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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무건리 훈련장 확장반대를 위한 주민 촛불 문화제>의 첫번째 촛불이 밝혀졌다.
 지난 1일 <무건리 훈련장 확장반대를 위한 주민 촛불 문화제>의 첫번째 촛불이 밝혀졌다.
ⓒ 이덕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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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간간이 내리는 궂은 날씨였다. 널찍한 간격으로 서있는 몇 안 되는 가로등 불빛은 수줍었으나, 바람에 흔들리는 현수막의 내용은 하나같이 결기를 부리고 있었다.

보이는 집마다 노란색 천에 빨간 글씨로 쓰인 '훈련장 반대' 깃발이 나부끼고 있었고, '주민 죽이는 훈련장 확장계획 즉각 중단하라' '두 여중생 죽인 무건리 훈련장 확장이 웬말이냐' 등의 펼침막도 눈에 띄었다.

무건리 훈련장 확장 반대 첫 촛불 타올라

지난 1일 밤 8시 30분. 경기도 파주시 법원읍 오현리 삼거리는 120여 개의 촛불로 밝혀졌다. 조용하던 마을 어귀는 이내 사람들의 두런거리는 목소리와 촛불로 가득 찼다. '무건리 훈련장 확장반대를 위한 주민 촛불 문화제'의 첫날밤이었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들부터 네 살짜리 꼬맹이까지 함께 나와 촛불을 들었다. 주민들뿐 아니라 무건리 훈련장 확장을 반대하는 여러 시민단체들도 함께 했다.

첫 연사로 나선 주병준 무건리훈련장확장저지시민사회단체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 위원장은 "가슴이 벅차다"며, "무건리에 150가구 400여 명 밖에 남지 않았지만 목숨을 다해 끝까지 싸우겠다"고 결의를 다졌다.

농활 온 대학생들도 발랄한 율동으로 분위기를 북돋웠다. 류경문 한신대 총학생회장은 "우리 땅을 지키기 위해 왔다"며 "학교에 돌아가서도 무건리 훈련장 확대로 인해 오현리 주민들이 쫓겨날 상황에 처한 것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촛불집회가 끝난 후 주민들과 시민단체 회원들은 막걸리 축제를 벌였다.
 촛불집회가 끝난 후 주민들과 시민단체 회원들은 막걸리 축제를 벌였다.
ⓒ 이덕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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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가 끝나자 주민들과 시민단체 회원들은 옆에 마련된 천막 밑에서 비를 피하며 걸죽한 막걸리 판을 벌였다. 모두가 함께 잔을 부딪치며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정아무개(82) 할머니는 "촛불집회 하니까 좋아, 계속 하면 좋겠다"고 웃으며, "떠나지만 않으면 좋겠어"라고 소박한 소망을 이야기 했다.

서울에서 석 달 가까이 밝혀지고 있는 촛불이 그러하듯 이들에게도 촛불은 '생존'의 문제였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시민단체 회원의 말처럼 '광우병 쇠고기로 인한 건강권의 위협보다 훨씬 더 위협적인 생존권이 달린 촛불'이었다.


국방부-오현리 주민들의 오래된 싸움


무건리 훈련장의 모습.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들판은 황량했다.
 무건리 훈련장의 모습.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들판은 황량했다.
ⓒ 이덕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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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는 2010년까지 주변 훈련장(무건리, 비암리, 노야산 훈련장)을 하나로 연결하는 1050만평 규모의 권역화 훈련장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 계획에 의하면 오현1,2리 모두 훈련장 확장부지로 편입된다.
 국방부는 2010년까지 주변 훈련장(무건리, 비암리, 노야산 훈련장)을 하나로 연결하는 1050만평 규모의 권역화 훈련장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 계획에 의하면 오현1,2리 모두 훈련장 확장부지로 편입된다.
ⓒ 무건리훈련확장저지시민사회단체공동대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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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건리 훈련장 역사는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국방부는 직천리 79세대 300여 명과 무건리 150세대 550여 명을 쫓아내고, 86년 550만 평 규모의 훈련장을 만들었다.

