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달인'은 자신의 주장을 미심쩍어하는 상대방에게, 예컨대 화산불에 오징어를 구워 먹어 보았느냐고 되묻는다. 그리고 "안 해봤으면 말을 하지 마세요"라고 면박을 준다.
<실증주역>(청계 펴냄)을 쓴 황태연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를 만나러 가는 길에 그다지 적절하지 못한 이런 생각을 떠올린 것은, 다수 정치인들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현실정치의 다양한 사태를 <주역>으로 풀이한 '역술의 달인'을 만나기 때문이 아니다. 화제로 삼아야 하는 책이 다름 아닌 <주역>이고 게다가 '실증'이라는 어마어마한 단어를 제목에 단, 1천 쪽이 넘는 책을 펴낸 이름난 정치학자를 만나러 가기 때문이다.
나름대로 단단히 준비했지만 "해봤어?" 같은 무지막지한 반문은 아니더라도 "읽어 봤어?"에 말문이 막혀 버리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있다. 물론 읽어 보았다. 하지만 <주역>이 어디 그냥 읽기만 해서 될 책인가.
- 철학과 정치학을 연구하셨습니다. 그리고 공당인 민주당의 국가전략연구소장으로 계신 정치기획가이자 개헌과 관련한 주요한 오피니언 리더이십니다. 그런데 왜 하필 <주역>입니까?
"세간에 <주역>은 점을 치는 책으로도 알려져 있지요. 그런데 학술적으로 주역은 의리(義理)의 철학 책이에요. 공자나 주희는 점서이면서도 철학책이라는 중간적 견해를 보였습니다.
30년 가까이 서양 정치철학을 했지만 10여 년 전부터 틈틈이 본격적으로 동양 정치철학 쪽으로 힘을 기울였습니다. 공자와 아리스토텔레스는 매우 비슷합니다. 우선 국가의 목적이 뭐냐, 아리스토텔레스는 시민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라고 했죠. 그럼 행복이 뭐냐? '덕'이다, 즉 영혼의 덕스러운 활동이 행복이고, 또 덕은 뭐냐, 중용이라고 했어요. 이것은 공자의 얘기와 거의 같습니다.
동서양의 정치철학을 다 해야 한다는 지적인 의무가 형식적인 동기라면 내용적으로는 <주역>이 동양의 다양한 학문에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유학의 밑그림이기 때문입니다. 문왕과 무왕은 <주역>으로 정책을 집행하고 혁명도 합니다. 신중과 정성, 하늘에 대한 겸손. 하늘에 대한 겸손은 백성에 대한 겸손이겠죠. 통치자의 흰소리 한마디에 백성들은 가랑잎처럼 죽을 수가 있는 겁니다. 그런데 정책이 잘못되면 어떻게 되겠어요?
공자는 정성과 신중함과 끊임없이 정확성을 기하려는 노력으로 <주역>을 공부했다고 여러 차례 강조합니다. 공자는 45~47세 사이에 <주역> 공부를 시작했고 눈병이 날 정도로 공부를 열심히 하고 난 뒤 "천명(天命)을 모르면 군자일 수 없다"고 말합니다. 공자는 14년 동안 야인생활을 하다 4, 5년 정권을 잡았다가 쫓겨나고, 56세쯤 인간의 덕행의 최종 판단은 하늘의 몫이지 인간의 몫이 아니라고 깨닫습니다. 저도 30, 40대에 사회과학으로 세상을 다 알았다는 지적인 교만에 빠져 있다가 세상만사를 겪고 나서 <주역>을 만났습니다."
"지식과 세상에 대한 나의 교만을 <주역>이 일깨워"
- '실증' '과학적 주역 풀이' 등 어찌 보면 도발적인 말들을 쓰셨습니다. <주역>을 과연 실증하거나 ‘과학적’으로 풀이할 수 있습니까?
