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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주>

한나라당이 미국 쇠고기 수입과 관련해 '참여정부 설거지론'을 주장하고 있다. 처음에는 단순한 정치적 공세 또는 물타기로 보였는데, 갈수록 마치 자기 최면에라도 걸린 듯 설거지론을 강변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정부·여당은 6·15와 10·4 선언은 설거지 하지 않는 것일까?

 

6·15든, 10·4든, 쇠고기든, 모두 전임 정권의 유산인데 어떤 것은 이어받아 마무리하고 어떤 것은 못 받겠다고 버틴다면 그것은 단순 설거지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설거지 대상 선정 자체가 정치적 의지가 실린 것인데, 전임 정권이 일은 다했고 우리는 간단히 마무리나 했다는 식으로 나오는 것은 역대 대선 가운데 최대 표차로 이겼고 171석을 자랑하는 거대 여당의 덩치에 어울리는 않는 좀스런 행동이다.

 

북한이 언제 9·19 성명 부정했나

 

이명박 정부의 이러한 기질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30일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는 제15차 비동맹운동(NAM) 장관급회의가 끝났는데 최종 문서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있다.

 

"각료들은 한국인의 공동번영과 동북아시아 및 세계의 평화와 안보를 위해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와 안보 보장이 중요함을 인정하면서, 평양에서 각각 발표된 2000년 6·15 남북 공동선언 및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2007년 10·4 선언, 그리고 과거 모든 남북 공동성명 및 합의서에 명시된 바와 같이 한반도 통일을 위한 한국인들의 진정한 염원과 공동의 노력에 지지를 표명했다. 또한 각료들은 핵문제의 포괄적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의 중요성에 주목하며, 2005년 9·19 공동성명 및 그 이후의 합의들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고 이들 선언.합의들의 신속하고 성실한 이행을 강조했다."

 

31일 한국 외교부는 최종문서에 대해 "우리의 입장이 잘 반영됐다"고 자평했다.

 

북한이 최종 문서에 6·15와 10·4 선언을 넣으려고 해서 남한 정부도 외교전을 펼쳤고, 최종 문서에 6·15와 10·4 뿐만 아니라 다른 남북 공동성명도 언급하게 했으며, 특히 북핵 문제와 관련된 9·19 공동성명도 넣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6·15와 10·4 선언 외의 다른 남북 공동성명과 합의서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 적도 없고, 9·19 공동 성명 역시 북한이 서명한 6자회담 문서다. 북한도 항상 9·19 공동 성명의 이행을 강조한다. 9·19 공동 성명의 가장 중요한 정신이 '행동 대 행동, 말 대 말'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내용을 비동맹 최종문서에 넣기 위한 한국 외교부의 노력이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아리송하다. 더구나 이명박 정부는 6·15와 10·4 선언에 대해 "계승하겠다"고 말한 적도 없지만 그렇다고 "계승하지 않겠다"고 말한 적도 없다.

 

통일부는 31일 "우리 정부 대북정책의 공식명칭을 '상생과 공영'으로 확정했다"며 "이것을 기본으로 해서 향후 5년간 대북정책을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참여정부 대북 정책의 명칭이 '평화와 번영정책'인데 남북이 평화롭게 살면 상생하게 되는 것이고, 남북이 함께 번영하면 공영하는 것이니 다 비슷한 맥락이다. 상생과 공영의 대북정책을 내세우면서, 한국 경제력의 100분의 1에 불과한 북한을 상대로 국제무대에서 서로 멱살잡이나 하는 것은 도량이 아주 좁다는 방증이다.

 

무엇보다 말과 행동이 다르다. 이래서는 그 누구에게도 신뢰를 줄 수 없다.


태그:#비동맹, #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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