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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를 삶을 때는 소금이나 설탕을 넣지 않고 삶는 게 좋다. 충분히 삶아질 때까지 솥두껑을 열지 않는 것이 제 맛을 내는 비결이다.
▲ 정선찰옥수수. 옥수수를 삶을 때는 소금이나 설탕을 넣지 않고 삶는 게 좋다. 충분히 삶아질 때까지 솥두껑을 열지 않는 것이 제 맛을 내는 비결이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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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엔 태양이 작열하지만 강원도 산촌의 아침 저녁은 가을처럼 서늘하다. 서서히 난방을 생각해야 하는 시기가 된 것. 여름이 제 아무리 기승을 부려도 내일이면 가을로 들어선다는 입추. 입추를 맞이하는 강원도 정선의 농민들은 지금 어떤 심정일까. 들여다 보자.

버릴 것 없는 옥수수는 자연이 주는 건강식품

산좋고 물좋다는 강원도 정선은 옥수수로 유명하다. 여름 휴가철이 시작되는 7월 중순부터 출하가 시작되는 '정선산 미백찰옥수수'는 9월 '대학찰옥수수'가 바통을 이어받을 때까지 그 명성을 이어간다.

정선 사람들이 키운 찰옥수수는 찰기가 많아 입안에 착착 감긴다. 맛있는 이유를 꼽자면 고원지대에 위치한 땅심과 바람, 생육에 적당한 온도와 구성진 정선아라리 가락이 녹아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이유로 정선 거리에 나가면 옥수수 하모니카를 불고 있는 여행객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지금은 웰빙 음식으로 인기를 끌지만 예전에는 주식으로 옥수수밥을 먹었을 정도다. 쌀이 귀하던 시절 옥수수는 주식과 간식 역할을 했다. 옥수수죽은 물론이고 옥수수떡, 강냉이범벅, 옥수수설기, 옥수수보리개떡과 빵, 엿, 심지어는 옥수수술까지 만들어 먹었다.

버릴 것 하나 없는 옥수수는 뿌리와 잎, 옥수수속대, 수염 등을 약제로 쓴다. 옥수수 수염은 당뇨병을 비롯해 이뇨작용이 탁월하고 항암효과도 있다고 알려져 있다. 실제로 농촌진흥청에서는 옥수수 수염에서 항암물질인 '메이신'을 다량 추출하기도 했다. 요즘은 옥수수 수염차가 시판되어 큰 인기를 얻고 있기도 하다.

또 옥수수 뿌리를 끓인 물을 마시면 이뇨와 어혈을 다스릴 수 있으며, 열독을 풀어주고 토혈을 치료한다. 속대를 끓인 물은 비장을 보하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졌다. 옥수수 잎에도 항암 효과가 있는 다당류가 많이 함유되어 있다고 전해진다.

수염을 말려 물에 다려 먹으면 당뇨병과 항암작용, 이뇨작용을 돕게 하는 효과가 있다.
▲ 옥수수수염. 수염을 말려 물에 다려 먹으면 당뇨병과 항암작용, 이뇨작용을 돕게 하는 효과가 있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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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과에 속하는 옥수수는 멕시코가 원산지로 알려져있다. 우리나라의 옥수수는 중국으로부터 전래되었다. 옥수수는 중국말로 위수수(玉蜀黍:옥촉서)다. 위수수가 우리나라로 건너 오면서 옥수수가 되었다. 지방에 따라 옥시기, 강냉이, 옥숙꾸, 옥시게, 강내이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옥수수 한 접에 1만원 "농사 짓지 말라는 것 아닌가요?"

중국에서 옥수수가 전래된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요즘 국내에는 중국산 옥수수가 판을 치고 있다. 찐 옥수수를 급속 냉동하여 들여온 중국산 옥수수는 고속도로 휴게소를 점령한 것도 모자라 노점상까지 점령했다. 싼 가격이 그들을 유혹했고, 마진도 훨씬 커서 중국산 옥수수가 매력적이란다.

문제는 중국산 옥수수가 국내에 들어오면서 강원도 옥수수 혹은 정선산 옥수수로 화려하게 변신한다는 점이다. 원산지 표시는 애초부터 신경도 쓰지 않는다. 중국산 옥수수 포장 박스만 치워버리면 보통의 사람은 그것이 중국산이라는 사실 조차 알기 어렵다. 그런 '둔갑표 옥수수'는 1개 2000원의 고가에 팔리기도 한다.

반면 정선산 찰옥수수는 어떤가. 옥수수가 한창 출하되는 시기지만 옥수수 재배 농가들은 울상을 짓다 못해 분노에 차있다. 현재 정선의 옥수수는 한 접(100개)에 2만 5천원 선. 물론 판매상들이 받는 가격이다. 그 가격도 지난해 4만 5천원에 비하면 절반으로 떨어진 가격이다.

판매상이 받는 가격이 이렇다면 농민들에게 돌아가는 돈은 얼마일까. 판매상에게 넘어가는 옥수수 한 접 가격은 1만원 선. 옥수수 100개가 1만원이니 1개에 100원 꼴이다. 그것도 상품가치가 있는 것으로 골라 그렇게 받으니 상품이 되지 못하는 것까지 전 생산량을 따지면 1개에 70원도 되지 않는다.

옥수수 한 접이면 그 무게가 40kg 정도. 어른이라도 끙끙거리며 들어야 하는 무게. 그 옥수수를 따기 위해 농민이 흘리는 땀은 눈물보다도 짜다. 1개에 70원도 받지 못하는 옥수수를 생산하기 위해 들이는 공을 따진다면 지금의 가격은 농민을 절망의 늪에 빠지게 하기에 충분하다.