"실증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지만, 저는 쉽게 말해 도통을 해서 풀이한 것은 아니라는 뜻으로 썼습니다. 먼저 고증을 중시했습니다. 글자 고증이야 이미 많이 되어 있죠. 그런데 역사적 고증은 상당히 발견적인(heuristic) 측면이 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풀리는 그런 성격이 있어서 세월이 많이 걸립니다. 퀴리 부인이 라듐을 '일부러' 발견했나요, 10년 동안의 실패 끝에 우연히 발견한 그런 측면이 있는 거죠. 아무튼 글자 고증과 역사적 고증 두 가지를 합쳐서 고증이라고 했습니다.
둘째, 논증은 학문의 형식과 방법 면에서 절대적인 것이죠. 엄밀하게 각주가 없는 건 학문이 아니고 그건 대화하지 않았다는 뜻이죠. 한 가지를 주장하더라도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 저렇게 주장하는 사람의 주장 분포를 다 알아야 됩니다. 그리고 누가 보더라도 합당한 논거가 있어야 하죠. 대화가 없는 것은 학문이 아니라 독선입니다. 독선은 과학의 반대말이죠.
셋째는 서증(筮證), 쉽게 말해 점을 쳐서 검증하는 거죠. 실컷 고증, 논증으로 해석을 했는데 실제로 점을 쳐서 틀린다면 그건 말이 안 되겠죠. 사실 점을 치는 데 들어가면 문제가 복잡해집니다. 주희는 모든 것은 음양으로 이루어져 있고 64괘는 삼라만상을 반영하기 때문에 맞게 되어 있다고 썼죠. 그런데 그것은 불충분한 설명입니다.
1971년에 중국 장사 마왕퇴에서 발굴된 <백서주역>이라는 것이 있는데 거기 보면 자공이 공자에게 서증을 믿느냐고 물어봅니다. 공자는 100번을 점치면 70번 맞는다고 대답합니다. 그 전에는 공자가 점을 쳤느냐 안 쳤느냐 논쟁이 심했고 공자는 점 같은 것은 안 치고 오로지 철학적으로 <주역>을 해석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았죠.
여러 차례 점을 쳐서 맞는 해석을 선택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도저히 알아낼 수 없어요. 왜냐면 해석이 여러 가지가 나와요. 그 중에서 어떤 것이 맞는지 알 수 없으니 실제로 해보고 역사적 사건이나 현실과 대조하는 수밖에 없죠. 그런 식으로 많이 찾아냈어요. 예를 들어 책에 나오는 박근혜씨의 지난 대통령 후보 경선에 대한 서례가 대표적입니다."
"<주역>은 미신 아닌 동양 정치철학의 기초"
- 중요한 정치적 결정을 앞두고 <주역>의 점괘를 참고하시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비판자들은 선생님께 '부채도사'라는 별명까지 붙입니다. 의사 결정을 위한 각종 첨단 이론과 기법의 21세기에 <주역>을 의사결정의 중요한 참고로 삼는다는 게 적합한가요?
"아니, 정치하는 사람 중에 종교 믿는 사람들도 많지 않습니까. 사실 종교는 논리와는 다른 세계인데 <주역>에는 그래도 논리가 있어요. 그런 비난에 일일이 대응하면 공부를 아예 못 하죠. 좀 전에 얘기한 공자가 점을 쳤나 안 쳤나 하는 논쟁이 바로 그거예요. 사실 공자의 제자들도 그 문제를 가지고 '늙어서 왜 자꾸 <주역>만 보시느냐'고 스승에게 대들긴 합니다.
행동의 지침을 <주역>에 두는 게 아니에요. 저는 저의 길을 가고자 하는 의지적 계획이 있는데 그 계획을 <주역>으로 봤을 때 흉하게 나오는 경우가 많아요. 흉해도 가야 할 길은 가야 합니다. 가령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의 경우, 탄핵은 가능하지만 그 결과는 민주당에게 몹시 불리하다는 점괘가 나왔어요. 하지만 사람은 때때로 무릎을 꿇고 사느니보다 서서 죽기를 원합니다. 의지를 밀고나갈 때 흉하다고 안 하고 길하다고 하는 것은 아닌 겁니다.
