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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 세종대 교수(전 청와대 국민정책비서관)는 "지난 5년동안 부동산 정책을 혹독하게 겪어봤다"면서 "아마 이런 나라도 없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무엇이 문제였는지, 어디서 잘못됐는지, 오랫동안 고민을 거듭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수현 세종대 교수(전 청와대 국민정책비서관)는 "지난 5년동안 부동산 정책을 혹독하게 겪어봤다"면서 "아마 이런 나라도 없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무엇이 문제였는지, 어디서 잘못됐는지, 오랫동안 고민을 거듭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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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에 간곡히 말하고 싶은 것은, 지금은 80년대 부동산시장이 아니라는 겁니다. 일본의 '잃어버린 10년' 운운하는데, 지금 각종 주택지표를 비교해보면 일본의 버블 붕괴 직전과 같아요. 이 상황에서 규제 풀고 거품을 더하면 정말 큰일 납니다."

표정은 심각했지만 어투는 담담했다. 2시간여 넘는 인터뷰 내내 그는 차분했다. 가끔 고개를 떨구거나 목소리가 약간 오르기도 했지만 별다른 차이는 없었다. 하지만 전하려는 메시지는 분명했다.

김수현(46, 부동산학과)  세종대 교수, 그가 입을 열었다. 참여정부 청와대비서관 시절, 보수언론은 그를 '부동산 광풍'의 주역으로 주저없이 꼽았다. 10·29 대책, 8·31 대책, 3·30 대책 등 참여정부의 거의 모든 부동산 정책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던 그는 그동안 스스로 자숙의 시간을 가져왔다고 했다. 언론과의 인터뷰도 정중히 사양해왔다.

7월 31일 오전 서울 광화문 개인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정책 책임자로서 부동산 폭등에 따른 국민의 고통에 죄스러울 뿐"이라고 운을 뗐다. 곧 이어 "최근 정부와 한나라당의 부동산 세제 완화 움직임에 계속 침묵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부동산 정책 가운데 바꿔서는 안되는 세 가지"

그와의 대화는 이렇게 시작됐다. 김 교수는 "지난 5년 동안 부동산 정책을 혹독하게 겪어봤다"면서 "아마 이런 나라도 없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무엇이 문제였는지, 어디서 잘못됐는지, 오랫동안 고민을 거듭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고민의 결과가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부동산 정책에서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이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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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꿀 수 없는 것이 무엇인가."세 가지다. 하나는 부동산시장의 투명화다. 둘째는 보유세다. 세째는 개발이익 환수다."

- 종합부동산세 등 보유세는 한나라당에서 완화하겠다고 하지 않나.
"보유세는 내가 저 집을 사면 '1년에 세금 얼마 내야한다'고 각오하는 세금이다. 그동안 보유세가 너무 낮아서, 능력이 안되는데도 크고 비싼 집을 샀고, 별 문제가 안됐다. 결국 부동산에 대한 왜곡된 생각을 심어줬다. '부동산 불패'니, '사면 절대 손해 안본다'는 식의 생각이다."

김 교수는 "보유세만은 손대선 안된다"고 딱 잘라 말했다. 이것을 우리사회의 규범으로 정착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미 20년전부터 합의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설명은 계속됐다.

"89년에 노태우 정부가 토지공개념을 내놓을 때, 한국사회 지식인들, 정치권에서 합의했던 것이 보유세는 올리고 거래세는 낮춰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김영삼 전 대통령은 심지어 '부동산 갖는 것을 고통스럽게 하겠다'고 했어요. 하지만 1년만에 포기했죠. 김대중 정부 때는 오히려 거꾸로 갔습니다."

"대한민국 1%만 내는 종부세? 그거야말로 왕따세금"

한나라당은 대표적인 보유세인 종합부동산세를 아예 징벌적 성격의 세금으로 규정할 정도다. 이를 뜯어고쳐야 한다는 공감대는 이미 형성돼 있다. 하지만 그의 입장은 단호했다.

"정말 (한나라당 말대로) 국가가 특정계층을 상대로 징벌적 세금을 거둔다면, 심각한 인권침해예요. 부동산 값이 오르든 말든 반드시 없애야죠. 그런데 이렇게 말하는 분들은 징벌답게 대처해야 하는데, 징벌이긴 한데 시장에 영향을 미치니까 (완화를) 고민해보자고 하는 것은 잘못된 태도죠."

