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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승이 없다는 시대, 참다운 스승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는 책이 나왔다.
 스승이 없다는 시대, 참다운 스승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는 책이 나왔다.
ⓒ 솔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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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하느님>이 국방부 불온서적 23종 안에 이름을 올렸다. 이 책은 지난해 작고한 아동문학가이자 생태주의 사상가인 권정생 선생이 지난 1996년 생태·인문학출판으로 유명한 녹색평론사에서 출판한 책이다. 이 책은 당시 MBC <느낌표!> 권장도서로 선정되기도 했으나, 권 선생이 선정을 거부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당시 <느낌표!> 권장도서로 선정되면 수십만 권 이상이 팔려나갈 정도. 그 방송은 저자에게, 조금 과장해 말하면 일확천금의 돈(인세)을 안겨주던 프로그램이었다.

그런데 권정생 선생은 “아이들이 스스로 책을 고르는 것도 공부이고 재미인데 그것을 왜 어른들이 빼앗느냐?”고 거절했다. 동화 <강아지똥>과 <몽실언니>를 쓴 권정생 선생은 어린이들의 영원한 벗이자, 평화와 생태주의 주창한 선각자였다.

그런 선생의 책이 불온도서에 선정되었다. 하늘나라에서 권정생 선생은 과연 어떤 표정을 지을까? 10억원의 인세를 북쪽 굶주리는 아이들과 중동 아프리카, 티벳 아이들에게 주라는 유언이 담긴 유언장에서 그는 “얼간이 같은 폭군지도자” “전쟁”이 여전하다면, 정녕코 환생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밝힌 바 있다.

그렇다면 작고한 권정생 선생의 책을 비롯해 진실을 밝히고 진리를 주장하는 책 23권을 불온서적으로 낙인찍은 이 도착된 시대, 과연 얼간이 같은 지도라란 누구일까? 이런 사태를 수수방관한 이명박 대통령일까? 아니면 얼빠진 군인들 가운데 한 명일까? 참 슬픈 세월이 되었다.

각설하고 이런 권정생 선생을 비롯해 우리시대의 스승으로 불릴만한 아홉 분의 자화상을 그린 <나의 스승, 시대의 스승>(솔과학)이 출간됐다. 진정한 스승이 없다는 시대, 진정한 스승의 면모를 보여주는 아홉 분은 바로 권정생, 김민남, 김종철, 백낙청, 염무웅, 이오덕, 임헌영, 전우익, 천규석 등이다.

이 책은 현재 경북외국어대학교 교수로 있는 김용락 시인이 오랜 세월 아홉 스승을 모시면서 직접 보고, 듣고, 나눈 이야기와 또 저자가 각종 매체에 발표했던 인물평, 서평 등을 한 권으로 묶은 것이다. 비록 저자와의 사적 인연에 의해 활자화되긴 했지만 아홉 스승의 이름이 던져주는 무게가 결코 범상치 않다.

우선 지난해 타계한 아동문학가 권정생 선생은 우리시대의 성인(聖人)으로 불릴 정도로 자발적 가난과 소외된 아이와 이웃에 대해 헌신적 삶을 사신 분이다. 저자와는 특별한 인연이 더한 듯 권정생 선생에 관한 내용은 책 전체의 1/4에 이른다. 책 내용 중에 특히 눈길이 가는 곳이 있는데, 저자가 권정생 선생을 처음 찾아갔을 때를 묘사한 부분이다.

“내가 갖고 있던 문학에 대한 생각, 가령 랭보라든가 프루스트를 비롯한 영미시인, 사르뜨르의 실존철학 등에 대해 마구 떠들었다. 그게 문학인가 하듯이 한참을 무표정하게 듣고 있던 선생님은 전혀 엉뚱한 이야기를 했다. ‘광주사태 때 사람이 많이 죽었다. 수배당한 누구가 여기 와서 며칠을 머물다가 갔다. 안동가톨릭농민회나 오원춘 사건을 아느냐?”