게다가 천명을 모르면 군자일 수 없다고 했는데, 어떤 기미를 잡지 못하고 그 기미가 현실이 되어 막 닥쳐오니까 그때서야 호들갑 떠는 것은 군자의 모양새가 아니죠. 그런 걸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지도층의 좋은 모습은 그런 기미를 어느 정도 미리 아는 데서 나오는 겁니다.
<주역>에 대해 더 생각하기 싫어서 그런 헛소리를 하는 사람들은 교만한 사람들입니다. 지금 알고 있는 게 인간이 아는 전부라고 생각하는 거죠. 의식적인 것은 합리적이고 무의식적인 것은 비합리적이라는 등식인 거죠. 합리적인 것, 과학적인 것은 물론 좋은 거죠. 하지만 과학지상주의는 무시무시한 무지이자 엄청난 허위의식이에요."
"정치권과 국민 여론, 분권형 대통령제에 합의할 것으로 믿어"
- 책 553쪽을 보면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 이야기가 있습니다. 얼마 전 국회 미래한국헌법연구회 세미나에 발제자로 초빙되셨던 것으로 압니다. 최근의 개헌 논의와 관련하여 <주역>에서 참고할 만한 것이 있습니까?
"처음엔 안 받아들여지지만 계속 확산되어 대중의 승인을 얻게 된다는 메시지입니다. 분권형 대통령제 논의는 사실 계속 확대되어 왔어요. 16대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는 완강한 반대자 중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결국 공약으로 받아들이죠. 그리고 승리했습니다. 그런데 안 했어요.
대통령제와 내각제가 경합하다가 분권형 대통령제로 합의될 것으로 봅니다. 논리적으로 중용적 절충에 의해 그렇게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주역>의 괘를 참고하자면 "뭇사람이 승낙하도다, 한을 풀리라"인데 사람들이 처음엔 잘 모르다가 결국 이해하게 된다는 거죠. 개인적으로 제겐 그것이 '한'인데 그것이 풀린다는 거니까."
- 정말 엄중한 선택인데요, 개헌 논의가 언제쯤 결말을 볼 것이라고 예상하십니까?
"시간이 걸릴 겁니다. 당위에 입각해 말한다면 지방선거와 동시에 국민투표를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올해 전문적 준비를 갖추고 내년부터는 본격적으로 논의해야죠.
유럽은 왕이 있는 7개국을 빼고는 거의 분권형 대통령제입니다. 외교나 국방을 전문으로 하는 탁월한 대통령은 가능해도 외교, 국방, 내정을 동시에 잘 하고 친인척 관리까지 다 해내는 대통령은 존재할 수 없어요. 그런 슈퍼맨은 만화에나 나와요. 행정수반과 국가원수를 겸하는 제왕적 대통령제는 실패한 대통령을 속출시키는 제도예요.
국가원수는 '존엄(Dignity)'이 필요합니다. 그게 없으면 미국 대통령처럼 되고 맙니다. 그래도 미국 대통령은 권력을 행사할 수가 있어요. 지역 갈등이 각 당을 지나가니까. 우린 당 사이를 지나가고 있어요. 남부 출신 미국 민주당 의원들은 공화당과 생각이 비슷합니다. 대통령이 점심 사주면서 설득해 법안을 통과시킬 수도 있어요. 그런데 만약 이명박 대통령이 야당 의원들 점심 대접하고 법안 통과를 부탁했다 칩시다. 전부 '사쿠라'되어 버립니다.
내각제는 공부 안 한 사람들 얘기예요. 10분의 1의 의석수만 있으면 내각제 장관은 목을 내놓고 다녀야 합니다. 정치적 책임을 무한히 추구할 수 있지만 그 대신 정정이 불안하니까 존엄한 전통적 국가원수, 즉 왕이 있어야 하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나라에 지금 왕이 어딨습니까. 전통적 권위도 다 무너졌고."
