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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타고 가면 자연이 잘 보이는 법이다.

대전으로 가기 위해 충주역에서 기차를 탔다.
 대전으로 가기 위해 충주역에서 기차를 탔다.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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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부터 25일까지 문화재청에서 실시하는 <자연유산 다시보기> 교육에 참여했다. 문화유산에 대한 지식은 어느 정도 갖춰져 있는데 자연유산에 대한 지식은 아직도 부족한 것이 많아 공부를 해보자는 생각에서다. 사실 자연과 문화라는 것이 무늬와 모양은 다르지만 그 뿌리는 같다. 자연이 땅을 딛고 일어선 것이라면, 문화는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이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교육이 대전의 천연기념물센터에서 있기 때문에 오래간만에 기차를 탔다. 차를 몰고 가면 자연이 잘 안 보이지만 차를 타고 가면 자연이 잘 보이는 법이다. 1시간 45분 정도 철길 옆으로 펼쳐지는 경치를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다. 아침 시간인지라 약간 안개가 끼었고, 들판에 사람들은 별로 없다. 논에는 싱싱하게 자란 벼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고, 밭에는 고추와 옥수수 그리고 과일나무들이 열매를 맺고 있다. 벼가 패려면 아직 한 보름은 더 있어야 할 것 같다.

교육 장소인 천연기념물센터
 교육 장소인 천연기념물센터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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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역에 도착하니 오전 8시 16분쯤 되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천연기념물센터로 가는 버스나 전철이 마땅치 않다. 밖으로 나와 택시를 잡는다. 다행히 택시는 많다. 이곳에서 천연기념물센터까지는 꽤 먼 거리다.

택시 기사가 어떤 길로 갔으면 좋겠느냐고 물어본다. 가장 빠른 길로 가자고 대답하니 바로 차가 출발을 한다. 그런데 택시가 굉장히 빠른 속도로 달린다. 대전천 변으로 난 길을 따라가는데 신호등이 없어 그렇게 달릴 수 있는 것 같다. 얼마 후 대전천과 유등천이 합쳐지는 지점을 지나 평송수련원 뒤 천연기념물센터 입구에 도착한다.

시간이 8시 45분이다. 9시부터 교육이 시작되니 적당한 시간에 도착했다. 2층 교육장으로 올라가 등록을 하고 이름표를 받고 책자를 하나 받는다. 책자는 교육용 교재로 제목은 <2008 자연유산 다시 보기>이다. 자리에 앉아 책자를 살펴본다. 교육내용과 일정이 자세히 적혀 있다. 표로 만들어서인지 3일간의 일정이 한 눈에 들어온다. 23일에는 강의식 교육이 있고, 24일과 25일에는 삼척과 영월로 현장 답사를 떠나는 것으로 되어있다.

자연유산이 도대체 뭐야?

천연기념물센터에서 만난 천연기념물 제330호 수달
 천연기념물센터에서 만난 천연기념물 제330호 수달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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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계획에 보니 자연유산, 천연기념물, 숲, 천연동굴 등에 대한 공부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마지막 시간에 장릉과 청령포에 얽힌 단종의 이야기가 들어 있다. 이광수가 쓴 <단종애사>가 생각난다. 그러나 이번 강의는 역사에 바탕을 둔 팩트(Fact) 중심이다. 요즘 <대조영> <대왕 세종> <이산> 등 사극이 많이 방영되었는데 이들은 팩트 10%에 픽션(Fiction)이 90%인 얼치기 팩션(Faction)인 것이다. 이들 사극은 한 마디로 재미를 추구하는 연속극이다.

9시가 되어 첫 강의가 시작되었다. 이곳 천연기념물센터 장이자 자연문화재 연구실장인 이위수 서기관이 <문화재로서의 자연유산>에 대해 강의한다. '자연유산이 어떻게 문화재가 될 수 있는가?'라는 의문에서 출발한다. 이 실장은 자연유산을 문화재로 인식시키는데 어려움이 있었다며 그동안의 고충을 이야기한다. 그래 그동안 자연과 문화를 서로 대립적인 개념으로 보아왔으니 그렇게 주장하는 것도 일 리가 없지는 않다.

