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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96년 북한 동포들이 굶어 죽느냐 아니냐, 진실이냐 아니냐 논쟁을 벌이는 사이 65만명이 죽었고, 1997년에는 170만명이 죽었으며, 1998년 쌀이 들어가고 있는 중에도 55만명이 죽었다. 북한주민들의 소리 없는 죽음은 1998년까지 300만명의 아사자를 발생시키고 겨우 멈췄다." - 인권단체 '좋은벗들' 자료

 

그로부터 10년 후인 2008년, 북한은 '고난의 행군' 이후 다시 찾아온 기근으로 많은 사람들이 곤란을 겪고 있습니다. 이들의 아픔이 정치적인 대립관계로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습니다. 그 심각성으로 미국도 쌀 50만톤을 지원하기로 했지만, 1년에 걸쳐 나누어 지원되므로 당장 급한 아사를 막을 길이 없다고 합니다.

 

같은 민족인 우리가 나서지 않는다면 10년 전과 같은 대량 아사사태를 막을 길이 없습니다. 지난 6월부터 제가 자원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수행공동체 정토회와 제3세계 구호단체인 한국JTS는 현재 굶주리는 북한동포를 살리기 위해 '미안하다 동포야 연예인 릴레이 인터뷰', '한반도 화해와 평화를 위한 100만인 서명운동', '24시간 릴레이 기도' 등의 다양한 캠페인을 전국적으로 진행해 왔습니다.

 

정토회는 오래전부터 소박한 삶을 살자는 '적게 먹고, 적게 입고, 적게 쓰는' 운동을 통해 가난한 나라의 어린이를 돕는 '나눔'을 실천해 왔습니다. 또 음식물을 남기지 않는 '빈그릇운동'과 인도·필리핀·북한 어린이들을 위한 '모두 우리아이입니다'라는 캠페인을 꾸준히 진행해 왔습니다. '적게 쓰는 소박한 생활로 가난한 이웃과 나누는 삶'은 이제 정토회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가 살아가야 할 길이고 남과 북을 더불어 살리는 길입니다.

 

저는 여기에 동의하는 뜻에서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100만인 서명과 모금캠페인, 릴레이 기도에 동참을 하고 있습니다. 몇차례의 거리캠페인 경험들을 나누어볼까 합니다.

 

7월 25일, 홍대입구 전철역에서 나는 울었네

 

지난 7월 23일 전화 한 통이 걸려왔습니다. 청년정토회 이성희씨였어요. "명상수련 참가로 인해 25일(금요일) 저녁에 거리 모금할 사람이 없는데 해줄 수 있느냐"는 내용이었죠. 저녁에 별다른 일정이 없어 흔쾌히 그러마고 대답을 했습니다. 막상 당일이 되자 쏟아지는 비, 야근으로 마음이 어지러워졌어요.

 

10시에 예정된 릴레이 기도를 하려면 9시 전에 모금을 마치고 출발해야 하는데… 7시가 넘어도 할 일이 남아 있어 퇴근이 늦어지고, 배도 고프고…. 굶어죽는 동포를 위한다는 마음보다 나의 배고픔이 내 마음에는 우선 순위를 차지하고 있더군요.

 

8시가 넘어서야 홍대입구 전철역 2번출구 인근 버스정류장에 도착했습니다. 쏟아지는 빗속에서 '미안하다 동포야' 모금통을 들고 사람들에게 다가섰지요. 비오는 날 모금을 하면 가장 어려운 분들이 우산으로 막아서는 분들이에요. 마음에 우산을 씌어버리면 다가서기 여간 곤란한 게 아닙니다.

 

10분쯤 시간이 흘렀을까? 모금통도 젖고, 전단지도 젖고, 가방도 젖고, 옷도 신발도 젖었습니다. 마음도 젖어 들어갔습니다. 북한 동포들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면서도 간절하고 자비로운 마음보다는 외면하는 모습에 섭섭해 하는 마음이 커졌습니다. 괜스레 외로운 마음도 들기 시작했고요. 춥고 배고픈 내 상황, 자기연민에 헤엄을 치다 30여분이 지나서야 정신이 차려졌습니다.

 

거리에 서서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멍한 눈빛, 피곤한 어깨, 사람들은 어쩌면 북한동포보다는 자신에게 따뜻한 한마디를 건네주기를 바라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조금 목소리를 낮추고 미소를 지어보이며 가볍게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꼭 도와달라는 것보다 북한 상황을 알아 주기만 해도 고맙다는 마음으로 말이죠. 편안한 저녁시간 되셨으면 좋겠다는 인사도 붙여보았습니다. 한결 제 마음도 가벼워졌어요. 40여 분간 모금을 한 끝에 2만원 남짓의 돈이 모아졌습니다.  평소엔 그리 크게 느끼지 못했던 돈이었죠. 천원 지폐와 동전들이 모이니 200만원처럼 크게 느껴졌답니다.

 

8월 6일, 홍대 앞 놀이터에서 북한 향해 촛불을 들다

 

8월 6일 수요일 저녁 7시, 홍대 앞 놀이터. 마포촛불연대의 8번째 촛불집회가 열린다는 정보를 입수하였습니다. 이제 촛불집회가 지역단위로 이뤄지고 있다는데 분위기도 궁금했고, 북한 돕기 서명을 받아볼 요량으로 참석했습니다. 역시 회사가 늦게 마쳐 부랴부랴 갔더랬지요. 평일 저녁이었지만 홍대는 방학을 맞은 젊은이들로 인산인해였습니다. 특히 놀이터에는 8월 8~9일 이틀에 걸쳐 열리는 티베트 난민을 돕기 위한 자선 공연인 '세이브 티베트 페스티벌' 홍보를 위해 뮤지션들이 공연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 둘 모여든 20여명의 촛불모임 참가자들은 촛불을 들고 둘러앉아 자유발언을 하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조금씩 달랐지만 자신의 마음을 꺼내고, 그것을 들어주는 사람들의 눈빛이 아름다웠습니다. 공연하는 뮤지션들의 음악소리와 관객들의 환호가 터질 때면 말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사람들은 음악도 기쁘게 받아들였습니다. 곧 100일이 되는 촛불집회가 진화하는 모습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집회가 시작되었지만 저는 놀이터를 돌아다니면서 서명을 받았습니다. 고3 수험생부터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주부들, 놀이터에서 장난감 노점을 하는 예술가 아저씨까지…. 북한을 돕자는 이야기에 선뜻 서명을 해주었습니다. 더위가 식지 않은 저녁, 노래와 춤이 있는 홍대 놀이터에서 신명나게 서명을 받았지요. 날이 어둑해지자 촛불을 든 사람들 사이에 앉았습니다. "저는 북한 동포들을 위해 촛불을 들고 있습니다"라고 자유발언도 했습니다. 한 시간 남짓하고 68명의 서명을 받았습니다.

 

 

북한 동포의 어려움을 돕기 위해 거리로 나섰지만 그 속에서 일렁이는 제 마음을 바라보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듬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오늘 저녁에도 릴레이 기도를 하러 서초동 정토회관에 나갑니다. 굶주리는 북한 동포를 위해 마음을 모아 기도하고 오겠습니다.


태그:#촛불집회, #마포촛불연대, #북한동포 돕기, #한반도 평화, #정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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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람을 만나는 이유는 나를 찾기 위함이고, 내가 글을 쓰는 이유도 나를 만나기 위함이다. 그리고 그런 나에 집착하지 않은 삶을 살고 싶다. "만남도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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