-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의 실질적인 기획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책 485쪽을 보면 탄핵 당시에 '불과 관련된 난동'을 뜻하는 중화리(重火離) 괘의 구사(九四) 효를 얻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요즘 촛불시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탄핵 때의 '불' 역시 '촛불'이었던 것 같아요. '불'도 여러 가지로 해석되는 것인데, 당시의 촛불시위를 저는 의회민주주의의 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의회민주주의는 의회의 의사를 국민의 의사로 의제하는 제도입니다. 그런데 의회의 의사에 반하는 국민의 의사가 있는 것처럼 가정하는 것은 의회민주주의에 대한 내란입니다. 의회에서 3분의 2 이상의 의석으로 탄핵을 소추했어요. 그런데 그런 헌법기관의 결정을 떼로 모여서 뒤집어 엎으려 한 것이 탄핵 반대 촛불시위입니다. 그 소신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자동차에 불을 붙여 세 번이나 국회로 들어왔습니다. 저는 그것을 중요시합니다. 군부 쿠데타 세력도 탱크를 몰고 국회로 들어오진 않았어요. 국회의원은 민중의 대표자가 아니라 '대의자'예요. 그걸 부정하는 정치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아리스토텔레스도 일찍이 '폭민정치'라는 말로 지적했어요."
"탄핵 촛불은 내란, 쇠고기 촛불은 기본권이자 표현의 자유"
- 그 소신은 요즘의 촛불시위에도 해당됩니까?
"그게 무슨 소립니까? 국회가 쇠고기 수입을 결정했습니까? 지금 쇠고기 문제는 행정부가 국민의 의사를 따르지 않고 제멋대로 결정한 겁니다. 그래서 국민이 항의하고 시위를 하는 거죠. 시위는 기본권으로 보장되어 있는 것이고 표현의 자유에 속합니다."
- 학문과 이론은 암암리에 때로는 노골적으로 집권세력 혹은 특정 정치세력의 이데올로기에 복무했고, 현실정치에 적극 참여하는 학자일수록 그런 경향이 두드러집니다. 이번 <실증주역>에도 특정 정치세력의 '당파성'이 반영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요?
"당파성이라는 것은 정치 행위의 문제지요. 학문적으로는 당파성과 관계없이 할 수 있는 거죠. 민주당의 이익과 관계되는 발언을 할 때 꼭 당파성을 갖고 할 필요는 없죠. 학문적으로 할 때는 학문적으로 하는 거죠. 이미 칼 맑스가 그것에 대해 썼어요. 이익과 관련된 것이라고 해서 다 당파적인 것은 아니라고.
그래서 프랑크푸르트 학파가 말하는 '인식과 관심'이 중요한 것 아닙니까. 관심과 관계된다고 해서 다 허위의식이 아니고 당파성과 관계된다고 해서 다 허위의식이 아니죠. 당파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객관성을 가질 수 있는 것이고 이익과 관련되었다 해도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과학적인 입장을 가질 수 있는 거죠."
- 표방하시는 '중도개혁주의' 역시 <주역>과 관계가 있겠지요?
"그렇습니다. <주역>과 중도개혁주의는 철학적으로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정이천은 주역을 해석하면서 '중(中)'은 반드시 '정(正)'이지만 '정'이 반드시 '중'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누구나 정도(正道)를 가지고 정치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자기 자신이나 그룹 내에서의 이야기고, 그 그룹들이 여러 개가 되면 정도 역시 여러 개가 되는 거죠. 여러 개의 정도를 모아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는 길은 중용밖에 없습니다.
