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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밤 소낙비가 한 차례 내린 탓인지, 여름철답지 않게 시원한 기운이 마을을 감싸고 돈다. 한 손에 지팡이를 들고, 뒤로 한 손에는 낫을 들고 할머니 한 분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밭으로 향한다. 송아지의 울음소리가 할머니의 걸음을 앞질러 앞산에 부딛치고, 지난 밤 소낙비와 이슬에 젖어있는 숲에서 새소리가 들려온다. 전북 덕유산 자락의 어느 시골마을의 풍경이다.
 
도시에서는 밤새 자동차소리와 취객들의 고성방가, 구멍 뚫인 마후라에 악을 쓰듯 울려대는 폭주족들의 소음 속에서 뒤척거리다 아구가 맞지 않은 하수구 뚜껑을 '떨꺽!' 짓밟으며 달려가는 버스소리에 잠을 깨곤한다. '밤새 안녕하신가?' 묻기도 송구할 정도다.
 
그런데 송아지의 울음소리와 새소리로 맞이한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무겁다. 막 벼이삭을 내밀 준비를 하는 논과 커다랗게 익은 수박이 가득한 수박밭, 붉은 고추가 하나 둘 익어가는 고추밭이 그 마을의 유일한 돈벌이가 될 터이다.
 
 
그러나 생기가 넘치질 않는다. 금방이라도 소낙비 내릴 듯 먹구름 잔뜩 낀 하늘을 보고 발걸음을 재촉하거나 비 피할 큰나무를 찾아 두리번거리는 소년을 닮은 마을, 그런데 하늘은 하얀 뭉게구름과 청한 하늘이다. 오랫동안 낭만적인 시골에 대한 생각을 접었는데, 그 생각이 옳음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이미 허물어져 가는 창고의 흙벽마냥 허물어진 농촌. 한미FTA라는 핵폭탄이 그 남아 있는 흔적들마져 싸그리 없애야겠다고 달려드는 듯해서 소름이 끼친다. 지금도 더 이상 뒤로 물러설 곳이 없는데, 도대체 젊은이들 다 떠난 농촌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흙벽에 기대어 달리아가 피어 있다. 살아있는 꽃이 아니라 흙벽에 그려진 유화처럼 느껴진다. 누군가 무너져가는 농촌의 흙벽에 다시 흙을 발라 갈라진 틈을 메우고, 희망의 꽃을 그려야 할 터인데, 도대체 '누군가'가 '내가' 아닌 한에 그 누구란 말인가. 더더욱 절망스럽게 느껴졌다.
 
특화상품을 만들라고 하고, 마을을 상품화 시키라고 하고, 니들이 잘하면 잘사는 마을이 된다며 시범마을을 소개하지만 마치 그 옛날 서울대 합격자 소식을 전하면서 '개천에서 용났다'는 식의 기사 같아 허망하기만 하다.
 
입시에서만 개천에서 용 나는 시대가 지나간 것이 아니라 농촌 역시도 몇몇 마을은 유기농단지다 뭐다 유명세를 타서 명맥을 이어가지만 대다수의 농촌마을은 용이 될 꿈은커녕 이무기에서 미꾸라지로 전락할 처지인 것이다. 우리의 고향인 농촌, 정녕 희망이 있을까?
 
 
텅 빈 마을을 한바퀴 돌면서 만난 고양이, 기척만 나면 쏜살같이 도망치는 도시의 고양이들과는 달리 낯선 행인을 보고도 멀뚱멀뚱 바라보다 껌뻑껌뻑 존다. 속으로 '이런 간땡이가 분 놈의 고양이'하며 가만 보니 고양이 목에 방울이 달려 있다.
 
'복 받은 놈이구나, 주인에게 제법 사랑을 받는 놈이구나, 사람을 봐도 도망가지 않으니... 너는 도시 고양이들보다 신세가 좋구나. 사람들은 맨날 고향이 그립네 어쩌네 하지만 도시가 좋단다. 거기 온갖 편리한 것들이 다 있거든. 자기의 욕심을 채울 수 있는 것들이 도시에 다 모여있거든. 물론 누구나 그것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난생 처음으로 가 본 마을, 그냥 불쑥 들어가 걸었던 마을을 천천히 걸으며 잡풀로 우거진 주인 잃은 집들과 허물어진 창고들을 만났다. 단수형이 아니라 복수형이다. 그래서 더 슬프게 다가왔던 것 같다. 그 곳에서 '희망'이라는 편린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았다. 아니, 솔직하게 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더 마음이 아프다.

태그:#농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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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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