잘 여문 옥수수가 100개 한 접에 1만원. 농민으로 살아갈 수 없는 이유이다.
▲ 옥수수. 잘 여문 옥수수가 100개 한 접에 1만원. 농민으로 살아갈 수 없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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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 종자를 받은 농민은 봄 기운이 돌기 무섭게 비닐하우스에 파종을 한다. 그렇게 파종한 옥수수가 포트에서 한뼘 정도 자라면 농민은 그것을 밭으로 옮겨 심는다. 그 시기는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4월에서 5월 초다. 옥수수 모종을 하나씩 옮겨 심는 일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밭이 조금이라도 크면 사람을 구해야만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옥수수 한 통에 100원, 따는 인건비도 되지않아

옥수수 모종이 어른 옥수수가 될 때까지 몇 번의 비료 살포는 필수적이다. 비료를 주지 않으면 옥수수통이 커지지 않으니 눈물을 머금고 비료를 사야한다. 훌쩍 오른 비료값이 농민의 가슴을 또 후려치는 순간이다.

비료만 주는가. 옥수수가 잘 자라게 하기 위해선 김도 매야 한다. 사람을 구해 김을 매지 않으려면 제초제라도 쳐야 하는데 농약값이 또 들어간다. 이리저리 들어가는 돈만 해도 상당하다. 그렇게 하여 키운 옥수수가 한 접에 1만원란다.

옥수수가 한 접에 1만원이라면 옥수수 한 접을 딸 때 들어가는 인건비도 되지 않는다. 옥수수를 키우면서 든 비료값과 모종을 옮겨 심을 때의 인건비 등은 하나도 포함되지 않았다. 옥수수 농사를 지은 농민이 절망할 수밖에 없는 이유들이다.

뜨거운 여름날 옥수수밭 사이를 헤집으며 옥수수를 따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그 일을 해본 사람은 이해할 수 있겠다. 또 옥수수 한 번 따고 나면 얼굴과 목에 어떤 상처가 나는지도 알 수 있겠다. 날카로운 옥수수잎이 얼굴이나 목에 스치면서 피를 흘리게 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 옥수수잎은 날카로운 흉기와 다르지 않다. 그런 일 마다않고 옥수수를 따지만 1개에 100원도 받지 못한단다.

봄부터 여름까지 고생한 일을 생각하면 1개에 1000원을 받는다 해도 성이 차지 않을 이 땅의 농민들. 산에서 내려온 멧돼지로부터 옥수수를 지키느라 밤을 새운 일도 다반사인 농민들. 중국산 옥수수가 정선찰옥수수로 둔갑해 팔리고 있지만 그에 대한 뾰족한 대책도 없다.

옥수수가 밭에서 말라가고 있다. 삶아 먹기엔 이미 늦은 모습이다.
▲ 말라가는 옥수수. 옥수수가 밭에서 말라가고 있다. 삶아 먹기엔 이미 늦은 모습이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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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산에 밀린 농민들 "밭에 있는 옥수수 누가 좀 따가주세요"

지난해만 해도 정선 농민은 옥수수 한 접에 3만 5천원씩 받았다. 하지만 올해는 1만원. 그런 이유로 정선의 몇몇 농민은 올해 아예 출하를 포기했다. 옥수수를 베어내고 그 자리에 들깨를 심어야 하지만 애써 키운 옥수수를 그냥 버릴 수도 없어 들깨 농사를 포기했다.

"비료나 농약값, 기름값 등 모든 물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고 있잖아요? 그런데 유독 농산물만 떨어지고 있어요. 이거 농사 짓지 말라는 거 아닌가요?"

물려 받은 땅이 있으니 놀릴 수도 없는 처지의 농민들. 농사 짓는 일을 빼고는 다른 재주도 없는 농민들이다. 하는 수 없이 농사를 지어보지만 해마다 적자만 생겼다. 늘어나는 게 농협 빚이라고 이젠 그 빚을 감당할 능력도 해결할 능력도 없다고 한다.

"차라리 저 옥수수 누가 다 기냥 따갔으면 좋겠어요."

한 농민은 그렇게 말했다. 옥수수 딸 시기가 지나면 그나마 삶아 먹을 수도 없으니 누군가 따갔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농민의 얼굴엔 시름만 가득했다.

그래서인지 요즘 옥수수 농사를 지은 집을 방문하면 옥수수 좀 따가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 마음이 이해가 되어 딱히 필요가 없어도 옥수수를 따서는 잘 먹겠다는 인사를 남기고 돌아온다.

값싼 중국산에 밀려 밭에서 말라가는 정선의 옥수수들. 올해 옥수수 농사를 지은 농민에겐 그 옥수수가 쌀이 되지 못하고 아이들의 등록금이 되지 못했다. 옥수수 한 접을 팔아야 1.8리터짜리 간장 한 통을 살 수 있고, 옥수수 열 접을 팔아야 아이들 데리고 외식이라도 한 번 할 수 있는 이 땅의 농민들에겐 이 여름이 시련의 계절임은 틀림없다. 

옥수수 50개를 팔아야 자반고등어 한 손을 살 수 있는 농민의 처지가 안타깝다 못해 눈물겹다. 하얗게 말라가는 옥수수만큼이나 농민의 마음도 말라간다. 그 현실속에서 농민이 설 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농민의 삶을 어이해야 하는지 그 답을 내려줄 자 누구인가.

급속냉동된 중국산 옥수수가 정선산 찰옥수수로 둔갑한다.
▲ 중국산찰옥수수 급속냉동된 중국산 옥수수가 정선산 찰옥수수로 둔갑한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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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정선옥수수, #찰옥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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