유네스코 자연유산인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
 유네스코 자연유산인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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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은 이렇다. 문화재(Cultural Properties)는 역사적 학술적 경관적 가치가 큰 대상이다. 이것은 자연에 의해 형성된 것일 수도 있고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일 수도 있다. 이처럼 가치에 토대를 둔 문화재라는 용어를 인류의 역사 속에서 전승된 것이라는 문화유산(Cultural Heritage)이라는 용어로 바꿔갔으면 좋겠다는 게 이 실장의 생각이다.

사실 재화라는 개념을 유산이라는 개념으로 바꾸는 것이 전 세계적인 추세이다. 요즘 가장 많이 언급되는 유네스코 세계유산도 그 하위 개념으로 문화유산, 자연유산, 복합유산을 두고 있다. 그러나 지난 100년 가까이 문화재라는 용어를 사용했기 때문에 그것이 하루 아침에 바뀔 수는 없다.

우리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문화재에는 유형문화재, 무형문화재, 기념물, 민속자료가 있다. 유형문화재에는 건조물, 고문서와 전적류, 회화, 조각, 공예품 등이 있다. 무형문화재에는 역사적 예술적 학술적으로 가치가 있는 음악, 연극, 무용, 놀이, 의식, 공예기술 등이 있다. 기념물에는 사적, 천연기념물, 명승이 있다. 이 중 천연기념물과 명승이 바로 자연유산에 해당한다.

천연기념물과 명승에는 어떤 게 있나?

천연기념물은 다시 네 가지 부류로 나누어진다. 동물과 식물, 지질과 광물, 천연보호구역, 자연현상이 그것이다. 이때 동식물은 유일무이하거나 진귀한 그리고 특이한 것이어야 한다. 과학적인 가치가 큰 것도 여기 해당한다. 또 위협에 처한 동물과 식물 그리고 그들의 생활터전이나 자생지 역시 천연기념물이 될 수 있다. 이들 천연기념물은 우리나라에 386종이나 있다. 식물이 가장 많아 244종이고, 동물이 77종이며, 지질과 광물 그리고 동굴이 55종이며, 천연보호구역이 10종이다.

천연기념물 제199호인 황새
 천연기념물 제199호인 황새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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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천연기념물을 유형별로 분류하면 다음 네 가지가 있다. 문화역사 천연기념물, 생물과학 천연기념물, 지구과학 천연기념물, 천연보호구역. 이들 중 문화역사 천연기념물에는 용문사 은행나무, 속리산 정이품송, 영월 청령포의 관음송이 있다.

청령포 관음송은 현장 답사가 계획되어 있는데, 단종의 비운을 관찰했던 소나무여서 천연기념물이 되었다. 생물과학 천연기념물로는 괴산의 미선나무 자생지, 울릉도 통구미의 향나무 자생지, 연천 은대리의 물거미, 황새 등이 있다. 미선나무는 개나리와 비슷한데 세계에서 한 종류 밖에 없는 우리나라 특산종이다.

지구과학 천연기념물은 고생물, 지질의 역사와 지형, 천연동굴, 자연현상 등을 포함한다. 해남 우향리의 고생물 화석산출지, 제주 산굼부리 분화구 같은 것이 고생물과 지질에 해당한다. 그리고 제주도의 당처물 동굴과 삼척의 대이리 동굴군이 천연동굴에 해당한다. 이중 삼척시 신기면 대이리에 있는 석회동굴인 대금굴은 우리가 24일 현장답사를 하게 되어 있다.

천연보호구역으로 천연기념물이 된 것은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독도가 있다. 독도는 경관도 훌륭하고 과학적 연구가치도 크지만 영토적 상징성 때문에 천연기념물이 된 경우다. 문화재청에서는 천연보호구역을 천연기념물, 명승과 대등한 개념으로 따로 분류하여 설명하기도 한다. 즉 자연유산이라는 큰 카테고리 속에 천연기념물, 명승, 천연보호구역이라는 세 가지 하위 개념을 두고 있다.

