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다미영화제 무대를 뒤로한 아이들과 다미선생님
 다미영화제 무대를 뒤로한 아이들과 다미선생님
ⓒ 오창경

관련사진보기


7월 22일은 충화초등학교(충남 부여군 충화면 소재) 아이들이 시사회를 열기로 한 날이었다. 그날을 위해 충화 아이들은 그동안 다음(Daum) 커뮤니케이션에서 제공하는 미디어 스쿨 교육을 한양대 뷰리플(view reply)팀에게 받아왔다. 충화 초등학교가 전국에서 5개 학교에 선정되는 다음 커뮤니케이션의 미디어 스쿨 교육의 기회가 주어진 것은 산간벽지이며 학생수가 50여명 안쪽이어야 한다는 조건에 맞아서였다.

충화초등학교 운동장에는 시사회 전날인 21일 부터 다음 커뮤니케이션에서 시사회를 위한 장비들과 전문가들이 도착해있었다. 대형 버스에는 스크린이 설치되고 조명과 각종 장비들이 제자리를 찾아가자 면사무소에서 빌려온 의자들로 객석이 꾸며졌다. 스크린 아래에는 간이 무대가 마련되었는데 객석 가운데에 레드 카펫을 깔아서 마치 유명 영화배우들이 등장할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해 놓았다.

"어머! 레드 카펫이잖아! 어떻게 이런 것 까지."

다미 뷰리플 쌤들과 아이들의 아쉬운 눈물이 흐르는 가운데
 다미 뷰리플 쌤들과 아이들의 아쉬운 눈물이 흐르는 가운데
ⓒ 오창경

관련사진보기


충화초등학교 학부모들은 시골 학교 운동장에 난데없이 유명 영화제 같은 분위기가 연출되자 감탄을 하면서도 한 여름 밤의 꿈은 아닌지 마냥 신기해했다. 남자아이들은 나비 넥타이에, 여자 아이들은 하얀 드레스를 입혀 놓아서 정말로 국내 유명 영화제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았다.

"이렇게 까지 분위기를 잡아 놓았는데 아이들은 영화를 잘 찍었는지 몰라?"
"글쎄 말이야, 지네들이 시나리오도 쓰고 카메라 들고 직접 찍었다는데 얼마나 봐 줄만 하려나."

부모들은 아이들이 영화를 찍는다고 7명의 대학생들을 졸졸 따라다닐 때만 해도 그저 좋은 경험이나 쌓으면 되지 하는 생각들이었다. 아이들이 영화라는 종합 예술 작품을, 그것도 일주일이라는 단기간에 찍어서 시사회를 열 수 있을지 반신반의 했었다.

우리 아들 녀석도 무엇을 하는지 물어봐도 대답은 시원치 않은데 어느 날은 얼굴에 분장을 해서 먹을 잔뜩 묻힌 얼굴로 들어오기도 했고 찌는 더위 속에 영화 촬영을 위해서 검정색 긴팔 옷을 입고 등교해야 한다면서도 발걸음이 날래기만 했었다.

드디어 레드 카펫 행진이 끝나고 충화초등학교 아이들이 제작하고 주연을 맡은 5편의 단편영화의 시사회가 시작되었다. 충화면민들과 학부모들의 눈길이 모두 스크린에 쏠리고 코믹, 생활, 공포, 액션 사극 등의 장르도 다양한 영화 작품이 상영되었다.

일주일 간의 고생했던 시간도 추억 속으로 사라져 간다...

추억은 필름을 남기고 ....
 일주일 간의 고생했던 시간도 추억 속으로 사라져 간다... 추억은 필름을 남기고 ....
ⓒ 오창경

관련사진보기


"어머! 어머!, 우리 인서한테 저런 면도 있었네. 숫기가 없어서 카메라 앞에서는 한 마디도 못할 줄 알았는데."
"맞아, 우리 수현이는 어떻구요. 수업 시간에 발표도 제대로 못하는 애가 연기는 능청스럽게도 잘하네. 우리가 아이들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는 것 같아요."

관객석의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이런 소리들이 오갔다. 작년 한 해 동안 충화초 아이들에게 글짓기 지도를 해본 나로서도 그 아이들이 직접 대본을 썼다는 사실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주제도 아이들이 정했구요. 연기 지도도 아이들끼리 직접 했어요. 저희는 편집과정에서 기계적인 부분만을 도와줬을 뿐이에요."

뷰리플 김영호 팀장은 영화를 보면서 입을 다물지 못하면서도 학부모들의 쏟아지는 질문에 일일이 답변을 해줘야 했다.

"아이들이 쉽게 오케이 사인을 안 해줘서 한 장면을 30분씩이나 찍었다니까요."

선생님들 중에 유일한 영화 출연자인 이용규 선생님은 영화를 찍기 위한 아이들이 열정이 남달랐다며 선생님 역시 아이들의 숨어 있는 소질을 계발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고 했다.

시사회가 무르익는 동안 객석에서는 조용한 흐느낌 소리가 들려왔다. 영화를 찍기 위해서 동분서주했던 일주일이 꿈처럼 지나고 난생처음으로 경험한 영화 세상이 스크린에 펼쳐지자 아이들은 너도나도 감정에 겨운 모양이었다. 뷰리플 팀 7명의 눈자위도 붉어지기 시작하더니 눈에서 물방울이 방울방울 떨어지고 있었다.

철부지 시골 아이들을 영화 감독으로 배우로 단련시키기 위해 한 여름 땡볕 속에 충화면을 누비고 다녔던 지난 일주일이 영원히 추억 속으로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말 안 듣고 공부하기 싫어하는 아이들이 영화를 만들고 상영까지 직접 해냈다는 사실에 엄마들의 눈에도 감동의 눈물이 맺혔다.

충화초등학교에서 열렸던 한여름밤의 '다미 영화제' 가 끝났다.

전교생이 40명 밖에 안 되는 시골 마을에 있는 학교에 보내고 있다는 사실이 그 날처럼 자랑스러웠던 날이 없었다. 도시에서 친구들이 왔다가 가면, 과연 우리가 교육적 소신이 뚜렷해서 아이들을 그런 학교에 보내고 있는 것인지, 무관심해서 방치하고 있는 것인지 나 자신도 헷갈리곤 했었다. ‘대치동 키드’, ‘선행 학습’ 이라는 말을 교육적 열패감으로 들어야 하는 시골 학부모로 사는 일이 그날처럼 뿌듯했던 적이 없었다.

아이들의 일생을 통해 손수 영화를 제작해봤다는 추억이야말로 선행 학습 보다 값진 학습이 될 것이다. 다음 미디어 스쿨에서는 충화초등학교에 캠코더 1대와 카메라를 기증했다. 충화초등학교 아이들이 이 기기들을 이용해 영화 동아리를 만들어 크게는 눈부신 하늘과 푸른 숲이 있는 영상을 만들며 꿈을 키워갔으면 좋겠다.


태그:#충화초등학교, #다미, #뷰리플, #영화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충남 부여의 시골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조근조근하게 낮은 목소리로 재미있는 시골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