 일어나면 몰라도 완치는 어렵다고 했거든요.

 병원 근처 곰탕 전문 식당에서 몇몇 형제들이 모여 점심을 먹는 것으로 큰누님 생일을 축하했습니다. 보기에는 별로이지만 국물 맛이 진국이라서 그런지 ‘맛있다!’는 말이 여기저기에서 나오더라고요.
병원 근처 곰탕 전문 식당에서 몇몇 형제들이 모여 점심을 먹는 것으로 큰누님 생일을 축하했습니다. 보기에는 별로이지만 국물 맛이 진국이라서 그런지 ‘맛있다!’는 말이 여기저기에서 나오더라고요. ⓒ 조종안

옷을 갈아입고 있는데, 동생이 병원 주차장에 도착했다는 전화가 왔더군요. 아내와 저는 큰누님의 외출 절차를 마치고 서둘러 병원을 나와 가족들과 반가운 상봉을 하고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평택과 군산에서 온 형제들은 한우만을 취급한다는 곰탕 전문 식당에서 점심을 맛있게 먹으면서 큰 누님 생일을 축하하고 헤어졌는데요. 오랜만에 아내가 자리를 함께 해서 분위기가 더욱 활기차고 좋았습니다. 멀리서 온 손님들이니 대접해야 한다며 점심값을 아내가 지불을 했기 때문에 마음이 더욱 가벼웠는지 모릅니다.  

기뻐할 소식이 하나 있는데요. 지난 6월 초에는 막내 매형을 몰라봤던 큰 누님이 이번에는 유심히 바라보더니 “소정이 아빠 아녀!” 하는 것이었습니다. 기억력이 되살아났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얼마나 놀라고 기뻤는지 모릅니다.

식사를 마치고,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다 형제들과 아쉽게 헤어진 저와 아내는 큰누님을 병원에 모셔다 드리고 구포 시장에 들러 ‘콩국물’과 ‘볶은 참깨’, ‘토마토’, ‘치자국수’ 등을 사가지고 집으로 왔습니다. 비록 짧았지만 만남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재확인한 자리였다는 것에 보람을 느꼈습니다. 

장모님의 81회 생일

집에 도착한 아내와 저는 사워를 하고 시원한 대자리에 누워 오랜만에 한가로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졸리면 낮잠도 즐기면서 장모님 생일과 이사 문제 등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지 의견을 나누며 심신의 피로를 풀었습니다.  

이사할 날을 잡지는 않았지만, 함부로 다룰 수 없는 상패와 상장, 장식용품 등 가벼운 이삿짐 정리도 했습니다. 손대기 어려운 물품들을 미리 가져가면 이사하는 날 조금이라도 손이 가볍고 편할 것이니까요.

대화가 무르익고 있는데 장모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아내가 집에 있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궁금해서 전화를 했던 모양이었습니다. 어제 밤에 왔는데 큰누님 생일이라서 저녁에나 갈 것이라고 전화를 드렸어야 하는데 죄송하더라고요. 해서 바로 가겠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전화를 끊기 무섭게 하룻밤 자고 올 준비를 해가지고 아내와 장모님이 계시는 처제 아파트로 갔습니다. 장모님은 사위집에서 10년이 넘게 살고 있는데 손아래 동서가 친어머니처럼 모시는 바람에 제가 미안할 정도입니다. 란(蘭) 가꾸기와 낚시 등 사위의 취미생활이 마뜩찮을 때는 장모님이 화를 내실 정도로 흉어물이 없으니까요.    

 전북 정읍이 고향이면서 부산에서 40년 넘게 사셨다는 처 외숙모님. 젊으셨을 때는 음식솜씨만 좋은 게 아니라 멋쟁이였고 미인이셨다고 하더라고요.
전북 정읍이 고향이면서 부산에서 40년 넘게 사셨다는 처 외숙모님. 젊으셨을 때는 음식솜씨만 좋은 게 아니라 멋쟁이였고 미인이셨다고 하더라고요. ⓒ 조종안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니까 고소하고 담백한 미역국 냄새가 코를 훔치고 달아나더군요. 식사를 하라고 하는데 밥을 먹은 게 후회가 되었습니다. 음식솜씨가 좋은 처 외숙모 두 분이 고기와 미역을 사가지고 오셔서 끓였다고 하더라고요.   