명승 제41호인 순천만
 명승 제41호인 순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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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승은 자연경관과 문화명소로 대별된다. 산악, 고원, 화산, 하천, 해안, 도서 등 자연경관이 뛰어난 곳이 그 첫째다. 둘째는 동식물의 서식지로서 가치가 있고 경관이 뛰어난 곳이다. 셋째로는 역사 문화적 가치가 뛰어난 명소로 자연과 어우러진 경승지가 명승에 해당한다. 우리나라 명승 제1호는 강릉시에 있는 청학동 소금강이다. 그리고 제2호는 거제도의 해금강이다. 이들은 자연경관이 뛰어난 곳에 해당한다. 명승 제41호인 순천만은 동식물의 서식지로 경관이 뛰어난 곳에 해당한다. 이곳은 갯벌과 갈대밭이 어우러진 해안 경승지로 흑두루미와 저어새 등 희귀조류가 서식하거나 월동을 한다.

예천에 있는 회룡포와 선몽대 일원이 명승 제16호와 제19호인데 이들이 바로 역사문화적 가치가 뛰어난 명승이다. 회룡포는 내성천이 휘감아 돌면서 이룬 경승지이다. 회룡포 아래 삼강리에서 내성천과 낙동강이 합쳐진다. 이곳에는 유명한 삼강 주막이 있다. 선몽대는 퇴계 이황 선생의 조카인 우암 이열도(1538-1591)가 1563년 세운 누대이다. 이곳에서 선비들은 문장을 주고받으며 호연지기를 펼쳤다. 선몽대 주변에는 아름다운 숲이 조성되어 있고 그 앞으로는 내성천이 흘러 자연과 인공이 훌륭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교육장에서 만난 사람들

교육을 함께 받은 5060들
 교육을 함께 받은 5060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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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 강의가 끝나고 잠시 쉬는 시간이다. 가장 앞자리에 앉아 교육에 참여하다 보니 함께 공부하는 사람들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로비로 나오면서 보니 의외로 초등학교 학생들이 많다. 부모와 함께 공부를 하러 온 것이다. 세상은 끼리끼리 어울리는 것인지라 애들과 대화를 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연배가 비슷한 사람을 찾게 되었다. 그런데 다들 머리에 서리가 내렸다. 처음엔 이분들과 인사만 주고받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주 친한 사이가 될 수 있었다.

나중에 확인한 사실이지만 교육생들이 두 부류로 나누어진다. 한 부류는 아이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등록한 40세 전후의 부인과 10대의 학생들이다. 이들은 배우려는 의지도 강하고 젊어서인지 역시 역동적이다. 다른 한 부류는 이제 세상 공부를 어느 정도 하고 또 다른 공부를 해 보려는 사람들이다. 자신의 전공과는 직접 관련이 없는 자연유산과 문화유산을 공부하려는 사람들이다. 50대인 나도 문화유산 외에 자연유산을 공부하고 싶어 이곳에 왔으니 두 번째 부류에 해당한다. 그런데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정년퇴직을 한 60대가 많다. 그러니 이들 5060 중에서는 내가 가장 젊은 축에 든다.

교육에 참여한 사람들의 지역 분포를 보니 가까운 대전에 사는 사람들이 가장 많아 교육생 30명 중 절반 정도이다. 그리고 3일 동안 함께 어울린 우리 5060들이 사는 지역은 서울, 안성, 대전, 진주, 충주 등으로 다양하다. 그리고 이들 중 선생님이었던 분들이 많은 편이다. 역시 공부도 해본 사람이 한다고, 애들을 가르쳐 본 경험이 있어서 나이 들어서도 배움의 욕구가 강한 것 같다. 이들 모두 처음 만난 사람들이지만 공부라는 공동 목표 때문인지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나중에는 함께 자기까지 했으니 친해지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

덧붙이는 글 | 7월23일부터 25일까지 문화재청에서 실시한 <자연유산 다시보기> 교육에 참가했다. 하루는 강의식 교육이고 이틀은 현장 답사로 이루어졌다. 교육과 현장 답사를 통해 보고 배운 내용을 5회 정도 연재할 예정이다.



태그:#자연유산, #천연기념물, #명승, #천연보호구역, #천연기념물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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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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