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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진흥왕 시절이었다. 월성 동쪽에 궁궐을 짓다가 갑자기 누런 용 한 마리가 나타났다. 사람들은 이 기이한 광경에 몸을 사렸고, 이 소식은 곧 왕에게 전해졌다. 왕은 이를 부처님의 계시라 생각하며 왕궁 축조 사업을 포기했다. 대신, 그 자리에 거대한 사찰을 짓기로 결심했다. 이른바 황룡사 축조 사업의 시작이었다.

진흥왕 14년(서기 553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선덕여왕 14년인 645년에 구층 목탑을 세움으로써 비로소 완공되었다는 신비의 절, 황룡사. 아무도 이 절의 진짜 모습을 모른다. 아무도 황룡사 구층 목탑의 진짜 모습을 모른다. 고려 고종 25년(서기 1238년)에 몽고병의 침입으로 이 거대한 가람이 불타버렸기에, 약소국의 한을 안고 흔적도 없이 목탑이 사라졌기에 누구도 이 사찰과 목탑의 원형을 모른다. 다만, 심초석과 주춧돌로만 그 가녀린 흔적을 우리에게 조금 전해줄 뿐이다.

옥룡암으로 가는 길
 옥룡암으로 가는 길
ⓒ 김대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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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목탑의 흔적을 조금이라도 볼까 하여 경주 남산의 옥룡암을 찾았다. 경주 화랑수련원에서 좁은 도로를 따라 가면 망덕사지가 나타나고, 그 망덕사지 맞은편에 있는 신작로로 접어들어 조금만 올라보면 옥룡암을 만나게 된다.

일제시대, 민족시인 이육사가 잠시 요양하였다는 옥룡암의 연륜은 그리 깊지 않다. 그러나 1924년 박일정 스님의 발원에 의해 세워진 이 작은 암자는 연초록빛에 둘러싸인 절이다. 해마다 가을철이면 빨강과 노랑, 주황색과 초록이 그림처럼 드리워지는 작고 아담한 절이다. 절 앞 계곡의 소담지에 있는 앙증맞은 폭포가 웃으면서 나그네를 맞이하는, 풍경화처럼 고운 절이다.

작은 다리를 하나 건너면 곧 바로 절의 앞마당이 나타나고, 낮은 돌계단을 따라 가면 대웅전의 현묘한 처마가 수줍게 고개를 숙이고 있다. 대웅전 왼편에 난 작은 길. 이 길을 따라 천천히 걸으니 어느새 거대한 바위 하나가 나타난다.

사방부처바위라 일컬어지는 육중한 몸매의 바위에는 동서남북 가득 부처님의 모습들이 새겨져 있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자못 웅장한 모습을 중생들에게 시위하는 구층탑과 칠층탑이 있다. 이름 하여 마애구층탑. 그의 신령한 모습이 천오백년의 세월을 넘어 눈앞에 펼쳐지는 것이다.

사방부처바위 북면
 사방부처바위 북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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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세월은 무상하던가. 사방의 작은 절들을 거느리며 경주 시내를 굽어보던 황룡사는 사라졌지만, 구층 목탑을 닮은 마애구층탑만이 무심의 바위 위에 자리를 잡고 있으니 세상지사 그 얼마나 허망하단 말인가. 외적의 병화에 의해 한 줌 티끌로 사라진 구층 목탑이 못내 아쉬워서일까? 마애구층탑은 빛바랜 사진 속의 한 장면처럼 잔잔한 햇살 아래 신비로운 모습을 노출하고 있었다.

이 부처바위에는 총 36개의 부처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 높이는 약 10m이고 그 둘레는 약 30m인 부처바위에는 동서남북 그 어디에나 부처님의 형상이 새겨져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이렇게 사방에 부처님을 조각한 바위는 국내에서 유일한 것이다.

북면의 마애구층탑
 북면의 마애구층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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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마애구층탑이 새겨진 북면을 천천히 살펴보았다. 구층탑이 왼편에 있고, 칠층탑이 오른편에 있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여래좌상이 잔잔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또한 그 아래쪽에는 암수 한 쌍의 사자가 좌우대칭으로 마주보고 있는데, 이는 불법을 수호하는 수호신을 형상화 한 것이라고 한다.

정말 저 모습이 황룡사 구층목탑의 원형일까? 기록으로만 전해져 오는 황룡사 구층 목탑이 과연 저 형상으로, 높이 80m의 웅장한 자태로 경주 시내를 굽어보았단 말인가. 처마에 드리워진 풍경과 다소 투박하게 조각된 기와 곡선이 바로 구층탑의 모습이었단 말인가. 진실 여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이곳에서 서쪽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면 황룡사지가 나타나니 거짓으로라도 믿고 싶을 수밖에. 불교에서 말하는 서쪽은 서방정토가 아니던가.

