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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저녁 6시 30분 '이길준 이경을 지지하는 전의경 출신 예비역 모임' 주최로 중랑경찰서 앞에서 열린다는 기자회견. 그 곳으로 가는 내내 여러 생각들이 들었다.

'이길준 이경은 지금 어떤 모습일까'
'경찰서 앞에는 얼마나 많은 시민들과 전의경들이 서있을까'
'경찰에게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할까'

중랑경찰서로 통하는 길목에는 제복을 입은 경찰관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고, 경찰서를 둘러싼 도로 위에는 10여 대의 전경 버스들이 줄지어 있었다. 경찰서 정문에는 늘 그렇듯 방패 든 전의경들이 서있었다. 양 옆 인도 위까지 가로막고 있는 전의경들까지 합쳐 약 30명이었다. 경찰서 로비에 대기 중인 전의경들도 수십 명.

이에 반해 '이길준 이경 지지 기자회견'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15명 정도였다. 길 건너에 있는 시민들도 10여 명밖에 되지 않았다. 예정보다 10분 늦어진 6시 40분에 기자회견은 시작되었다.

4일 중랑 경찰서 앞에서 '이길준 이경을 지지하는 전의경 출신 예비역 모임' 주최로 이길준 이경 지지 기자회견이 열렸다.
 4일 중랑 경찰서 앞에서 '이길준 이경을 지지하는 전의경 출신 예비역 모임' 주최로 이길준 이경 지지 기자회견이 열렸다.
ⓒ 이덕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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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를 잡은 박재혁(30)씨는 자신을 이길준 이경의 절친한 대학 선배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의경 출신이라고 덧붙였다. 박씨는 "일부 시민들이 이길준 이경을 가리켜 빨갱이라고 비난하지만, 길준이는 너무나도 마음이 여린 친구"라며 "양심에 따라 행동한 이길준 이경의 메시지를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가던 박씨의 목소리는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전의경제 폐지를 위해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결의를 다진 박씨는 "이길준 이경을 보니 내 자신이 부끄럽다"고 고백했다.

4일 중랑 경찰서 앞에서 열린 이길준 이경 지지 기자회견에서 최재완씨가 이길중 이경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하고 있다.
 4일 중랑 경찰서 앞에서 열린 이길준 이경 지지 기자회견에서 최재완씨가 이길중 이경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하고 있다.
ⓒ 이덕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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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전경 출신의 최재완(28)씨가 "나 역시 이길준 이경처럼 군복무 도중 심한 갈등을 겪었다"며 '이길준 이경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했다.

"길준씨는 '인간성이 하얗게 타버리는 기분이었다'라는 말을 했더군요. 저는 길준씨의 그 말을 들으며 2003년 부안에서의 제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핵 폐기장의 건설로 지역 주민들의 삶은 위협 당했고 그들의 정당한 의사표시에 국가권력은 군화발로 응수했습니다. 저는 그 군화발의 일원으로 그 곳에 있었습니다.

저와 같은 생각을 하는 많은 이들, 동네 어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할아버지, 할머니, 아저씨, 아주머니의 입을 틀어막아야 했고, 방패의 날을 세우고 명령이 떨어지면 언제든 공격을 해야 했습니다.

우리는 스무 살 남짓한 가장 젊은 시기에 권력의 폭압을 받아들이고, 적응하고, 스스로 되풀이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저는 폭력의 도구에서 양심의 주체가 되고자 하는 길준씨의 저항을 지지합니다."

담담하게, 그러나 구슬프게 편지를 낭독한 최씨는 "앞으로 이길준 이경의 투쟁에 나 또한 계속해서 동참할 것"이라며 "다른 전의경들도 이 저항에 동참할 것을 호소한다"고 말했다.

명숙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는 '전의경제도 폐지'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명숙 활동가는 "전의경들은 자신들의 양심에 반하는 행동을 할 수밖에 없다"며 전의경제도의 구조적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어 "인간의 기본적 권리를 명시하고 있는 게 헌법인데 전투경찰대설치법은 전의경들의 인권을 유린하고 있어 위헌이다"라고 비판했다.

