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훈민정음 연구에 삶을 바치는가?
"그냥 훈민정음이 좋아서, 끌려서 한 것이 여기까지 온 것이다. 타고난 적성이라고 할까? 학창시절을 돌이켜 보면 국어가 나한테는 제일 쉬운 과목이었다.
하지만, 처음 시작할 때부터 한글에 대한 사랑 혹은 무슨 사명감이나 애국심으로 이 연구에 매달린 것은 아니었다. 왜 전공도 아닌 <훈민정음>에게 발목 잡혀서 내 할 일도 제대로 못하고 미친놈 소리를 듣고 사는가 하는 생각도 많이 했다. 또 이 연구가 처음부터 이름난 한글 학자에게 인연이 맺어졌더라면 진작 세상에 빛을 보았을 텐데 '하필 재수 없이 나 같은 비전공자한테 걸려서 <훈민정음> 너도 이 고생을 하는구나'하는 생각도 많이 했다.
특히 '훈민정음 창제원리와 천문학과의 관계'를 규명한 연구는 중요한 내용이 많이 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세상 사람들은 나의 연구내용을 평가하기에 앞서 비전공자라는 것에 아예 책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심지어는 어떤 목사에게 '네까짓 것이 무얼 안다고 건방지게 한글 선교하는 데 시시콜콜 간섭을 하는가?'하고 고압적인 야단을 맞은 적도 있었다. 또 '그 열정으로 직장 승진에나 신경 쓰지……. 쯧쯧'하는 주변의 눈빛들, 냉소와 무시와 무관심한 표정이 주위에 가득했을 정도이다. 그러나 운명처럼 나는 또 훈민정음을 들여다보고 있다. 다시 돌아보아도 내가 할 일이라곤 이것밖에는 없는 것으로 이 모든 게 팔자라는 생각이 든다."
- 어떤 이는 28자 외에 몇 자를 더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28자면 모든 소리 표현이 다 가능한가?
"물론이다. 새로운 글자를 더 만들 필요가 전혀 없다. 다만, 28자는 기본이고 그 외에 세종 때 사용하던 옛 글자를 오늘에 되살려 사용하면 세상의 모든 외국어를 정확히 표현할 수 있다. 그런데도 지금 한글의 모양을 살짝 변형한 경우, 새로운 글자를 만들어 내는 경우, 또 전혀 다른 부호를 만드는 경우 등 최근 들어 부쩍 많은 연구물이 나오고 있어 외국어 표기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한다.
창의적인 생각은 좋지만 이미 세종이 만들어 놓은, 적지 못할 소리가 없는 천상의 악보인 훈민정음의 창제 원리를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본다. 그 모두가 자신의 슬기로움이 세종을 뛰어넘는다는 오만일 뿐이다. 따라서 이제는 이런 논란을 멈추었으면 좋겠다."
- 없어진 네 글자의 음가 설명은 잘 이해되지 않을 수 있다. 실제 음가를 녹음하여 독자에게 제공하면 더 좋지 않을까?
"당연하다. 지난 7월 25일 사단법인 한국어 정보학회 발표회에서 녹음된 발음으로 간단한 시범을 보여주는 기회를 얻었는데 이를 보완하여 녹음한 것을 세상에 내놓을 계획이다. 네 글자는 그 음가를 몰라서 그렇지 현재도 모두 발음되고 있다. 예를 들면 '깊은아'는 발음이 깊고 짧게 나는 소리이며 ㅿ는 여린시읏 이지만 Design[디인]의 발음으로 대용할 수 있으며 ㆆ(된이응)은 입성으로 말(語)의 긴 발음과 말(馬)의 짧은 발음의 종성으로 쓸 수 있으며 여린 기윽 ㆁ은 콧소리에 쓸 수 있다."
- 하도와 중성도는 이해가 어렵다. 좀 더 쉽게 설명해달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하도는 수성, 목성, 화성, 토성, 금성 그리고 해와 달의 운행관계를 표현한 그림으로 천구에서의 북극성과 북두칠성과의 운행 관계를 계절별로 설명한 천문도이다. 세종은 바로 이 하도라는 천문도에 바탕을 두고 중성을 만들었다는 설명을 한 것이며, 한글의 창제 원리가 천문에 바탕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 21개국 회화를 훈민정음으로 표기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 미얀마어나 힌디어 등은 어떻게 확인할 수 있었나? 혹시 해당 언어학자들에게 도움을 받았나?
"힌디어나 체코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중국어, 일본어, 모로코어, 포르투칼어, 러시아어, 프랑스, 오스트리아어, 독일어 등은 여행 중에 현지인들의 발음을 많이 채록하여 참고하였다. 또 언어학자의 도움을 받았으며 그 밖의 외국어는 외국어 강사나 그 나라 문화원의 도움을 받았고 일부 회화 문장은 시중의 회화책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 글자 없는 겨레에게 글자를 만들어주는 일은 종요로운 일이다. 하지만, 나라 차원에서 표준을 정하여 할 일이라고 본다. 이에 대한 생각은?
"당연한 말이다. 나는 각 나라의 표준 표기법을 정부에서 정해주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해 왔다. 한 예로 알파벳의 R이 프랑스어에는 '흐' 발음이 섞여 있고, 루마니아어나 인도네시아어나 아랍어에서는 혀끝이 떨리는 ‘’로 발음하고 있으며 심지어 러시아어나 몽골어에서는 R자를 뒤집어서 쓰면서 ‘야’로 발음하고 있어 참 어려운 문제이다.
그런데 한글로 다른 나라 글자를 만들어주는 이가 통일된 안도 없이 마구 만들게 되면 혼란이 올 수밖에 없다. 또 그 나라 발음을 가장 정확하게 표기할 수 있는 한글발음기호는 한글을 사용하고 있는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으니까 우리가 정부차원의 표기법을 만들어 그들에게 일단 제시해 주자는 뜻이다.
우리가 표준안을 만들고 그것을 글자로 만드는 나라에서 일부 수정해서 사용하는 일은 그 나라 국민 정서에 맡길 일이다. 그래서 각계각층의 연구내용을 분석하여 이론의 타당성을 점검해보는 공청회나 토론회를 열어 충분한 시간을 두고 참고한 뒤 골라서 더 좋은 이론으로 정부의 단일 <외국어 표준 표기법>을 탄생시키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 글자 없는 겨레에게 글자를 만들어주는 일을 하는 개인과 단체가 많다고 들었다. 실제 글자 없는 나라에 훈민정음을 이용하여 글자를 만들어 준 사례는 어느 정도인가?
"고유 문자가 없는 소수민족이 지구 상에 참 많아 중국만 해도 50여 개의 글자 없는 소수 민족이 있다고 들었고 인도네시아는 섬마다 말이 다르다. 그래서 여러 단체와 사람들이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에 한글로 글자를 만들어주려고 노력을 많이 하고 있지만 아직은 극히 일부분이다. 동티모르는 선교사들이 파견되어 한글을 많이 보급해 성과가 나오려던 차에 한 정치인이 그쪽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말을 해 잠시 주춤거리는 정도이다."
흔히 말하는 강단학자가 아닌 재야학자 반재원은 훈민정음 연구에 삶을 바친 사람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신념이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그의 표현은 부드러움 뿐이다. 오랫동안 쌓아온 내공은 강한 말이 아닌 오로지 담담한 주장으로 표현할 뿐이라는 얘기였다. 이제 강단학자들도 그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