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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인턴기자 4주차. 아직 부족한 것 투성이다. 6일 오후 3시경 마이클 핸슨 박사의 '미국의 광우병 안전시스템의 실상과 식품안전운동의 과제'라는 좌담회를 듣고 있는 중이었다.

 

그때 가방이 핸드폰 진동 때문에 부르르 떨렸다. 발신은 엄마. 하지만 두 번 생각 않고 전화를 매몰차게 끊어버렸다. 좌담회가 끝나고 어떻게 기사를 써야할지 더운 광화문 거리를 걸으며 고민 중이었다. 그때 또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은 또 엄마.

 

"(짜증내며) 왜!"

"왜 전화를 그냥 끊어? 바빠?"

"좌담회 중이었다고!"

"딸, 요즘 왜 그렇게 집에서 말도 없고 차가워? 꼭 남의 집 딸이랑 사는 것 같아."

 

우리 엄마와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연인사이보다 더 각별하다. 더운 여름밤이면 둘이 버스타고 나가서 심야영화 보고 해 뜰 때까지 맥주 한 잔하며 수다를 떨다가 들어오는 것이 일상이었다. 올 여름에는 과외를 해서 받은 돈을 차곡차곡 모아 엄마와 일주일간 태국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24시간 마르지 않았던 엄마와의 '수다'

 

웬만한 친구보다 말이 훨씬 잘 통해서 옷을 사러 갈 때는 물론, 그 어디를 가도 엄마와 함께 했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숨기는 것도 없는 편이었다.

 

중학교 1학년 때는 이런 적도 있었다. 엄마가 아빠와 싸워서 기분이 안 좋아 보이기에, "엄마 우리 가출할까?"라고 물었다. 엄마는 재밌겠다며 "오케이!" 했고 그날 새벽에 몰래 둘이 컵라면을 끓여먹고, 아빠에게 들킬 새라 조심스럽게 첫차를 타고 부산으로 향했다. 엄마는 버스에 타자마자 말했다.

 

"딸, 핸드폰 배터리 뽑아."

 

채 하루가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그렇게 발칙한 모녀는 부산에서의 밀월여행(?)을 맘껏 즐기다가 왔다. 절친한 동반자인 모녀는 집에서도 항상 쉬지 않고 얘기를 한다.

 

"엄마 내 친구가 어쩌고저쩌고…."

 

하도 내가 친구들 얘기를 많이 해서 엄마는 내 친구들에 대한 모든 것들을 대부분 알고 있다. 그래서 가끔 묻는다. "얘, 아무개랑 아무개는 아직도 잘 사귀니? 어머, 걔네 오래가네?"라고.

 

연인보다 절친했던 모녀사이에 위기가 닥치다

 

 

그러던 모녀 사이에 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인턴을 시작하고 몸도 마음도 바쁘게 되니 나도 모르게 짜증을 쉽게 내기 시작했다. 말투도 사나워지고. 이런 내 자신에 대해 나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나도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조심스럽게 "오랜만에 심야영화 보러 갈까?"라는 엄마의 말에도 "내일 출근해야 돼! 엄마랑 영화 봐야 한다고 휴가 달라 그럴 수도 없잖아!"라고 쏘아붙이기 일쑤였다.  

 

대화가 거의 없어진 것이 아쉬웠는지 엄마가 아침에 출근할 때마다 내방에 들어와서 한 마디라도 말을 붙이려고 한다.

 

"어머, 우리 딸 바쁘더니 볼살이 쪽 빠졌네."

 

그러면 괜히 나는 "하나도 안 빠졌어! 완전 동그랗잖아! 내 얼굴은 저주 받은 얼굴이야!"라고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린다.

 

우리집에서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언행(?)을 '꼴통 부린다'고 표현한다. 그렇게 꼴통을 부리고 집을 나서면 회사로 가는 1시간 내내 마음이 불편하다. 그래서 "이렇게 짜증스럽게 막말을 할 바에는 입을 닫자"고 결심했다. 그래서 약 4주간 그렇게 조잘조잘 말 많던 딸이 입을 굳게 닫아버린 것이다.