그럼 이 바위의 서쪽에는 무엇이 있을까. 궁금증을 안고 서쪽 방향으로 몸을 돌리니 여래좌상과 비천상 2구가 비밀스럽게 새겨져 있다. 아무리 바위라도 기나긴 세월을 감당하기 힘들었는가. 여래좌상은 다소 감작감작한 모습이었다. 검은 얼룩과 점들이 여래의 얼굴을 허물고 있었다. 그래도 여래좌상은 예의 그 의젓한 자태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천 오백년의 세월을 넘어 이 자리에 굳건히 있었다.

남면
 남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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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을 돌아 남쪽으로 가보니 마애삼존불이 사이좋게 서 있었다. 마애삼존불은 좀 더 깊이 음각되어 있어 그 입체성이 눈에 확 들어올 정도였다. 그리고 그 앞에 서 있는 여래입상의 오밀조밀한 모습은 또 어떻고. 그런데 신기하게도 여래입상의 발바닥 색깔이 몸통과 전혀 맞지 않았다. 아하, 원래 이 입상의 발바닥이 어떤 연유로 사라지고 말았구나. 그래서 후세에 이 입상에 맞는 발바닥을 별도로 조각하였구나.

잠시 후, 남쪽을 뒤로하고 동쪽으로 나아가니 본존불을 중심으로 좌우 협시보살과 아름다운 옷자락을 휘날리며 지상으로 내려오는 7구의 비천상이 아름드리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 오른쪽 아래에 새겨진 부처님께 공양하는 어느 비구의 모습이 가슴을 아릿하게 만든다.

도대체 저 스님은 얼마나 오랜 세월 동안 저렇게 앉아 있었던 것일까? 그 수많은 세월동안 그는 무엇을 빌고 또 빌었던가? 아홉 군데의 방향에서 쳐들어오는 오랑캐를 물리쳐 달라고 빌었을까? 아니면 이 땅에 부처님의 나라를 세워달라고 빌었을까?

혹시 저 스님은 황룡사 구층 목탑의 각 층을 하나하나씩 밟았던 사람일지도 모른다. 1층부터 밟으면서 일본, 중화, 오월, 탁라, 응유, 말갈, 단국, 예맥의 침략으로부터 조국을 지켜달라고 간절히 빌었을지도 모른다. 나약하고 무기력한 조국의 모습을 생각하며 작은 눈물을 흘렸을지도 모른다.

처마에 달린 풍경들
 처마에 달린 풍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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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처음 본 북면으로 돌아와서 구층탑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부처바위를 한 바퀴 도는그 찰나의 순간에도 저 구층탑은 자신의 모습을 변화시켰을 것이다. 조금 전의 햇살도 방향을 바꾸었고, 하늘을 떠돌던 맑은 공기도 방향을 바꾸었으니 말이다.

내가 바위를 한 바퀴 도는 동안 억겁의 세월이 흘렀을지도 모르고, 티끌같은 시간이 흘렀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는 잠시 서방정토를 다녀왔을지도 모른다. 아마 이 부처 바위 자체가 서방정토이리라. 아마 이 부처바위 자체가 불국토이리라.

동쪽면
 동쪽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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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애구층탑. 오늘도 말없이 남산의 한 구석에 앉아 천오백년의 신비를 간직한 채, 자신을 찾아오는 중생들에게 황룡사의 가녀린 흔적을 전해주는 마애구층탑. 그 언젠가 황룡사가 복원되는 날, 이 마애구층탑은 환희의 미소를 지을지도 모른다. 마애구층탑의 처마에 걸린 저 풍경들이 일제히 소리를 낼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애구층탑은 알고 있을 것이다. 아직은 때가 아님을. 아직은 종소리를 낼 때가 아님을. 여전히 약소국의 위치에 머물러 있는 조국의 현실을 보면서, 여전히 대국에게 머리를 조아려야만 하는 현실을 보면서 마애구층탑은 숨소리를 죽이고 있을 것이다.

마애구층탑이여, 그 언젠가는 그대의 품 안에서 종소리가 날 것이다. 조각난 국토가 다시 하나가 되었을 때, 그대는 열락의 종소리를 우렁차게 낼 것이다.

돌아서 나오는 길. 키 작은 산신각의 뜨락에 핀 목련이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유포터에도 송고함



태그:#마애구층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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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스토리텔링 전문가. <영화처럼 재미있는 부산>,<토요일에 떠나는 부산의 박물관 여행>. <잃어버린 왕국, 가야를 찾아서>저자. 단편소설집, 프러시안 블루 출간. 광범위한 글쓰기에 매진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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