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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회에 이어)

세상 어머니들은 다 여자다. 아무리 늙고 병 드셨어도 세상 어머니는 여전히 여자라는 사실. 모성을 본능적으로 간직하고 있는 여성이라는 사실이 내가 어머니와 함께 살아가는데 있어 중요한 사항이 되어있다.

 

어머니와 얽히는 관계를 풀어가는 데에도 이 사실을 분명히 알고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만들어 낸 '세가지 요법'의 마지막이 바로 이것이다. 이른바 '모성 되살리기 요법'인데 이는 다시 두 가지로 나뉜다.

 

어머니가 어쨌든 여자라는 사실을 늘 기억하고 그렇게 대하는 것이 하나고 다른 하나는 어머니 기분이 뒤틀려 있거나 뭔가에 시달려 평온이 깨져 있을 때는 모성애를 자극하여 '어머니의 품성'으로 돌아오게 유도하는 것이다.

 

'어머니의 품성'이라고 하는 것은 생명을 잉태하고 키우는 거룩한 신체적 정신적 본능을 말한다. 측은한 마음을 바탕으로 어떤 어려움도 용서와 포용으로 뚫고 나가는 위대한 힘이 모성속에 있다는 것을 몸소 체현하게 유도하는 것이다.

 

어머니의 여성성을 존중하고 모성을 되살려야 한다는 것은 우리 집을 방문했던 어느 여자 분이 하도 강조를 해서 그렇구나 싶었는데 우리 어머니에게서 그걸 발견하게 된 것은 아주 역설적인 상황에서였다.

 

작년 봄.

쑥이 하루가 다르게 쑥쑥 솟구치던 날이었다. 한 낮에는 반소매만 입고도 공기가 찬 줄 모를 정도의 날씨 속에 어머니를 모시고 쑥 뜯으러 나갔다가 곤욕을 치른 날이었는데 그런 속에서 어머니의 모성애가 거침없이 발현되었었다.

 

어머니는 모든 것이 되살아나는 봄을 맞아 사춘기 소녀처럼 들떠 있었다. 새벽부터 쑥 뜯으러 간다면서 채근이었다. 고개 한번 돌렸다가 되돌아보면 그 새 쑥쑥 자라나는 게 쑥이라면서 이름도 그래서 '쑥'이라고 하셨다.

 

마음만 앞서는 어머니를 휠체어에 앉히고 쑥을 찾아 떠났다. 어머니가 찾는 쑥은 보통 쑥이 아니다. 지형조건이 까다롭다. 평평하지는 않더라도 경사가 거의 없다시피 해야 한다. 몸을 못 쓰시는 어머니가 경사진 곳으로는 갈 수도 없을 뿐더러 잘못하면 발을 접 질릴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양지바른 쪽이어야 하며 퍼질고 앉아서 몸을 끌고 다녀야 하니까 맨 바닥이 아니어야 한다.

 

쑥만 많이 나 있다고 되는 게 아니고 여러 조건들이 맞아야 하다보니 몇 번씩이나 자리를 옮겨야하고 그럴 때마다 어머니를 휠체어에 안아 올리고 안아 내리고를 반복하자니 보통 힘든 게 아니었다.

 

쑥만 쫒아 가시다가 사고라도 날까봐 전전긍긍하다보니 나는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쳤는데 어머니는 신이 나셨다.

 

집에 와서도 어머니는 좀 쉬시라고 해도 말을 안 듣고 쑥을 다 가려놓자고 하셨다. 오줌 칠갑이 된 옷도 일 다 끝내 놓고 갈아 입겠다고 하셨다. 나는 아무데라도 좀 누워서 한 숨 자고는 싶은데 어머니는 소쿠리 가져와라 물 떠 와라 코 나온다 화장지 가져와라 닭 모이 줘라 방에 불은 안 때냐 마루에 신문지 좀 넓게 깔아라 등등 혼자서 집안 살림을 전부 도맡고 나섰다.

 

쑥을 다 가려 갈 때쯤이었다.

 

냄비에 물을 올리라고 하셨다. 들깨 좀 가져와서 믹스기로 달달 돌리라고 하셔서 또 부엌에서 들깨랑 믹스기를 가져왔다. 어머니는 내게 들깨 갈아 넣어서 만든 쑥국을 먹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 햇 쑥으로 이렇게 들깨 국 끓여 먹으면 노곤한 봄에 기운 차리는 데는 그만이라는 것이다.

 

소금 넣지 말고 간장을, 그것도 꼭 조선간장을 얼마만큼 넣으라고 하시고는 쑥이 푹 삶겨야 좋은 거라면서 끓기 시작하고 나서 불을 끄는 시간까지 감독하셨다.

 

 

“니가 나를 두발 리어카 밀고 위로 아래로 올라 댕기느라 욕보고 몇 번이나 나를 들어 내렸다 들어 올렸다. 올매나 고생이 많았노. 이 쑥 국 한 그릇 먹거라.”

 

처음부터 어머니는 쑥을 뜯어 깨 갈아 넣고 자식에게 쑥 국을 해 먹이고 싶었던 것이다. 큰 냄비에 쑥이 끓으면서 쑥 향이 온 집안에 퍼지기 시작 할 즈음 어머니는 옷도 못 갈아입고는 아이고 허리야 팔이야 하면서 누워버리셨다. 나보다 더 지칠 수밖에 없는 어머니가 끝까지 펄펄하시더니 쑥국이 다 끓자 바로 자리에 누운 것이다. 내가 쑥국을 먹기 시작하자 몇 번 눈을 껌벅대더니 바로 골아 떨어지셨다. 저녁도 걸른 채. (50회에 계속)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네이버 카페 <부모를 모시는 사람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치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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