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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이웃과 사소한 시비로 불화가 생기다

 

제가 이웃에게 복숭아를 선물한 사연이 있습니다. 사정을 이야기하자면 우리 집(4층) 2층에 사는 아저씨가 제 아내에게 지정 공간에 주차를 하라고 '명령조'로 이야기하다 아내와 갈등을 일으킨 사건, 안면방해에 해당하는 밤 8시~10시까지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3층의 처자에게 3번이나 찾아가 다툰 사건, 결정적으로 누군가 제 차의 열쇠구멍에 강력본드를 흘려 못 쓰게 만들어 9만원이나 들어 수리하게 된 사건이 겹치면서 저는 폭발 직전까지 갔습니다.

 

범인을 알 수 없으니 해코지를 한 사람은 잡을 수 없지만, 밤중에 소음을 일으키는 3층에 대해서는 최악의 경우 법적 조치까지 염두에 두고 일지를 작성하고 법적 절차를 알아보는 등 구체적으로 대비를 하는 단계까지 갔습니다. 법에 따르면 밤 8시~10시 사이에 소음을 의도적으로 일으킨 경우는 '안면방해죄'로 경찰과 검찰에 고발까지 할 수 있는 사안이었습니다. 이미 세 번이나 주의를 준 상황이라 강경하게 가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멈출 줄 모르는 저의 행동을 붙잡아준 것은 하나의 '댓글'이었습니다.

 

"나들이에서 돌아왔더니 주차할 공간에 옆집 꼬맹이들이 자전거며 1인용 풀장 같은 것들을 잔뜩 쌓아두었습니다. 주차를 해결하고 '꼬맹이 덕에 사람 사는 맛이 난다'며 중얼거렸습니다. 2층의 할머니는 남의 빈 밭에 채소를 가꿔 나눠 주고, 4층의 할머니는 노는 노인네가 해야지 하시며 계단 청소, 뜰 청소를 손수 해주십니다."

네티즌 '실비단안개' 님이 웃으며 함께 사는 미덕을 말씀해주신 덕에 마음이 넉넉해진 데다, 마지막으로 "두 가구의 주인을 만나면 먼저 웃어 드리세요 -^^"라는 말에 느끼는 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필승전략을 꾸몄습니다.

 

나만의 필승전략 '복숭아 선물하기'

 

우선 시장에 가서 5000원을 주고 복숭아 10개를 샀습니다. 그리고 깨끗이 씻은 후 바구니 2개에 나눠서 넣었습니다. 2층 아저씨 댁에 먼저 찾아가 초인종을 누르고 인사를 드렸더니 반가운 표정으로 들어오라고 하십니다. 시원한 차를 주시면서 악수를 했습니다. (아저씨와 이날만 악수를 다섯 번 넘게 했습니다^^) 아저씨 댁에는 미싱이 엄청 많았는데 74년부터 이 동네에 사셨다고 합니다.

 

저는 최근에 있었던 일련의 사건들을 생략한 채 인사를 드렸어야 하는데 이제야 찾아뵈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말문을 텄습니다. 아내와 주차문제로 다소 오해가 있었던 점을 사과하고 미리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이제야 말씀드리게 된 점을 거듭 사과했습니다. 그리고 명함을 한장 건네며 주차뿐만 아니라 다른 일이 있으면 연락해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아저씨는 명함이 없었는지 메모장에 휴대폰 번호와 유선전화 번호를 적어 주십니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하는 말이 "이렇게 와서 인사를 해주어서 고맙다"였습니다. 인상이 참 좋은 분과 좋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저도 기분이 좋았고, 웃으면서 헤어질 수 있어서 더 좋았습니다.

 

3층의 처자는 퇴근 후 일이 있어서 그런지 집에 없는 눈치였습니다. 전에 받아두었던 명함으로 전화를 해서 "드릴 것이 좀 있고 말씀드릴 것도 있고 해서요"라고 했더니 30분 후에 집에 도착한다고 합니다. 밤 10시 조금 넘어서 문자가 왔습니다.

 

"지금 오셔도 되는데요^^;;"

 

 

느낌이 좋았습니다. 통화 목소리도 그렇고 문자의 웃는 이모티콘이 이렇게 반가운 줄 몰랐습니다. 3층으로 내려가 초인종을 눌렀더니 어머니와 처자가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한눈에 봐도 매우 고왔습니다. 사람들이 얼굴을 보면 미소를 지을 수 있도록 착하게 산다면 그런 모습으로 늙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처자에게는 처음부터 인사도 없이 세 번이나 따지듯 굴어서 미안하다고 사과했습니다. 최초에 찾아갔을 때 불평을 하기보다는 웃으면서 인사를 하고 사정을 솔직히 얘기했더라면 쉽게 풀릴 수 있었을 텐데 인사도 없이 다짜고짜 따지는 모양새가 안 좋았던 점을 인정했습니다. 처자도 "저도 뭘 사들고 찾아가려고 했는데…"라며 미안하다는 눈치였습니다.

 

처자가 주스를 주었고, 어머니는 제가 사온 복숭아를 깎아 주셨습니다. 어머니도 "피아노는 그런대로 치지만 바이올린은 아직 익숙치 않아서 불편한 음색이 나온다"며 딸에게 말했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리고 이웃끼리 좋은 얼굴로 문제를 풀어나가기를 바란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알고 보니 처자는 배철수의 음악밴드 '활주로' 제42기 멤버라고 하네요. 활주로는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대학가요제 때 배철수가 '탈춤'이라는 노래로 데뷔한 전설적인 그룹사운드 아니겠습니까? 그 밴드가 아직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도 놀라웠을 뿐더러, 처자가 그 멤버였다는 사실이 참으로 반갑고 놀라웠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집으로 가서 아내와 처형에게 경과보고를 하고 "다시는 테러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공언했습니다. 아내를 안심시키는 게 우선이었기 때문이죠. 물론 테러가 다시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하지만 강경한 대응보다는 여유 있고 미소가 머무르는 방식이 더 현명한 대안이 아닐까 합니다. 한 달에 걸친 사건사고들이 '복숭아 선물'을 끝으로 막을 내렸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태그:#복숭아선물, #이웃간 불화, #주차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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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놀이 책>,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 <공자, 사람답게 사는 인의 세상을 열다> 이제 세 권째네요. 네 번째는 사마천이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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