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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후 세 장의 쪽지를 받다
 

 

쪽지 1: "도울 일 있으면 연락 주세요"

 

에머럴드 드라이브로 이사를 온 뒤 이삿짐을 정리하고 있을 때였다. "딩동"하고 누군가 초인종을 눌렀다. '올 사람이 없는데…'라고 생각하며 현관문 쪽으로 걸어가는데 한 젊은 남자가 미소를 띤 채 문 앞에 서 있었다.

 

"우리 이웃이 된 걸 환영해요."

 

남자는 우리 부부에게 악수를 청하면서 자신을 소개했다. 276번지에 산다는 조시 바우어였다. 조시는 우리가 에머럴드 드라이브로 이사온 뒤 처음 보는 젊은 사람이었다.

 

이곳에는 나이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가 실버타운으로 이사온 게 아니냐"는 농담을 나눴을 만큼 고즈넉한 동네였다. 밤에도 일찍 불이 꺼지고 아주 조용하기 이를 데 없는 그런. 

 

바로 이런 곳에서 아직 결혼도 안 한 젊은 조시를 보니 반가웠다. 조시 말로는 우리가 이 동네에서 두 번째로 젊다고 했다. '에엥, 이 나이에 2등이라고?'

 

하여간 문 앞에 서서 조시와 잠깐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아직 정리가 안된 집이어서 우리는 조시를 안으로 들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미안하다고 얘길 했는데 조시는 자신이 갑작스레 찾아온 이유를 설명하듯 쪽지 한 장을 내미는 것이었다.   

 

그 쪽지에는 자신의 이름과 주소, 휴대폰 번호, 이메일이 적혀 있었다. 미국에서는 수신자, 발신자 모두에게 휴대폰 요금이 부과되기 때문에 웬만하면 휴대폰 번호를 가르쳐 주지 않는다. 그런데 조시의 쪽지에는 친절하게도 자신의 휴대폰 번호가 적혀 있었다.

 

"새로 이사 와서 궁금한 게 있으면, 또 제가 도울 일이 있으면 연락 주세요."

 

쪽지 2:  쓰레기 수거일을 적어온 마가렛

 

새로 이사온 동네는 전에 살던 타운하우스와는 달리 공동 쓰레기통이 없었다. 아니, 쓰레기통 자체가 아예 눈에 띄지 않았다. '이 동네는 쓰레기를 어떻게 처리하는 거지?' 그러다 마침 정원을 손질하러 나온 할머니를 보게 되었다.

 

"옆집으로 새로 이사온 나영이에요. 만나서 반가워요. 그런데 쓰레기통이 안 보이는데 여기는 쓰레기를 어떻게 처리하고 있나요?"

 

일흔 여덟이라는 마가렛 할머니는 친절하게 이렇게 말해줬다.  

 

"쓰레기는 일주일에 두 번, 월요일과 수요일만 수거해 가요. 월요일은 재활용 쓰레기와 일반 쓰레기를, 수요일은 정원 쓰레기만 수거해요. 정원 쓰레기는 갈색 종이백이나 플라스틱 쓰레기통을 쓰면 되고 일반 쓰레기는 흰 비닐백이나 검정 비닐백, 아니면 플라스틱 쓰레기통을 쓰면 돼요."

 

전에 살던 집과는 달리 이제는 요일과 쓰레기를 구분해야 한다는 마가렛의 설명을 들으며 나는 '복창'을 했다. 잘 기억했다 실천하려고.
 
그런데 몇 분 지나지 않아 다시 누군가 우리집 초인종을 눌렀다. 마가렛이었다.

 

"여기에 다 적어 왔어요."

 

예쁜 수첩 메모지에는 쓰레기통과 비닐백을 살 수 있는 장소까지 소개한 마가렛의 친절한 정보가 적혀 있었다.

 

 

쪽지 3: "한 달에 한 번씩 같이 식사해요"

 

차고 앞에서 짐을 정리하다 에머랄드 드라이브로 들어오는 차와 마주쳤다. 창문이 열리더니 운전석에 있던 인상 좋은 할머니가 말을 건넸다. 

 

"환영해요. 저는 콜린이에요."

"고마워요."

 

"우리 에머럴드 사람들은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식사를 해요."

 

'에엥, 미국에도 반상회가?'

 

"매월 첫째 월요일에 '밥 에반스'에서 점심을 먹어요. 서로 얘기도 나누고 우리 동네에 필요한 사안도 의논하고요. 그러니 시간이 되면 오세요. 전화번호를 적어줄 테니 혹시 궁금한 게 있으면 전화도 하고요."

 

나이가 많아 보이는 콜린이 덜덜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한 자 한 자 꾸꾹 눌러 정성스럽게 적어줬다.

 

새로 이사를 와도 아는 둥 마는 둥 모른 채 하기 일쑤인 야박한 세상에 (한국이나 미국이나) 이렇게 환대를 해주는 친절한 이웃을 만나고 보니 좋은 동네로 이사왔다는 느낌을 받았다.

 

노란 장미와 아이스크림

 

에머럴드 사람들의 친절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며칠이 더 지난 어느 날이었다. 예쁜 원피스를 입은 마가렛이 우리집 초인종을 눌렀다. 마가렛 손에는 화려한 노란 장미 화분이 들려 있었다.

 

“이웃이 된 당신을 환영해요. 마가렛”

 

장미 화분에는 마가렛이 직접 쓴 카드 팻말이 꼽혀 있었다.  

 

 
다음 날 오후에 우리집을 찾은 사람이 또 있었다. 젊은 조시였다. 조시의 손에는 아이스크림 통과 아이스크림 수저가 들려 있었다.

 

 

"방금 만들었어요. 복숭아 아이스크림이에요."

"뭐, 뭐라고요? 아이스크림을 직접 만들었다고요?"

 

새로 이사온 이웃을 위해 총각인 조시가 아이스크림까지 만드는 정성을 보여준 것이다.

 

아직 익숙하지 않은 새 동네에서 이렇게 마음에서 우러난 이웃들의 따뜻한 환대를 받고 보니 너무나 행복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사를 가게 되면 새로 이사온 사람이 이웃들에게 인사 떡을 돌리곤 하는데 (물론 요즘에는 이마저도 없어지고 있는 듯 하지만), 이렇게 먼저 살던 오랜 이웃이 새로 이사온 사람을 환영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정한 이곳 에머럴드 사람들처럼 말이다.

 


태그:#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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