중용 아닌 극한 대결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갔습니다. 그런 뼈저린 경험 끝에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는 '중도화'의 길을 걸었습니다. 독일 사민당은 맑스-레닌주의를 버리고 '사상의 자유의 당'을 선언하면서 집권을 추구하고 미국 민주당은 다섯 번 선거 중에 단 한 번만 이기는 상황 속에서 신자유주의도 아니고 복지국가만 계속 노래 부르는 과거의 노선도 아닌 새로운 길을 모색합니다.
<주역>에서 중도는 창조적 사고입니다. 대불공단에서 전봇대 때문에 수출용 차량이 빠져나가질 못했는데, 낡은 '반(反)'의 사고는 그것을 옮기는 것입니다. 중도개혁주의적인 중용의 입장에서는 지중화, 즉 땅에 묻는 것입니다. 전 세계적인 추세가 지중화인데 왜 옮기는 생각만 하느냐 이거죠. 필요를 버리지 않으면서 욕구는 충족시키는 창조적 중용의 사고가 <주역> 안에 들어 있습니다."
"<주역>의 중용사상은 중도개혁주의와 상통"
- 서양 학자들의 주석을 풍부하게 참조하고 반영하셨습니다. 전례가 없는 성과라고 봅니다. 그런데 도가나 불가 쪽은 왜 참조하지 않으셨는지요?
"그건 종교 쪽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쪽 분들에게 맡기고 싶습니다. 저는 유가의 정치철학적 해석을 중심으로 삼았습니다. 정치학자로서는 저는 유가가 우리 민주주의에 부정적인 것보다는 긍정적인 영향을 더 많이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아니었다면 왜 백성이 주인인지 처음부터 따지고 들어야 하는 겁니다. 그게 안 되면 프랑스 혁명처럼 총칼로 증명해야 하는 거죠. 서양은 그렇게 했고요.
백성이 주권자이고 천심이 곧 민심이라는 사상은 현대 민주주의 사상과도 잇닿아 있고 민주주의 원리가 작동할 수 있는 토양입니다. 우리는 군주정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피를 보지 않았어요. 사실상 서양 민주주의와 사상적 단절이 없었다는 거죠."
- 책에 많은 정치인들의 사례가 실명으로 등장합니다. 지나치게 지배 블록 내부의 담론에 치우친 것은 아닌가 합니다. <주역>은 상하와 좌우, 사방팔방을 품은 '총체적'인 텍스트라고 생각하는데요.
"<주역>에서 그 총체성(totality)은 열려 있습니다. 끝나지 않고 다시 순환합니다. 그 순환과정은 많은 경우 천지개벽적 변혁 과정을 겪습니다. '혁(革)' 괘는 말 그대로 혁명을 뜻하는 것이고요. 열린 총체성 속에서의 변혁이 <주역>의 가장 큰 흐름이죠. 따라서 숙명론이 아닙니다. 인간의 '덕' 같은 것이 모두 조건으로 붙어 있습니다. 거듭된 얘기지만 저는 정치학자로서 정치권에 <주역>의 지혜와 '덕'의 문제를 환기하고 싶습니다."
- 독자들을 위해 한 말씀 해주십시오.
"우리는 서구를 배우며 많은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지금은 서구를 배울 만큼 배운 시점이고 또한 많은 능력 있는 분들이 세계 각지에서 거꾸로 서구 사회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 자부심을 바탕으로 우리나라 그리고 동양 문화권의 깊은 자기 이해를 얻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길잡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동양 사상은 한편으로 난의 향기이자 대숲의 노래입니다. 거부할 수 없는 훈훈한 향기이자 대단히 정연한 인간의 가치들에 대한 합창입니다. 많은 분들의 자기 함양에도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그에게 <실증주역> 책의 점괘도 뽑아 보았는지 물었다. 그는 '건(乾)' 괘의 "대인을 만나니 이롭다(利見大人)"는 구절을 얻었다고 했다. 그리고 '대인'을 '대중'으로 풀이하면서 이 책을 통해 대중과 널리 소통할 것이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인다고 했다. 그리고 조만간 대중강연을 계획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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