선생에게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다.

또 이런 말도 있다.

“같은 피와 살을 나눈 민족이 어떤 사상이나 이데올로기 때문에 희생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 이념이니 사상이니 하는 것도 근본적으로는 좀더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우리 인간들이 고안한 제도이거나 정신적인 체계일 뿐이다.”

한 마디로 권정생 선생이 어떤 사람인지를 정의하는 말이다.

전우익 선생은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의 저자로 잘 알려진 재야사상가이다. 해방공간에서 국대안 반대운동과 사회주의운동으로 7년여 감옥을 살고나와 경북 봉화에서 당국의 보호관찰 속에서 평생 농사를 지으면 살았던 한국의 노신으로까지 불렸었다.

특히 이 책에서 선생은 권정생 선생과 이오덕 선생에 대한 아낌없는 애정을 드러내는데, 저자와의 병상 인터뷰에서 “시간나면 이오덕, 권정생을 그리워하는 모임 만들자. 권 선생은 자기자랑 안해. 예수가 태어나도 저렇게는 못살아.”

재야한글학자로 알려진 이오덕 선생은 이 책에서도 우리말을 망친 이는 바로 공부를 많이 배운 지식인이라면서 지식인들의 잘못된 우리말법과 글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또한 “입시제도 맨날 고쳐봐야 소용없어. 학벌보다 일 잘하고 심성 좋은 사람을 뽑아야 해. 학교 많이 다니면 사람 버려. 학교가 우리말을 버려놓았”다고 일침을 가한다.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우리시대 대표적인 실천적인 지식인이자 통일운동가로 알려진 분이다. 여느 대담과는 달리 이 책에는 6.25 직후 대구시내 거리에서 양담배를 팔았던 자신의 어려웠던 성장과정 등 평범한 학생에서 시대의 큰 지식인으로 성장하기까지 과정이 잘 드러나 있다.

염무웅 선생은 70년대 민중문학 이론가로 알려진 분이자 현재는 6.15남북문학인협의회 남측 대표다. 이 분의 견결한 문학적 태도와 인간적인 품위가 소상히 그려져 있다.

천규석 선생은 ‘한살림’운동으로 유명하고 그래 <유목주의는 침략주의다>로 우리 철학계에 노마드 논쟁을 몰고 온 장본인이기도 한다. 특히 소농(小農)을 중시 여기는 농본주의와 생태주의자로서 면모가 잘 드러나 있다.

임헌영은 분단시대 사림파 비평가로 알려진 바 있고,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으로 친일인명사전을 펴내기도 한 실천적인 지식인이다. 분단과정에 부친과 삼촌 들이 좌익에 연루돼 집안이 풍비박산 난 과정과 사범학교 졸업 후 서울에 올라와 일가를 이룬 이야기가 소상하게 나와있다.

김민남 선생은 브라질의 유명한 민중교육이론가인 프레일리에 비견되는 ‘운둔하는 한국의 프레일리’로 불릴 정도이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다른 사람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덜 유명한 분이다. 하지만 경북대 교수로서 보수적인 대구지역에서 올바른 교육이론과 실천을 겸비한 지식인으로 존경받는 분이다.

김종철 선생은 <녹색평론>의 발행인으로 한국에서 녹색생태사상의 선구자로 나서기까지의 과정이 재미있는 에피소드와 함께 풍부하게 그려져 있다. 당시 경남 마산고를 수석 입학하여 제일모직 사장이던 동향의 삼성 이병철씨가 준 털실로 자켓을 두 개 짜서 어머니와 나눠 입은 이야기에 다다르면, 인간만이 아니라 자연과의 공생공락을 주장하는 이 분의 사상의 근원이 어디에서 유래하는지 알 수 있다.

이 책을 지은 김용락 시인은 1984년 <창작과비평>으로 문단에 등단한 중견 시인으로 그는 “지식보다 지혜를 준 이 현자들을 다른 사람에게도 알리고 싶어 책을 펴냈다”고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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