명숙 활동가는 "지금 여기 서 있는 전의경들로부터 희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며 "가슴 아프지만 앞으로도 희망을 꺾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취재 수첩에 기자회견의 내용을 열심히 받아적던 나는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바로 앞에 서 있는 전의경들은 지금 이 얘기들을 들으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기자회견 장소 길 건너에 인터넷을 통해 알고 찾아왔다는 한 시민이 '양심선언 지지합니다'라고 쓰여 있는 종이를 들고 서 있다.
 기자회견 장소 길 건너에 인터넷을 통해 알고 찾아왔다는 한 시민이 '양심선언 지지합니다'라고 쓰여 있는 종이를 들고 서 있다.
ⓒ 이덕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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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권 진보신당 집행위원장은 '촛불 현장에서 친구, 가족을 진압해야 하는 전의경들의 비애'에 대해 말하며 부당한 지시에 불복하고 양심선언을 한 이길준 이경을 지지했다.

발언이 모두 끝나자 '전의경제도 해체식'을 상징하는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전경 출신의 윤희만씨는 전경 제복을 입은 채 온 몸을 청 테이프로 휘감았다. 그리고 "난 전의경제가 싫다. 난 이길준 이경을 지지한다"고 외치며 마치 헐크처럼 옷을 찢어 벗기 시작했다. 고통이 가득한 절규였다.

4일 이길준 이경 지지 기자회견에서 윤희만씨가 청 테이프로 휘감겨진 전경제복을 찢어 벗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4일 이길준 이경 지지 기자회견에서 윤희만씨가 청 테이프로 휘감겨진 전경제복을 찢어 벗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 이덕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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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의 마지막 순서는 이길준 이경에게 편지를 전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지지모임 측과 경찰 측의 실랑이가 벌어졌다. 지지모임 측은 "이 편지를 이길준 이경에게 직접 전달하겠다"고 했으나, 경찰 측은 "현재 이길준 이경이 소대원들과 떨어져있고 싶다고 해서 소대 내무반을 혼자 쓰고 있는 상황이다. 다른 대원들 사기를 생각해서라도 이제 돌아가 달라"고 답했다.

지지모임 측은 "혹시 지금 가혹행위를 당하고 있는 것 아니냐. 얼굴만 한번 보게 해 달라"고 사정했으나 경찰 측은 "가혹행위는 절대 없다. 지금은 일과 시간이 지났으니 면회를 할 수 없다"고 맞섰다.

결국 10분 동안 지속된 실랑이는 '간접 전달'로 절충됐다. 지지모임 측은 편지 외에도 종이에 격려의 메시지를 적었고, 이는 경찰에 의해 이길준 이경에게 전달되었다.

시민들이 메시지를 적는 사이, 기자회견이 벌어지는 줄곧 행사를 진행 감독하던 경찰 관계자에게 다가가 '오마이뉴스 인턴기자'임을 밝히며 이름과 직책을 물었다. 그는 "말할 수 없다"고 대답했다. 이길준 이경과 관련한 질문을 물으려 하자 그는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왜요?"라고 되물었다.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서"라고 말하자 침묵만이 돌아왔다.

이길준 이경을 지지하는 시민들이 편지와 메모를 전달하자, 이길준 이경이 감사하다는 내용의 답장을 보내왔다.
 이길준 이경을 지지하는 시민들이 편지와 메모를 전달하자, 이길준 이경이 감사하다는 내용의 답장을 보내왔다.
ⓒ 이덕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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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시간이 흐른 후, 이길준 이경이 직접 쓴 메모가 전해졌다. "잘 받았어요. 감사! 감사! 감사!"라고 쓰여 있었다. 이길준 이경의 짧은 답장에 아쉬움을 달래며 지지 모임은 마지막 구호를 힘차게 외치고 기자회견을 마무리했다.

"이길준 이경을 지지합니다. 이길준 이경 힘내세요."      

덧붙이는 글 | 이덕만 기자는 <오마이뉴스> 8기 대학생 인턴기자입니다.



태그:#이길준 이경, #전의경제도?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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