그리고 10년 뒤인 1996년 또 다시 확장계획을 내놨다. 주변 훈련장(무건리·비암리·노야산훈련장)을 하나로 연결하는 1050만 평 규모의 권역화 훈련장을 만들겠다는 계획이었다. 이 계획에 의하면 오현1·2리 모두 부지로 편입된다.

이 계획은 지난 10년간 지지부진했으나 지난해부터 국방부의 부지매입이 본격적으로 이뤄지면서 주민들과의 대립도 심해졌다.

무건리 훈련장은 오현리에서 약 5㎞ 떨어진 곳에 위치해있다. 지난 2일 직접 찾아가본 훈련장은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거친 들판이었다. 띄엄띄엄 세워진 전봇대 뒤로 잡초만 무성히 자라 있었다.

한때 사람들의 손길과 자연의 도움으로 풍부한 먹을거리를 제공했던 땅은 황량하기만 했다. 훈련장을 안내해준 이재희 공대위 상황실장은 "탱크놀이터"라고 말했다. 산으로 이어진 훈련장도 가보려고 했으나 군에서 바리케이드를 쳐놓아 들어갈 수 없었다. 이 길을 통해 탱크들이 산으로 올라간다고 했다.

군 훈련은 일년 중 180일 이뤄지고 있다. 이 중 미국군이 사용하는 날이 91일로 한국군 보다 이틀이 많다. 이 날은 군 훈련이 없어 군인도 탱크도 볼 수 없었다. 스멀스멀 내리는 빗줄기와 잔뜩 인상을 찌푸린 무거운 회색빛 하늘이 훈련장의 쓸쓸함을 더 해 주고 있었다.

천연기념물 백로들이 찾는 곳, 오현리

오현리는 양주 시내에서 버스를 타고 30분 밖에 걸리지 않는 곳에 위치해 있지만, 전통적인 시골마을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길목마다 얼굴을 드러내는 개들과 도심에서는 볼 수 없는 낡고 허름한 집들이 공존하고 있었다.

주 생계수단은 농사와 낙농이다. 동네를 거닐어보니 사람 키보다 큰 옥수수들과 바람에 온 몸을 흔드는 벼들이 눈에 띈다. 젖소와 한우들도 많이 사육되고 있었는데, 여물을 먹고 있는 소들의 모습이 평온해 보였다. 이 곳은 해마다 여름이 되면 수많은 백로들이 찾아오는, 백로들의 집단 서식지이기도 하다. 그만큼 자연생태계가 살아있다는 증거이다.

주민들이 원하는 건 대단치 않다. 깨끗한 자연 그대로인 '오현리에서의 삶'이다. 이 곳에는 주민들이 아끼고 사랑스러워하는 수려한 자연과 더불어 조상 대대로 직접 가꾸어 온 소중한 땅이 있다. 길을 걸으며 만나는 주민 대부분은 최소 4대 이상 대를 이어 살아온 사람들이었다.

이따금 빈 집들도 만날 수 있었다. 한 주민은 "집과 땅을 팔고 나간 사람들은 원주민은 아니다"라고 말하며 같이 싸울 수 없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오현리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온 이종구(65)씨는 "정말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억울해 했다. 또 "훈련장을 왜 이렇게 한없이 넓히려고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며 "(군인들이 와서) 훈련해도 좋으니 (마을 사람들과)같이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3대째 오현리에 뿌리를 박고 있다는 홍기호(50) 오현2리 이장도 "40년 넘게 농사 짓고 살았는데 이런 꼴을 보니 답답하고 불안하고 당황스럽다"며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 이어 "꼭 훈련장이 더 필요한가"반문했다.