여당쪽에선 종부세 6억원의 기준도 모호하고, 현실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 2005년엔 종부세 기준이 9억원이었다가, 2006년에 다시 부동산값이 오르니까 6억원으로 강화했는데, 기준이 뭔가.
"관행적으로 대개 고가주택 또는 호화주택의 기준으로 써오고 있는 것이다. 6억 이상 주택이 전체주택 가운데 2.1%다. 이 정도는 고가주택이라고 불러도 되지 않나. 9억으로 하면 고가주택이 1%도 안된다."

- 9억원으로 기준을 올리게 되면.
"서울·경기 일부를 제외하고 부산이든, 대구든 어디도 이런 주택이 없을 것이다. 그러면 종부세 자체가 1%를 대상으로 하는 것인데, 부유세나 다름없다. 이거야말로 왕따 세금이다."

- 오래동안 집 한 채만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실제 세금부담이 크지 않나.
"그런 부분이 있다. 저도 마음이 아프다. 보유세를 올리고, 거래세를 낮추자는 사회적 규범을 만들고, 이것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세금 부담이 커진 것은 사실이다. 안타까운 부분이 있다. 그렇다고 세금 현실화를 포기할 것인지, 아니면 고통스럽지만 적응할 때까지 참고 가볼지, 선택의 문제다. 일시적인 마찰적 고통이 있다고 본다. 이들에게는 납부 유예제도 등을 도입하는 방안 등이 법안으로 나와 있다."

450만원 보유세 낸 김 교수 "집사람 말도 못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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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차분하게 자신의 생각을 또박또박 말하던 김 교수도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는 "자신과 같은 386세대들이나 제 친구 중에도 교육 때문에 대출받고 무리해서 이사했는데, 한달 치 월급으로 세금을 내는 것에 대한 엄청나게 불만을 나타내더라"고 토로했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친구가 하는 말이, 정의도 좋지만 이런 놈의 정의가 어딨냐고 해요. 뭐라 말씀을 못 드리겠어요. 저도 91년에 과천에서 집 사서 15년째 살고 있는데, 당연히 종부세 대상이예요. 재산세를 합하니까, 한달치 월급이 되더군요. 집 사람은 말도 못하죠. 집 앞에는 종부세 폐지하라고 플래카드 붙어있는데, (씁쓸한 웃음을 지어보이며) 죄스럽게 다니고 있어요."

(인터뷰 끝난 후, 그에게 좀 더 물었다. 세금을 얼마나 냈냐고. 그가 살고있는 과천 주공 아파트는 과세 기준으로 작년에 8억원을 넘었다가 올들어 7억5000만원까지 떨어졌다고 한다. 작년에 재산세와 종부세 합해서 450만원 정도를 냈다고.)

그는 미국의 예를 들었다. 미국 주택가격이 폭락하고 있지만, 보유세를 깎아준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는 것. 뉴욕 맨하튼의 고급아파트 보유세가 1~2%에 달하지만, 세금을 낼 능력이 있는 사람이 살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우리가 자본주의 주택시장을 받아들인다면 이것을 인정해야 한다"면서 "가격에 상응하는 세금을 내고, 그런 능력이 되는 사람들이 고가주택을 사는 수밖에 없지 않나"라고 덧붙였다.

이 같은 보유세 체제가 사회적 규범으로 정착이 되면, 집값이 오르든 내리든 정부가 개입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지금 고통스럽더라도, 우리 사회가 부동산 소유문화를 지키고 정착시켜야 한다고 봐요. 만약 지금 보유세를 다시 예전으로 되돌리면 지난 20년동안 '버티면 된다' '정부 말은 믿을 것 없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는 것이 되고, 부동산 불패는 더 강한 신화로 남을 겁니다."

"지금 지표들, 일본 버블붕괴 직전과 같다"

어느새 인터뷰 시간은 1시간을 훌쩍 넘어섰다.

