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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선 채로 기다리기엔 은하수가 너무 길다.

단 하나 오작교마저 끊어져 버린

지금은 가슴과 가슴으로 노둣돌을 놓아

면도날 위라도 딛고 건너가 만나야 할 우리,

선 채로 기다리기엔 세월이 너무 길다.

그대 몇 번이고 감고 푼 실올

밤마다 그리움 수놓아 짠 베 다시 풀어야 했는가.

내가 먹인 암소는 몇 번이고 새끼를 쳤는데,

그대 짠 베는 몇 필이나 쌓였는가?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사방이 막혀 버린 죽음의 땅에 서서

그대 손짓하는 연인아,

유방도 빼앗기고 쳐녀막도 빼앗기고

마지막 머리털까지 빼앗길지라도

우리는 다시 만나야 한다.

우리들은 은하수를 건너야 한다.

오작교가 없어도 노둣돌이 없어도

가슴을 딛고 건너가 다시 만나야 할 우리,

칼날 위라도 딛고 건너가 만나야 할 우리,

이별은 이별은 끝나야 한다.

말라붙은 은하수 눈물로 녹이고

가슴과 가슴을 노둣돌 놓아

슬픔은 슬픔은 끝나야 한다, 연인아. - 문병란, '직녀에게' 모두

 

 

음력 7월 7일 칠석(七夕), 양력 8월 7일. 그 누구도 말릴 수 없는 지독한 사랑을 하면서도 서로 떨어져 살아야만 하는 슬픈 운명을 지닌 견우와 직녀가 꼭 한 번 만나는 날. 그날 '우리시대 시인들'이 남북 분단 현주소인 민통선에 모여 남과 북의 가슴과 가슴에 한 맺힌 사랑의 노둣돌 문학오작교를 놓는다. 

 

남남북녀라는 말을 빗댄다면 남한은 견우, 북한은 직녀, 민통선은 오작교라 할 수 있다. 견우와 직녀의 슬픈 사랑 이야기는 이미 다 알고 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살얼음판이 된 남북, 금강산 피격 사건으로 더욱 꽁꽁 얼어붙은 한민족의 가슴과 가슴에 문학오작교를 놓는 '우리시대 시인들'의 속내를 엿보기 위해 새삼 훑어보자.

 

하늘나라 목동 견우와 옥황상제의 손녀 직녀가 결혼한다. 견우와 직녀는 결혼을 한 뒤부터 게으름을 피우며 사랑에만 빠져든다. 화가 난 옥황상제는 견우를 미리내(은하수) 동쪽으로, 직녀를 미리내 서쪽으로 보내 서로 떨어져 살게 했다. 그때부터 견우와 직녀는 미리내를 사이에 두고 서로 애타게 그리워했다.

 

이때 견우직녀의 안타까운 사연을 들은 까마귀들이 1년에 꼭 한 번 칠석날에 이들이 서로 만날 수 있도록 미리내에 몰려와 다리를 놓았다. 그 다리가 오작교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칠석날 비가 오면 견우가 직녀를 만나기 위해 '수레를 씻는 비'(세차우, 洗車雨)라 하기도 하고, 견우와 직녀가 서로 만나고 헤어질 때 흘리는 기쁨과 슬픔의 눈물이라고도 했다. 

 

이 이야기는 중국 한대의 괴담(怪談)을 기록한 책 <재해기>(齋諧記)에 실려 있다. 이는 음력 7월7일 저녁에 미리내를 사이에 두고 서로 떨어져 있던 견우성과 직녀성이 실제로 만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비롯된 듯하다. '우리시대 시인들'이 이날 민통선에서 문학오작교를 놓는 행사를 여는 것도 견우와 직녀의 간절한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처럼 남북의 한 맺힌 엇갈림을 끝장내기 위함이다.

 

 

한국 문단 최초로 민통선에서 열리는 '오작교 문학제'

 

"우리는 한국 문단 최초로 한민족 비극의 현장 민통선에서 '오작교 문학제'를 연다. 이 행사는 '민통선에 오작교를 놓아라'는 문학의 화두를 짊어지고 우리 문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하고 공부하는 시간이다. 특히 남북이 경색국면에 접어든 지금, 민통선에서 문학제를 여는 것은 남북통일을 한걸음 앞당기기 위한 문학인들의 간절한 바람이다." - '우리시대 시인들' 공동대표 김창규 시인.

 

2006년 10월, 21세기 리얼리즘 시의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해 창립한 '우리시대 시인들'(공동대표 김창규, 최자웅)이 '분단된 조국의 허리 민통선에 오작교를 놓아라'를 슬로건으로 '여름문학학교'와 '오작교 문학제' 행사를 한꺼번에 펼친다. 오는 7일(목)부터 8일(금)까지 이틀 동안 민통선 안 해병대 청룡관과 애기봉 야외교회당, 문수산 산림욕장 등지에서 열리는 행사가 그것.