"난 평화…. 이런 거 몰라. 이 넓고 좋은 땅을 왜 훈련장으로 쓰는 거야. 누가 와서 훈련하는지, 목적이 뭔지도 우린 몰라. 그냥 농사짓게 내버려 뒀으면 좋겠어."

마을 곳곳에는 훈련장 확장을 반대하는 내용의 현수막들이 걸려 있었다.
 마을 곳곳에는 훈련장 확장을 반대하는 내용의 현수막들이 걸려 있었다.
ⓒ 이덕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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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결같은 주민들의 바람, "이대로 살게 해줘요"

국방부는 기존부지 550만 평에 약 150만 평정도(기존부지 포함 703만 평)를 2006년까지 꾸준히 매입해왔다. 매입한 땅들은 주민들이 농사를 짓지 못하게 포클레인으로 흙을 다 엎어놨다. 이상훈(60)씨는 "국방부가 매입한 땅이어도 쓰지 않는 동안은 주민들이 쓸 수 있도록 해주면 좋을텐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더 이상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 땅으로 변해가는 게 안타까운 것이다.

이씨는 또 "농사하다 보면 빚을 지게 마련이고 어쩔 수 없이 땅을 파는 사람이 생기기 마련"이라며 "국방부가 계획적으로 여기 땅 조금 사고, 저기 땅 조금 사며 주민들을 압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 역시 17대 째 오현리에 살고 있었다.

그는 "주민들이 어떻게 싸우는지 잘 몰라 지금껏 시간을 이렇게 보냈다"며 각종 시민단체들이 와서 확장반대 투쟁을 함께 해주는 것에 고마움을 표하면서도, "그 사람들이 이야기 하듯이 이기고 지는게 뭔지 잘 모른다"고 말했다. "그냥 나는 여기 살던 대로 사는 것을 바랄 뿐"이란다.

마을회관으로 발걸음을 향하던 김아무개(83) 할머니의 소망도 다른 이들과 다르지 않았다. 할머니는 19살에 오현리로 시집와서 지금까지 살아왔다고 했다. 훈련장 확장에 대해 "무조건 반대"라며 손사래를 치셨다. 만약 훈련장이 확장되면 앞으로 어떻게 하실지 묻자 "내가 어딜 가"냐고 목소리를 높이며 "그 안에 여기서 죽어 나갈 거야"라고 날선 대답이 돌아온다.

젖소 50여 마리를 키우고 있다는 한 40대 주민의 말에도 뼈가 있었다. "소 농사는 생업이고, 다른 데서 못한다. 나한테는 돈도 중요한 게 아니다. 보상도 필요없다. 농사만 짓던 사람이 뭘 알겠냐. 지금은 개가 도와줘도 고맙다고 절할 판이다."

남정림(73) 할머니의 소망도 다른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정부를 이길 수 있겠나"라고 말하면서도 "그래도 여기서 안 나가면 좋지, 여기서 살면 좋아"라고 했다. 말끝마다 아쉬움이 짙게 묻어났다. "훈련하는 거 시끄럽고 그래도 신경도 안 쓴다"며 "내쫓지만 않으면 된다"고 거듭 말했다.

"과일나무 한 그루에 2만원? 이 돈으로 어딜 가야 하나"

무건리 훈련장 부근에서 과수원을 운영하고 있는 임정웅씨. 그는 "군인들의 탱크가 길 가에 과일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펜스도 망가뜨렸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무건리 훈련장 부근에서 과수원을 운영하고 있는 임정웅씨. 그는 "군인들의 탱크가 길 가에 과일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펜스도 망가뜨렸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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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리 주민들이 원하는 건 지금 그대로의 삶이지만 설령 국방부의 요구에 맞춰 이주를 하려고 해도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바로 보상금이 턱없이 낮기 때문이다.

소 50여 마리를 키우는 김아무개(58)씨는 "지금 땅 팔면 양도세도 내야 한다"며 "이곳은 훈련장 부지라서 팔아도 얼마 안 되는데 어떻게 목장을 운영하겠느냐"고 탄식했다.

