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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물론 알고 있습니다. 2008년 7월 30일은 휴일이 아닙니다. 주말도 아니지요. 그렇지 않아도 휘트니스 센터에 있는 트레이너에게 투표 이야기를 꺼냈다가 면박만 당했습니다.

 

"7월 30일 무슨 날인지 알고 계시죠?"

"예?"

"서울시교육감 선거일입니다. 출근하시기 전에 소중한 한 표 꼭 행사하세요."

 

이 때까지는 좋았어요. 하지만 대화의 끝은 이랬습니다.

 

"투표할 필요 없어요. 난 여태껏 투표라는 걸 해본 적이 없는 걸요. 뽑아놓으면 뭐합니까? 결국 하고 싶은 대로, 지들 마음대로 할 텐데."

 

잘해야 20% 투표율? 다시 생각해보세요

 

대화를 엿듣던 사람 몇몇도 트레이너의 말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정부가 하는 일 대부분이 일반 서민들에게는 불신의 대상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입니다. 공직에 있는 사람들을 떠올릴 때 흔히 부패하다고 여기고, 자기 이익만 챙기는 이기적인 족속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적지 않기 때문이에요.

 

지난 대통령선거 때의 선거율도 처참했지만, 이번 서울시 교육감 선거는 그보다 더할 것으로 보입니다. 대부분 언론에서는 투표율이 잘 해야 20% 선일 거라는 예측입니다.

 

교육감 선거 자체를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고, 알더라도 언제 어디서 하는지 조차 모르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설령 알더라도 투표는 하지 않겠다는 사람도 물론 적지 않겠고요. 이미 썩을 때로 썩은, 그래서 더 이상 맑아질 수 없다며 체념해버린 서민들은 선거에 무관심하게 된 겁니다.

 

"달라지겠어? 항상 똑같을 거야. 서울시 교육감 선거라고 다르진 않을 거라고."

 

MB를 보세요, 선거 전에는 얼마나 '서민' '서민'을 부르짖었습니까. 국밥집 할머니까지 동원해서 말이에요. 그런데 MB 정권이 현재 벌이고 있는 이 엄청난 난국을 보고 있노라면 '새빨간 거짓말'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인수위 때부터 삐걱거리던 정권은 이내 곧 소수의 이익을 위해 모두의 마음을 쑥대밭으로 만들었습니다. 때론 박정희 같고, 때때론 전두환 같기도 한 이 난감한 대통령과 그 수하들은 그야말로 서민들에게는 엄청난 골칫거리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삭막한 교실이데아는 계속 될 것인가

 

뭐 하나 제대로 지키는 법이 없는 이 나라의 정권은 영어몰입교육, 0교시, 일제고사, 우열반을 양성화 시키겠다면서, 끊임없이 약육강식의 채찍질을 휘두르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아프다고, 외롭다고 말할 때 그들의 말을 들어주기보다는 공부나 더 하라고 충고하는 셈이지요. 생존법칙을 누구보다 빠르게 체득한 요즘 아이들도 이런 거대한 압력에는 숨이 막히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러다가 내 인생은 어떻게 되는 거지? 공부하는 기계가 되는 건가, 그래서 그들의 길을 그대로 밟게 되는 것은 아닐까.'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아이들은 이내 곧 세상을 향해 내뻗었던 발톱을 숨기고 자신이 처한 상황에 순응하게 됩니다. 너를 누르고 올라가야 내가 산다, 평등한 교육 따위는 의미 없어. 나만 잘하면 그만인 세상이니까. 그런 아이들이 자라 만들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신자유주의의 후예들 밖에 남지 않는 겁니까? 어른들의 비리와 부패함 그리고 거짓말을 그대로 배우고 따라하게 되는 겁니까?

 

학생 개인별 수준에 맞는 이동식 수업이라. 요즘 아이들은 이 광경을 유하 감독의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보았지요. 70년대 후반 군사 정권 시절 살벌했던 학교 이야기를 그린 작품인데요. 아이들이 우열반 수업에 불만을 가져 교육청에 항의글을 보냈다가 들켜 선도부에 얻어맞는 장면이 나옵니다. '공부가 중요한 게 아니다, 인간이 먼저 되어야 한다' 말은 곧 어른들 말 잘 들어야 인간이 된다는 뜻과 통용되던 시대였습니다.