아내는 아침 반찬준비를 상의하겠다며 화장품 대리점을 하는 동생(처제) 가게로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조금 있으니 다시 올라왔더군요. 생일을 맞는 장모님이 손님을 대접하겠다며 40만원을 내놓아 중국집에 ‘코스 요리’로 예약을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살아도 부모 덕 죽어도 부모 덕’이라는 말이 떠오르고, 오늘도 입이 바쁠 것 같다는 생각에 웃음이 절로 나왔습니다.

장모님 생일날 아침은 처 외숙모가 끓여주신 미역국으로 간단히 먹었는데, 외숙모 음식솜씨가 좋다는 아내의 자랑대로 맛이 그만이었습니다. 

아침을 먹고 12시 30분에 도착하는 서울 사는 손위 처남 부부와 함께 중국집으로 향했는데요. 식당 분위기도 좋았고, 몇 년 만에 먹어보는 중국집 요리는 한동안 잃어버렸던 시각과 미각을 돋우기에 충분했습니다.

 81회 생일날 중국 요리점 ‘황산(黃山)’에서 외손녀들에게 축하받는 장모님. 자식들이 준 용돈이라고 하지만 생일날 식대를 40만원이나 내놓은 장모님도 그릇이 작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81회 생일날 중국 요리점 ‘황산(黃山)’에서 외손녀들에게 축하받는 장모님. 자식들이 준 용돈이라고 하지만 생일날 식대를 40만원이나 내놓은 장모님도 그릇이 작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 조종안

 우리 고유의 불고기에 양식 비프스테이크 맛을 가미한 것 같은 ‘쇠고기 송이볶음’을 대표 요리로 소개합니다.
우리 고유의 불고기에 양식 비프스테이크 맛을 가미한 것 같은 ‘쇠고기 송이볶음’을 대표 요리로 소개합니다. ⓒ 조종안

현직 목사이며 신학대 교수인 큰아들의 축도를 시작으로 생일케이크를 자르고 차례로 나오는 중국 요리를 맛보기 시작했습니다. 해물 냉채를 시작으로, 매생이 게살 스프, 새우튀김, 샥스핀 요리, 구운 조갯살, 쇠고기 송이볶음 순으로 나왔는데 행복했다는 말 외에는 표현할 방법이 없어 유감입니다.    

고급 요리를 맛있게 먹고 모르는 척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해서 저녁에는 찬을 준비하려고 주방에 들어가는 처제를 말리고, 장모님이 좋아하는 중국식 냉면을 시켜드렸습니다. 중국식 냉면에는 돼지고기 대신 새우가 들어가는데요. 장모님과 ‘잡채밥 먹는 날’을 없애고 ‘냉면 먹는 날’로 바꿔 시켜먹은 경험이 있어 생각했던 것입니다. 냉면 한 그릇이라도 대접을 하니까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더라고요.   

 날이 더워지면서 장모님과 즐겨 먹는 중국식 냉면. 돼지고기나 닭고기 대신 새우가 들어간 게 특징인데요. 국물 맛이 담백하고 시원해서 좋습니다.
날이 더워지면서 장모님과 즐겨 먹는 중국식 냉면. 돼지고기나 닭고기 대신 새우가 들어간 게 특징인데요. 국물 맛이 담백하고 시원해서 좋습니다. ⓒ 조종안

냉면을 먹고 집으로 돌아온 아내는 피곤한지 일찍 잠자리에 들더니 25일 새벽 4시도 안 되어 일어나 집을 떠났습니다. 사흘 밤낮을 함께 했던 아내가 출발하는 모습을 보고 들어와 생각해보니 1년 넘게 떨어져 지내오면서 이번이 가장 긴 만남이었더라고요. 그런데도 하룻밤만 자고 갔을 때보다 빈자리가 더 허전했습니다.

마음이 허전한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지역에 따라 폭우가 쏟아진다는 기상대 예보도 있었고 해서 안전운전을 할 수 있을지 걱정되어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며 빨리 지나가버린 시간만 원망했는데요. 즐겁고 보람 있는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원망도 가능한 거라고 생각하니 위로가 되기도 했습니다.


#장모님생일#큰누님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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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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