김씨는 이어 "여기서 살면 그럭저럭 살 수 있지만 나가면 어디서 뭘 먹고 사느냐"며 "포천 같은 곳은 훈련장 없애면서 왜 여기만 확장시키려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4대째 오현리에 살고 있는 남아무개 할머니는 "땅값은 개똥처럼 주면서 나가라니 정말 막막하다"면서 "이 나이에 우리 같은 사람들이 어디로 가겠냐"고 한숨을 내쉬었다.

김희명(75)씨도 "여기서 10평 팔아도 다른 데서 한 평도 못 산다"며 국방부의 보상 대책에 대해 큰 불만을 표시했다.

오현리는 그동안 훈련장 부지로 묶이면서 각종 인허가 및 재산권 행사의 규제가 이뤄져왔고, 그로 인해 이 지역의 공시지가가 주변과 심한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주민들이 국방부의 요구를 수용한다고 해도 실질적으로 다른 곳에 가서 농토를 살 돈 조차 마련할 수 없는 실정이다.

과수원을 운영하는 임정웅(70)씨는 "국방부가 땅을 거저 먹으려고 한다"며 "과일나무 같은 것도 다른 데서는 15~20만원씩 쳐준다는데 나한테는 2만원 얘기하더라"고 말했다. 임씨는 이어 "이걸 팔아서 어디서 또 땅을 사서 농사지을 수 있겠냐"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죽을 각오... 주민들 이름 새긴 묘비 만들고 있다"

주민들이 진정 원하는 건 주한미군 철수나 이미 존재하고 있는 무건리 훈련장의 폐지가 아니다. 단지 그 훈련장이 확장되는 것을 반대할 뿐이다.

이들은 대대손손 살아온, 공기 좋고 물 맑은 이곳에서 떠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게다가 '국가안보'라는 대의를 위해 이들이 이곳을 떠난다고 해도 이들이 손에 쥘 수 있는 보상금은 턱없이 적다. 이것으로 이들이 새로운 삶을 꾸려나간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힘들어 보였다.

홍기호 이장은 "주민들이 죽을 각오로 임한다"며 "각자의 이름이 새긴 묘비를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이 싸움이 쉽게 끝나지 않을 것임을 시사하는 듯 했다.

직천초등학교 운동장 한 켠에서는 주민들의 이름이 새겨진 묘비제작이 한창이었다. 사진은 오현리 주민 김일권씨의 묘비.
 직천초등학교 운동장 한 켠에서는 주민들의 이름이 새겨진 묘비제작이 한창이었다. 사진은 오현리 주민 김일권씨의 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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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리의 풍경에서 지난 3년간 싸워온 평택 대추리의 풍경이 겹쳐졌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지금의 오현리가 제2의 대추리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라며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오현지킴이를 자청한 한 주민은 "목소리 높이고 삿대질 하는 것만이 투쟁이 아니다"며, "나는 컴맹이라 잘 모르지만 요즘은 인터넷에서 조회수나 방문자가 높은 게 국민의 관심을 보여주는 거라고 하더라"며 무건리훈련장확장반대주민대책위원회(http://blog.daum.net/peace_corea) 블로그를 소개하며 국민들의 지지를 호소했다.

일단 7월 28일로 예정됐던 국방부 실시계획 승인고시는 미뤄졌다. 주민들은 고시가 실시되면 국방부 상경투쟁 등 여러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평생 땅과 농사밖에 모르며 살아온 파주 오현리 노인들이 촛불을 밝히기 시작했다. 이들은 "몇 대째 이어져 내려온 이 곳에서 밀려나기 싫다"는 소박한 꿈을 이룰 수 있을까.

덧붙이는 글 | 장일호, 이덕만 기자는 <오마이뉴스> 8기 대학생 인턴기자입니다.



태그:#오현리, #무건리 훈령장, #대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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