 

문제는 이것이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도 똑같이 통용될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외모와 내면 모든 것에 민감하고 예민할 수밖에 없는 청소년 시기부터, 사실상 계급과 차별로 나뉜 삶을 살게 되는 아이들이 과연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어차피 대학은 나와야 대우받고, 그것으로 세상이 자신을 평가한다는 걸 그들도 모르지 않을 텐데요. 더 치열하게 공부하면 해결이 될까요.

 

미국인과 똑같이 영어하고, 성적 수준 비슷한 아이들과 어울리고, 새벽별 보고 집을 나서 밤하늘 보며 집에 들어가는 삶. 그 삭막한 테두리 안에서 아이들은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요. 설령 거기서 살아남은 아이들은? 더 큰 테두리의 감옥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겠지요. 취직하기 위해, 먹고 살기 위해 무엇이든 포기하고 체념하는 법을 먼저 배우게 될 겁니다. 어려운 시대를 살아갔던 기성세대들이 비뚤게 맞춰놓은 퍼즐을 아이들은 제자리로 돌려놓지 못합니다. 그 퍼즐 위에 그대로 올라서는 겁니다.

 

아무런 죄 없는 우리의, 주변의 모든 아이들이 말이에요. 서태지 세대의 아이들은 교실이데아를 부르며 잘못된 교육을 비판했습니다. 이제 21세기의 아이들 역시 똑같이 교실이데아를 부르짖게 될지도 모릅니다. 아니, 이미 그렇게 진행되고 있는 중이지요. 이건 꿈이나 환상이 아닙니다. 엄연한 현실이에요. 그러니 두 눈을 감아서는 안 됩니다.

 

당신이 버린 한 표, 아이들의 미래를 망치는 것

 

'오뤤지'로 시작된 MB 정권의 위협은 대운하를 건너 미국 쇠고기 파동을 험난하게 관통하고 있습니다. 잃어버린 10년을 강조하며 코드 정치에 열중하고, 매번 일이 터질 때마다 변명과 수습에 여념이 없는 웃어른들의 만행을 더 이상 지켜볼 수만은 없는 노릇입니다.

 

특히나 그것이 교육문제라면 더욱 더 그러합니다. 교육 정책과 향방은 단순히 현재가 아닌 미래의 문제를 내포하고 있지요. 그래서 다른 문제들보다 더 크고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두 발을 딛을 이 대지가 삭막한 사막이 되느냐, 아름다운 풀숲이 있는 희망이 되느냐가 이번 교육감 선거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겁니다.

 

직선제로 선출되는 이번 서울시 교육감 선거는 7월 30일입니다. 결전의 날입니다. 똑같은 실수를 반복할 것인가,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는 믿음을 아이들에게 줄 수 있을 것인지는 바로 우리 어른들에게 달렸습니다.

 

아이들에게는 투표권이 없기 때문이에요. 이번이야말로 아이들에게 어른 노릇 제대로 할 기회인 셈입니다. 10분만 출근시간을 앞당기거나, 조금 일찍 퇴근해 저녁 여덟 시전까지 투표소를 찾는 것으로 충분합니다(투표 장소가 궁금하다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http://www.nec.go.kr)에 들어가 보세요).

 

당신이 그날, 소중한 한 표를 버렸다고 가정합시다. 투표율은 20%를 밑돌았고, 결국 보수층이 결집해 원하지 않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우리가 버린 그 표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습니다. 아이들의 숨죽인 울음과 한숨에 섞여 대기 속에 묻히고 말 것이기 때문이에요.

 

대기로 사라진 희망은 다시 되찾기 어렵습니다. 가능하다 하더라도 엄청난 시간이 소요되겠지요. 현실에서는 어마어마한 대가가 우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상당한 수준의 인내심을 요구하는 일이 되겠지요. 아이들은 여전히 사회의 폭력적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할 테고, 영어몰입교육의 압박 또한 여전할 테고요. 따라가지 못 하는 아이들은 곧바로 열등생으로 분류가 되고, 이들은 다시 글로벌 사회의 패배자 부류로 분류될 겁니다.

 

신자유주의에 취한 현 정권은 이들을 쓰레기통에 갖다 버리고 다시는 쳐다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게 현실이 될 겁니다. 설마 하는 사이, 거대한 괴물이 그 이빨을 드러내며 수많은 아이를 헤집고 다닐 겁니다. 믿을 수 없다고요? 당신이 버린 한 표는 결국 아이들의 소중한 미래를 버릴 수도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다음(www.daum.net)의 블로거뉴스에도 보낸 기사입니다.


태그:#서울시교육감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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