 

이번 행사에는 소설가 김성동과 언론인이자 시인 윤재걸, 시인 최자웅, 김창규, 이적, 이소리, 윤일균 등 20여 명의 문인과 일반인 100여 명이 참가한다. 이들은 이틀 동안 민통선 안을 돌아다니며 분단의 아픔과 남북통일을 위한 통일촛불문학제, 민통선 하늘의 별과 분단의 노래, 등산 및 족구대회, 문학강연 등을 펼친다.  

 

7일(목) 오후 2시30분부터 열리는 '민통선 오작교 문학제'는 민통선 산보를 시작으로 오후3시 '만남의 자리', 오후 3시30분 '서부전선 철책선 견학' 등이 이어진다. '서부전선 철책선 견학'에는 이적(민통선 교회 목사) 시인이 길라잡이가 돼 '통일의 화두'를 주제로 한 강연도 곁들인다. 

 

이날 오후 4시에는 해병대 청룡관에서 1시간 동안 소설가 김성동의 '삶과 문학' 강연이 열리며, 오후 5시에는 강연에 따른 참가자들의 질의응답 시간도 가진다. 오후 5시30분에는 지난 2월 중순 첫 시집 <여왕코끼리의 힘>(민음사)을 펴낸 조명 시인이 나와 '여왕코끼리의 힘에 담긴 문학세계'를 강의한다.

 

저녁 8시에는 남과 북이 철조망을 사이에 둔 채 팽팽한 긴장이 감도는 민통선의 캄캄한 밤하늘을 환하게 밝힐 '통일촛불문학제'가 열린다. 이어 밤 9시에는 민통선 하늘에 총총총 박혀 있는 미리내에서 견우성과 직녀성이 만나는 모습을 바라보며 남북이 하나 되는 염원이 담긴 '민통선 하늘의 별과 분단의 노래'란 행사가 펼쳐진다.

 

 

철조망 너머 북녘으로 띄우는 문학인들의 합창

 

8일(금)에는 새벽 6시 문수산 산림욕장에서 열리는 '문수산 등산 및 족구대회'를 시작으로 오전 8시30분부터 본 행사인 '민통선여름문학학교'가 열린다. 이 문학학교에는 언론인 윤재걸 시인의 '시와 언론, 언론과 시', 최자웅(성공회 신부) 시인의 '종교와 문학의 만남', 김창규 시인의 '분단문학과 북한문학의 이해' 등 참가자를 위한 강의가 이어진다. 

 

이날 오후 2시에는 김교서 시인의 '노동현장의 문학', 이소리 시인의 '체험 속의 시', 김연자 시인의 '여성의 삶과 문학', 윤일균 시인과 이상진 시인의 '체험의 문학' 등이 잇따라 열린다. 이와 함께 오후 4시에는 철조망 너머 북쪽을 바라보며 '북녘으로 띄우는 시와 편지'를 참가자 모두 큰 소리로 읽으며 1박2일 동안의 행사를 마무리한다.   

 

'우리시대 시인들' 공동대표 최자웅(신부) 시인은 "우리는 엄혹한 8,90년대 군부독재 정권과 정면으로 맞섰던 문인들이 주축이 된 시문학단체"라고 말한다. 최 시인은 이어 "우리는 민족 사랑과 이웃사랑 그리고 이 땅의 구조적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서 모더니즘을 수용하는 우리만의 문학적 가치관을 설정해놓은 문학그룹"이라고 덧붙였다.

 

이적(민통선 교회 목사) 시인은 "우리는 '우리시대 시인들'의 창립지표이기도 한 '분단극복'의 현장에서 삶과 문학에 대해 날밤을 세워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며 "외부인들의 출입이 제한된 지역에서 사랑과 문학 그리고 삶과 분단조국 이 모든 것들은 '민통선문학학교'에서만 맛 볼 수 있으며, 민통선의 여름밤을 아름답게 수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남북 분단 현장 민통선에서 처음 열리는 '우리시대 시인들'의 오작교 문학제. 아무쪼록 이번 행사가 칠월칠석날 만나 서로의 사랑을 기쁨과 슬픔의 눈물로 확인하는 견우와 직녀처럼, 한민족의 깊고 오랜 사랑을 문학이 낳은 오작교에서 살갑게 확인하는, 그리하여 남북통일을 하루라도 앞당기는 그런 자리가 되길 바란다.

 

한편, '우리시대 시인들'은 2006년 10월 22일 제1회 창립 시낭송회를 시작으로 같은 해 12월 7일 제2회 시낭송회, 2007년 5월 11일 제3회 시낭송회, 같은 해 6월 12일 효순이 미선이 추모 제1회 찾아가는 시낭송회, 같은 해 8월 1일 아프간 억류 인질들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제2회 찾아가는 평화의 시 낭송회를 연 바 있다.    


태그:#우리시대시인들 , #오작교문학제, #민통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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