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가 '불온서적' 23권의 목록을 지정해 군내 반입을 금지하고 있단다. 북한찬양, 반정부, 반미·반자본주의 도서 등 세 분야로 나눠진 23권의 불온서적 목록을 본 나는 깜짝 놀랐다.
내게 특별한 감동을 준 2권의 책, <왜 80이 20에게 지배당하는가>는 북한을 찬양했다는 이유로, 김진숙씨의 <소금꽃 나무>는 반미·반정부라는 이유로 불온 서적에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강의에서 '친북'이라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지난 2006년 '작은책'이 실시한 총 6강좌 중에서 5강좌를 들었는데 그 강좌 녹취록이 <왜 80이 20에게 지배당하는가>라는 책으로 묶여져 나왔다.
책을 읽던 나는 이른 아침임에도 실례를 무릅쓰고 강사 중 한 분께 감사의 전화를 드렸다. 강의를 듣던 때의 감동이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작은책> 편집장인 안건모씨는 20년간 버스운전을 했던 버스 기사다. 그는 작은책 특강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80이 20을 지배하는 세상이, 사람이 살기 좋은 세상이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노동자가 노동을 해서 만든 세상인데 노동자가 주인이 되어야 하는 게 정말 당연한 거 아닙니까?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이 책을 80%가 봐야겠지요. 당신이 그 나머지 20% 자본가라고 생각하면 이 책을 안 봐도 됩니다. 책을 그만 내려놓으셔도 좋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분명 80%에 들어가는 분입니다."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글쓰기 강의 전문가 안건모, 1년에 300회 이상의 노동 강의를 하고 있는 하종강, 연 200회 이상 반FTA 강의를 하고 있는 경제전문가 정태인, 노동자 대상 역사 강의 초대 1순위 박준성, 여성 역사 전문가 이임하, 무상교육·무상의료의 전파자 홍세화가 자신이 활동해 온 영역에서 많은 이들이 꼭 알았으면 하는 내용들을 강의를 통해 전해주었다.
그 강의는 이땅의 노동자로 살아가며 불확실한 미래에 오늘을 저당잡힌 내 삶에 커다란 충격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강의 내내 그 누구에게도 북한을 찬양하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게다가 저 책은 강의 녹취록을 그대로 풀어 엮은 책이다.
불온도서가 아니라 젊은이 권장도서입니다
김진숙씨의 <소금꽃 나무>는 또 어떤가?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용접공이던 김진숙씨가 쓴 그 책을 읽으며 나는 순간순간 목이 메었고 그이보다 평온하게 살아온 나의 학창시절이 몹시도 부끄러웠다. 단 한 장도 그냥 넘어가지 않아 저자를 만나기 전에 완독을 하리라던 결심을 실행에 옯기지 못했다.
책의 일부분을 소개한다.
"한진중공업 다닐때, 아침 조회 시간에 나래비를 쭉 서 있으면 아저씨 등짝에 하나같이 허연 소금꽃이 피어있고 그렇게 서 있는 그들이 소금꽃 나무 같곤 했습니다. 그게 참 서러웠습니다. 내 뒤에 서 있는 누군가는 내 등짝에 피어난 소금꽃을 또 그렇게 보고 있었겠지요. 소금꽃을 피워내는 나무들. 황금이 주렁주렁 열리는 나무들, 그러나 그 나무들은 단 한 개의 황금도 차지 할 수 없는…."
저 글은 우리 시대 산업역군이라는 이름으로 젊음을 불사르고 노동력을 제공해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든 이들의 고백이다.
이렇듯 내가 읽은 몇 권의 책들에는 넘치는 감동은 있을지언정 불온한 요소는 어디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부끄러움을 알게 하고, 다양한 사회적 관점과 역사적 시각을 키워주며 무엇이 사람답게 사는 것인지를 새겨 볼 수 있는 책들이 불온서적이라고? 반대로 젊은이들을 위한 권장도서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출판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에서, 이미 수많은 이들에게 골고루 사랑을 받으며 감동을 준 책들이 어떻게 새삼스럽게 불온한 서적이 되어 군내 반입이 금지될 수 있는 것일까? 지침을 내린 관계자들이 정말 책의 내용을 알기나 하는 것인지 의아한 마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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