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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속담에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오래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저희는 늘 둘이 함께 합니다. 선진지 견학도 같이 다녔습니다. 둘의 눈으로 보고 또 생각하면서 의논해서 결정했죠. 실수를 줄이고 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었습니다."

 

전라남도 장성군 남면 삼태리에서 시설하우스 7500여㎡(2300평)에 포도를 재배하고 있는 윤상남(65)·김순금(63)씨 부부. 그들은 이른바 '꾼'이다. 농사에 능숙한 사람, 농사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농사꾼', 그 중에서도 '프로' 농사꾼으로 소문이 나 있다.

 

윤씨 부부가 도회지 생활을 청산하고 농사꾼의 길로 들어선 게 20여 년 전. 지금은 인생의 반려자이면서 농업의 동반자가 돼 있지만 엄밀히 따지면 부인 김씨가 '농사 선배'다. 건설회사 전무이사로 퇴직하기까지 남편 윤씨는 직장을 열 번 넘게 바꿨다. 김씨가 '한눈'을 팔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김씨는 통도 크게 당시 소형 아파트 두 채 값에 해당하는 빚을 내 하우스 농사를 시작했다. 이때는 부부싸움도 자주 했다. 그러나 첫해 고추와 수박, 멜론 등을 재배해 큰 소득을 올려 빚을 청산했다. 이듬해엔 내 집을 장만했다. 3년째엔 농사지을 수 있는 땅 1500평을 샀다. 윤씨도 자연스럽게 도회지 생활을 청산하고 농사일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해마다 두세 차례 땅을 갈아 씨를 뿌리고, 수확하는 시설채소 작업이 힘에 부쳤다. 연작 피해도 생겼다. 판로가 일정치 않고 시세도 등락이 심해 안정적인 농사짓기에 한계가 있었다.

 

하여 윤씨 부부는 작목을 바꾸기로 하고 그 답을 찾기 위해 도매시장을 제집 드나들 듯이 했다. 거기서 연중 잘 팔리는 품목이 무엇인지, 안정적인 소득을 보장해주는 작물이 어떤 것인지 파악했다. 한편으로는 둘이 함께 선진지 견학을 병행했다.

 

과수로 작목을 바꾸기로 하고 소비실태를 조사해 본 결과 배, 사과, 복숭아보다 포도 소비량이 훨씬 많았다. 안정적인 소득이 보였다. 지척에 '광주광역시'라는 큰 소비처가 있는 것도 장점이었다. 손이 많이 가고 일이 힘든 게 흠이었지만 그것은 극복의 대상일 뿐이었다. 벌써 15년 전의 일이다.

 

포도로 작목전환을 결심한 윤씨 부부는 선진지에서 배운 기술을 참고하되 그대로 도입하지 않았다. 농사방법은 물론 하우스 형태까지도 지역실정에 맞게 창의성을 더했다. 나무의 높이도 농작업에 편리하도록 조절해 키웠다. 하우스도 표준규격은 아니지만 자신들의 키에 맞춰 인체공학적으로 설계하는 등 시공도 직접 했다. 햇볕은 더 많이 들게 하고 물관리도 쉽도록 만들었다.

 

이 하우스는 지난 2005년 폭설에도 의연하게 버텨냈다. 당시 대부분의 시설하우스는 모두 주저앉고 말았다. 밤낮으로 고민하고 연구하면서 스스로 진일보한 재배기술도 터득했다. 자연스럽게 일도 즐거웠다.

 

윤씨 부부의 프로의식은 하우스에서도 금세 확인된다. 비닐 멀칭 아래로 드러난 과원 바닥이 푸슬푸슬하다. 거미와 지렁이, 땅강아지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발효퇴비를 듬뿍 넣었는지 이름 모를 버섯도 여기저기서 올라온다. 물론 농약 한 방울도 안 뿌렸다. 풀은 다섯 차례에 걸쳐 일일이 김매기를 했다. 병해충을 유인하기 위한 풀밭도 하우스 밖에 따로 조성했다.

 

봉지 사이로 드러난 포도송이가 크고 작은 것 없이 고르다. 속 티끌도 하나 없다. 알맹이 솎아내기를 정성껏 한 결과다. 껍질에 분가루가 많이 묻은 게 당도도 높아 보인다. 향도 빼어나 코끝을 간질인다. 누가 봐도 최상품이다. 알이 고르고 당도와 때깔도 좋아 도매시장 문턱에서 상인들이 달려들어 가져가 버린다고. 어떤 상인은 하우스까지 와서 빼앗아가다시피 한단다.

 

윤씨는 "옛 말에 '호랑이한테 잡혀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다'고 했지 않느냐"면서 "수입개방으로 값싼 농산물이 밀려들더라도 정신을 가다듬고, 뒷차보다 앞차를 타겠다는 자세로 지금부터라도 차분히 준비하면 우리 농업의 경쟁력도 높아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태그:#장성포도, #윤상남, #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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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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