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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첫 날의 고단함은 어디에 묻어두었는지 이른 아침 6시부터 다시 순례는 시작되었다. 물집 잡힌 발에 실을 꿰고, 부어 오른 발에는 붕대를 칭칭 동여매면서 순례길은 이어진다.

 

힘든 고행 길이지만, 마을을 지날 때마다 격려와 응원의 눈짓, 미소, "힘 냅써!" 한 마디가 기운을 북돋운다. 첫 날 애월을 지날때에는 어느 아주머니가 참외를 선뜻 들이밀더니, 둘째 날 모슬포를 지날 때는 약국하신다는 어느 분이 순례단을 쫓아와 박카스 두 상자를 건넨다. 산방산에 접어들 무렵에는 대정 주민 몇 분이 손수 미숫가루에 얼음을 띄워 강정 사람들에게 한사발씩 돌리기도 했다.

 

무릉초등학교에서 휴식으로 고단함을 달래고 모슬포를 향한 여정에 접어드는 순간, 시원한 비가 내린다. 그렇고 보니 내내 무덥던 날씨가 강정사람들 순례가 시작되면서부터는 돌연 표정을 바꾸었다. 선선한 바람이 순례단의 등을 밀어 발걸음을 사뭇 가볍게도 한다.

 

바다는 왜 그리 새파랗게 하늘과 맞닿아 있는지. 어제 애월, 한림앞으로 펼쳐지던 그 바다는 지금 순례단이 지나는 이 대정, 안덕의 바다와 어떻게 다른지. 이 바다는 강정마을의 앞 바다와 어떻게 만나는지. 이 마을 사람들, 또 저 마을 사람들은 강정마을 사람들과 이렇게 만나는데. 바다는 순례단을 쫓듯 가는 발걸음 따라 끊이지 않고 출렁이고 펼쳐진다.

 

순례단에 함께하는 영화 평론가 양윤모씨는 말한다.

 

"우리의 발걸음이 바다를 만들고 있어요. 강정천의 악근천이 바다로 흘러들듯 우리의 발걸음 하나가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으로 흘러들겠죠"

 

김태환 지사는 "강정마을은 안돼!" 이런 말 절대 못한다

 

해군은 제주도 어디든지 기지건설 후보지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제주도 자체가 요충지라는 뜻이다. 다만, 강정이 수심이 깊고 기지 배후지 조성이 알맞고, 건설비용이 저렴해서 최적지라고 한다. 그러나 그 말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7년째, 안덕, 위미를 전전하다 여론조사라는 수단으로 그것도 매우 기습적으로 강정마을을 후보지로 정했을 뿐이다. 그리고 오로지 그것을 이유로 강정이 최적지라고 우기는 것이다.

 

설령, 해군이 말한대로 강정마을이 해군기지 건설의 여러 가지 적합한 요건을 갖추었다 해도, 그들에게 기지건설로 훼손될 강정의 자연은 고려대상이 아니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생물권보전지역 범섬의 생태계도, 그 아래 바닷속을 화려하게 수놓고 있을 연산호군락의 장관도, 각종 희귀종의 생물들도 전혀 고려대상이 되지 못한다. 해군기지 건설의 논리 앞에서 천연보호구역, 생태계보전지역, 생물권보전지역 같은 범주는 별 이유가 되지 않는 것이다. 8만평의 바다를 매립하는 제주도 유사이래 최대의 간척사업도 안보논리 하나면 다 메워질 태세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마을 주민들이 반대하고 있지 않은가. 그것도 스스로의 주민투표를 통해 결정한 일이 아닌가.

 

그런데도 도지사는 주민 무서운 줄 모른다. 국가논리에는 꼼짝 못한다. "강정만큼은 안돼!" 뭐 이런 한 마디 절대 못한다.

 

강정마을 기지건설, 20년 정도는 생각해야 할 것

 

최근 국회부대조건에 따른 KDI 보고서에서조차 강정마을의 자연환경이나 주민의 삶은 조사 항목에조차 포함되어 있지 않다. 오로지 크루즈항 건설이 경제적으로 타당하느냐 하는 것, 그것 뿐이다. 그것 조차도 국회에서 제시한 조건이라는 이유로 울며 겨자먹기로 하는 거다.

