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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코치카터> 포스터
 영화 <코치카터> 포스터
ⓒ 파라마운트 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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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개봉한 영화중에 <코치카터>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흑인 밀집지역의 한 고등학교 농구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영화의 기본 구조는 문제 학생들로 구성된 만년 하위 농구부가 새로 부임한 열혈 농구코치에 의해 새롭게 거듭난다는 내용입니다. 

사실 이런 설정은 그동안 많은 영화에서 다루어졌기에 살짝 식상하기도 합니다. 문제 학생, 스포츠하면 언뜻 떠오르는 것이 문제 학생들이 우여곡절을 겪고 대회에서 승리한다는 공식과도 같은 내용입니다.

하지만 영화 <코치카터>는 기존의 이러한 영화적 공식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승리를 위해 내달리지 않습니다. 승리, 우승이라는 구체적 결과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그 과정 속에서 흘린 땀과 패배하더라도 그 패배에서 성장을 일구어내야 한다는 것을 궁극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 점이 <코치카터>가 기존의 학교 스포츠 영화와 차별성을 가지는 대목이자 미덕입니다.

이 영화가 승리보다는 아이들의 올바른 성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보니 농구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농구보다 '교육'의 중요성을 더 강조합니다. 새로 부임한 농구코치(사무엘 L. 잭슨 분)는 농구부원들에게 C 이상의 평점을 받아오라고 합니다. 평점이 C 이하로 떨어지면 농구를 아무리 잘해도 선수로 뛸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코치는 농구부 애들을 데리고 '도서관'으로 갑니다. 농구부원들은 이런 조치에 처음에는 거세게 반항을 합니다. 그러다 차츰 도서관 환경에 익숙해지고, 또 여러 선생님들과 친구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결국 모두 평점 C를 넘기게 됩니다.

제가 도서관 사서이다보니 영화 속 이러한 장면들이 꽤 흥미롭게 와 닿았습니다. 왜냐하면 영화에서 도서관을 통해 농구부원들이 학습능력과 성적을 향상시켰듯이 도서관은 우리 실제 삶에서도 교육능력을 향상시켜주기 때문입니다.

새로 부임한 농구코치(사무엘 L. 잭슨 분)는 농구부원들을 도서관으로 데리고 공부의 중요성을 열심히 설명하고 있다.
 새로 부임한 농구코치(사무엘 L. 잭슨 분)는 농구부원들을 도서관으로 데리고 공부의 중요성을 열심히 설명하고 있다.
ⓒ 파라마운트 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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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살배기 세림이의 도서관 정복기(?)

불현듯 제가 근무하는 도서관을 가끔 찾는 친구의 딸아이(이름이 '세림이'입니다. 이후부터는 그냥 세림이라고 부르겠습니다.)와 도서관 아르바이트 학생이 떠오릅니다. 저는 이 아이들을 보면서 도서관이라는 환경이 사람을 어떻게 성장시키는지 똑똑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먼저 세림이 얘기부터 해보겠습니다. 제 친구가 세 살이 된 세림이를 데리고 도서관에 처음 왔을 때였습니다. 세림이는 아장아장 걸음으로 도서관에 들어서서는 한참동안 도서관 이곳저곳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는 책꽂이로 가서 책을 한 권 뽑아들고는 마치 암벽등반 하듯 도서관 테이블의자에 올라서는 뽑아 온 책을 펼치는 것이었습니다.

세림이의 행동을 하나하나 설명하자면 도서관이라는 곳을 처음 와 본 세림이는 많은 책들과 책을 읽고 있는 언니, 오빠, 아저씨, 아줌마들이 참 신기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한참동안이나 도서관 입구에 서서 살펴봤던 것입니다.