 

집에 가면 바로 씻고 자고, 아침에 일어나선 피곤해서 짜증내고. 이런 날이 반복되니 엄마도 나도 지쳤다. 오죽하면 남의 집 딸이랑 사는 것 같다고 할까. 항상 연인같이 지내는 우리지만, 연인과 다른 점이 있다. 엄마는 결코 나에 대한 애정을 포기하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취재가 끝나고 집에 오면 책상 위에는 온갖 종류의 과일이 예쁘게 담겨있다. 메론, 복숭아, 토마토, 사과… 뭐든 싫증을 잘 내는 딸을 위한 배려인 것이다.

 

 

뭐든 쉽게 질리는 내가 유일하게 싫증을 안 내는 것이 있는데 그게 바로 '옥수수'다. 그래서 매년 여름 우리집에는 옥수수가 넘쳐난다. 그런데 요즘에는 그것도 영 시큰둥하다. 엄마가 먹으라고 책상 위에 올려놓으면 건드리지도 않아서 쉬어서 버리기도 하고.

 

그렇게 좋아하는 옥수수도 본체만체 하니 엄마가 이상했는지 "딸, 옥수수 안 먹어?"라고 묻기에 "무슨 옥수수야! 방금 운동했단 말이야!"라고 괜히 신경질이다. 그렇게 나의 냉정한 말과 함께 버림받은 옥수수들은 냉동실로 직행한다. 새벽에 물을 마시러 나왔다가 냉장고 문을 열었는데 버려진 옥수수들이 얼려져 있었다. 그걸 보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꽁꽁 얼어있는 것이 꼭 요즘 엄마와 나 같아서 말이다.

 

 

"엄마, 우리 '님은 먼 곳에' 보러 가자"

 

엄마가 인턴을 하라고 제안한 것도 아니다. 내가 하겠다고 한 것이다. 고등학교 때도 우리 엄마는 실제로 "공부해라"라는 말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왜 그랬냐고 묻자, "안 그래도 스트레스 받을 텐데 엄마까지 뭐 하러 거드니?"라고 하셨다.

 

그런데도 고3 때 마치 벼슬이라도 하는 듯 나의 거만한 태도는 가관이었다. 나도 모르게 '엄마'라는 존재는 일방적으로 자식에게 사랑을 주어야 할 존재라고 여겨왔던 것 같다. 내가 어떤 짓을 해도 내 편이 되어줄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더 쉽게 대한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엄마도 사람이고 여자다. 아무리 귀한 딸이라도 사랑은 주고받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 엄마는 나에게 간절히 원했던 것이 있다. 바로 '다이어트'이다. 공부도 잘하고 예뻤으면 좋겠다는 엄마를 위해 운동을 하고 있다. 취재가 끝난 뒤 10시쯤 집에 와서 운동을 하면 멀리서 보고는 웃음을 감추지 못하신다. 그런 엄마를 위해 열심히 운동하는 모습을 보여야지.

 

 

보기로 했던 영화들도 어떻게든 시간 내서 보러가자고 해야 겠다. 출근하는 지하철 안에서 꾸벅꾸벅 조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그리고 엄마랑 약속한 것이 하나 더 있다. 여름방학 때 '전주'에 가서 맛있는 '비빔밥'을 먹고 오자는 것. 이 약속도 곧 시행할 것이다. 그리고 겨울방학에는 과외비를 더 모아서 나랑 단둘이 여행하는 걸 너무 좋아하는 엄마에게 유럽 구경을 시켜드릴 것이다.

 

"엄마 거봐, 딸이 비행기 태워 준다잖아~."

덧붙이는 글 | 편은지 기자는 <오마이뉴스> 8기 인턴기자입니다. 


태그:#모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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