- 정부 여당쪽에선 세금 포함해서 부동산 규제를 풀어 경기를 끌어올리려고 하는데.
"이미 세계적으로 자본시장은 통합됐다. 주요 나라들의 자산에 거품이 생기면 같이 생기고, 꺼지면 같이 꺼지게 돼 있다. 미국을 비롯해 중국·유럽 등 거품이 꺼지고 있는데, 이것 살리면 우리 경제가 살아날 것이라는 생각은 정말 착각이다."

그는 "현재 자산 거품이 많아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고, 긴축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면서 "벌써 담보대출 이자가 8%를 넘어섰는데, 우리가 무슨 재주로 이것을 거꾸로 끌어올릴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부동산은 상품의 속성상 일반적인 경기변동보다 진폭이 훨씬 크기 때문에, 올라갈 때는 더 올라가고 내려갈 때는 더 내려간다는 것. 그는 자신의 지난 5년 경험을 들며, "(부동산 가격이) 오를 때는 어떤 대책을 내놔도 오르고, 내려갈 때는 어떻게 하더라도 하락 추세를 막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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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쪽에선 강남 등 재건축을 포함해 아직 주택 공급이 더 필요하다고 한다."지금 부동산 시장은 80년대가 아니다. 지금 같이 거품이 꺼지는 상황에서 강남에 50층짜리 아파트 짓는다고 경제가 살아날 것 같은가. 경제살리기에도 금도가 있다. 경기부양 목적으로 개발 이익을 한곳에 몰아주거나, 원래 거주자인 서민층을 쫓아내는 방식은 결국 서민들의 삶을 더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

그는 "현재의 주택 지표를 보면, 일본의 버블 붕괴 직전 지표들을 우리가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가 내세운 지표는 몇가지가 있다. 우선 최저 주거 기준에 미달하는 인구는 과거에 30% 수준에서 최근 15년 동안 크게 떨어져서 10% 이하까지 내려왔다. 일본이 1988년에 그 수치였다는 설명이다.

게다가 자기집 소유율이 65%. 이는 소위 선진 자본주의 국가 가운데 일본이 비슷하고, 미국이 69% 정도, 나머지는 우리보다 낮은 나라도 많다고 했다. 또 정부가 2010년까지 국민임대주택 보급을 10% 수준까지 올릴 예정이다.

김 교수는 "65% 자가 소유에, 10% 공공소유, 나머지 25%가 순수한 의미의 세입자 구조"라며 "우리 주택시장은 포화상태에 근접하고 있고, 불경기속에 공급 마저 늘리겠다는 생각은 정말 큰일낼 발상"이라고 우려했다.

"참여정부 정책 미우면 바꾸세요, 대신 예측가능하게..."

인터뷰를 정리할 즈음이었다. 그럼,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김 교수는 부동산 정책의 방향에 대해 네가지 정도를 말하고 싶다고 했다.

우선 일관성과 예측가능성을 가지라는 주문이었다. 그는 "우린 그동안 부동산 정책은 전부 다 바꿔도 되는 것으로 생각해왔다"면서 "부동산 정책을 경기부양 정책의 일부로 봤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참여정부의 정책이 미우면 바꾸시라"면서 "대신 예측가능하게 바꾸고, 시장이 바꿀 수 있는 조건이 되면 바꾸겠다고 하라"고 말했다.

둘째는 부동산 시장의 자율성을 강화하라는 것. 대신 전제조건이 있다. 그가 앞서 말한 바꿔서는 안되는 세가지 - 시장 투명화, 보유세, 개발이익 환수 - 아래 시장 자율을 확대하라는 것이다. 

세번째는 절대 빈곤식 사고의 주택정책은 하지말고, 주거 복지를 생각하는 주택정책을 펴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장기적인 시장의 변화를 읽어라는 것. 저출산 고령화 문제를 다들 이야기하지만, 부동산 시장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 생각을 못하고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

김 교수는 "자꾸 선진국과 비교하는데, 우리는 워낙 빠른 속도로 주택이 공급되기 때문에 현재 지어지고 있고, 앞으로 5년내 공급될 것을 생각하면 조건들이 많이 달라져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명박 정부는 중요한 변곡점에 와 있다고 볼 수 있어요. 이 정부가 부동산 시장이 어떻게 변할 것인지를 예상하고, 정책을 세워놓지 않으면 정말 큰 일이 날수 있어요."


태그:#종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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