또 세림이가 책을 뽑아들고 읽으려고 한 것은 도서관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책을 펼쳐서 읽고 있으니 세림이도 으레 그렇게 해야 되는 줄 알고 따라 한 것입니다.(아이에게는 보이는 것을 그대로 따라하려는 습성이 있습니다. 흔히 주변에서 어른들의 말투나 행동을 따라 하는 아이들을 쉽게 볼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세림이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음에도 혼자 알아서 책을 보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런 세림이의 행동은 도서관이 어떻게 학습에 대한 동기부여를 하는지 여실히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책과 거리가 멀다더니... 무협지로 시작해 중국 철학책까지

그럼 도서관 아르바이트 학생은 어떨까요? 이 친구는 도서관에서 1년 넘게 일을 했었는데, 처음 왔을 때 자기는 책하고는 너무 안 친해서 도서관 일을 잘 할 수 있을지 조금 걱정스럽다고 할 정도로 책과는 거리가 먼 친구였습니다.

그의 말마따나 처음 한두 달은 책을 나르는 것 이외에는 책을 전혀 만지지 않았습니다. 여유 시간에는 인터넷을 하거나 졸거나 그랬습니다. 그러다 두 달쯤 지나자 이 친구가 여유시간을 그냥 보내기가 아깝다며, 또 인터넷하기도 이제 지겹다며 재미나게 읽을 만한 책이 없냐고 저에게 묻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게 웬 떡이냐 싶어 얼른 재미난 만화책을 추천해 주었습니다.

만화책이 재미있었던지 도서관에 있는 만화책을 모조리 다 읽은 아르바이트 학생은 또 저에게 만화책 말고 다른 읽을 책이 없는지 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인기 있는 무협소설을 추천해주었고 그 학생은 무협소설류를 또 다 읽어버렸습니다.

황석영 평역 <삼국지> 겉그림
 황석영 평역 <삼국지> 겉그림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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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저는 <삼국지>(황석영이 편역한 삼국지)를 추천해 주었고, 삼국지도 다 읽어버린 아르바이트 학생은 더 이상 저에게 책 추천해 달라는 얘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삼국지를 통해 중국역사에 관심을 갖게 된 학생은 사마천의 '사기'를 비롯한 여러 중국역사 관련 책을 탐독했고, 대학을 졸업하기 직전에는 공자의 '논어'를 공부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책이라면 거부감부터 생긴다던 아르바이트 학생이 '무협소설-삼국지-중국역사-중국철학'으로 이어지는 독서수준 향상은 본능적인 인간의 지적호기심과 그 호기심을 무한정 충족시켜줄 수 있는 도서관이라는 환경이 함께 만들어 낸 성장인 것입니다.

세림이와 아르바이트 학생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영화 <코치카터>에서 농구부원들이 도서관을 통해 성적을 올린다는 설정은 꽤 설득력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궁극적으로 환경이 인간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도 잘 알 수 있습니다.

'맹모삼천지교'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맹자의 어머니가 아들 맹자의 교육환경을 위해 공동묘지·시장·서당 옆으로 세 번 이사했다는 일화에서 유례 된 말입니다. 맹모삼천지교는 교육환경이 사람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맹자가 위대한 유학자가 될 수 있었던 것도 환경의 중요성을 확실히 간파한 어머니의 역할이 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도서관은 우리 주변에서 찾을 수 있는 가장 좋은 교육환경입니다. 사람의 무궁무진한 호기심을 해결해 줄 방대한 자료가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어느 누구도 "공부해라!", "독서해라!"라고 강요하지 않는 자율이 있습니다. 그저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 취미를 자유롭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또한 누구나 다 책을 보는 공간이다 보니 공부, 독서에 대한 동기부여도 자연스럽게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저는 도서관을 한 번도 찾지 않는 이들이 영화 <코치카터>의 농구부원들처럼 자의든 타의든 일단 도서관에 한 번 와 보길 권합니다. 그리고 도서관에서 놀기도 하고, 다양한 지적욕구도 충족시켰으면 합니다. 또 나아가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도 해보길 바랍니다.

맹자에게 서당이 있었다면 우리에겐 도서관이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태그:#도서관, #코치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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