 

이 용역의 주체는 겉으로는 국토해양부지만, 모든 시나리오는 해군이 다 짰다. 지난 5월 국회에 갔을때 만난 국토해양부 관계자가 "해군기지 문제 뭔지도 모르고 관심도 없다. 그냥 하라니까 하는 거다"라고 했던 말이 이를 보여준다. 그냥 요식청 하청일 뿐이라는 얘기다. 그래서 KDI 타당성 조사인가 하는 것도, 자기들끼리 뭐 중요한 문제라고 불문에 부치고, 비공개로 추진하지만 걱정 마시라, 별로 알고 싶은 생각도 없고 기대도 없으니.

 

문제는 도지사는 뭐하고 있나 하는 것이다. 크루즈항 반영 안되면 '중대 결심'하겠다고 했는데, 아마 크루즈 선석 하나 만들어주는 모양새는 취할 것이다. 두고 보면 안다. 그거 받자고 중대결심 운운했다면 창피한 줄 알아야 한다. 크루즈항 해주면 강정주민들, 아니 도민들이 덥석 받을거라고 판단하는지 모르지만 그것 또한 몰라도 한참을 모르는 얘기다.

 

해군이 이토록 강고한 주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후보지를 바꾸지 못하는 딱 한가지의 이유가 있다. 그것은 건설비용이나 배후지 요건 따위의 문제가 아니다. 후보지를 바꾸면 주민의견수렴 등 새로 시작해야 하는 일의 시간 때문이 그 이유다. 해군은 이를 최소 2년으로 생각한다. 후보지를 바꾸면 또 2년이 지체된다는 것이 이유다. 이해할만 하다. 벌써 제주에서 7년이 경과하고 있으니.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한다. 강정마을에서 해군기지를 건설하려면, 2년이 아닌 20년은 족히 걸릴 것이라는 것을.

 

지금 도보순례 나선 주민들, 그냥 반대운동 차원에서 일 하나 벌이는게 아니다.

 

순례단에 함께하는 사람들 이야기

 

11살 이승민 어린이, "강정마을이 평화에요!"

도보순례를 하면서 발이 부르터도, 어른들 힘들다 말도 못하고 걷는 이유가 또 있다. 이 아이 때문이다. 11살의 승민이는 이틀 동안 쉬지 않고 걷는다. 첫 날 마지막 구간은 뒤에서 봐도 절뚝 거리는 모양새가 역력한데도 "힘들지?"하고 물으면 씩 웃기만 하는 이 아이가 여기는 왜 따라 나섰을까?  산방산 언저리에 앉아 말을 붙여보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해군기지 만들어지면요, 아빠 밭 힘들어 샀는데, 그거 빼앗길 거 같아서요"

"아! 할머니집도 걱정돼요"

 

그래도 이건 너무 힘들지 않냐고 물었다.

 

"솔직히 힘들어요, 그래도 반대하려면 이 정도는 해야죠" "그래도 방학때니까 다행이지…."

 

승민이에게 해군기지 반대하는 어른들이 평화마을 만들자고 하는데, 평화가 뭔지 물어봤다.

 

"평화요? 우리 바다요, 아 ! 강정마을이 평화예요"

 

승민이는 마라도, 우도도 걸어봤단다. 그때보다 지금이 더 힘들다고 한다. 그래도 끝까지 할거라고. 내내 곁에 붙어서 걷는 덕에, 승민이 아빠 힘들어도 말 못하겠다.

 

상명대에서 사진공부하는 서병준씨, "함께 해보니까, 주민들 심정 알겠어요"

 

이튿날 순례에 새로운 얼굴이 보인다. 상명대에서 사진공부한다는 서병준씨다. 제주를 주제로 사진작업에 며칠째 몰두하다 강정마을 사람들의 순례소식을 듣고 한 걸음에 달려왔다. 왜 제주를 주제로 삼았는지 물어 봤다.

 

"한라산이 보고싶었어요. 그런데 제주가 곧 한라산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해군기지 문제에 대해서는 알고 있는지 물어 봤다.

 

"알고는 있었는데, 구체적으로는 잘 몰랐죠. 와 보니까 여러 가지 문제가 있는 걸 알게 되었어요. 강정마을 사람들 이렇게 힘든데도 웃으며 반겨주고 하는 모습 보면서 오히려 슬픈 느낌마저 드네요"

 

우리나라를 지키는 군기지를 만드는데, 이렇게 반대하는 이유를 얼른 이해가 안갔다고도 했다.

 

"평화는 힘이 있어야 지켜야 한다는 말도 얼핏 보면 맞을 수 있어요. 그런데 평화는 구체적인 거죠. 강정마을 사람들을 보면 알아요. 마을의 평화를 깨는 그 힘이 어떻게 나라의 평화를 지킬 수 있을지 의문이 듭니다"

 

 

<고유기 시민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태그:#제주도, #강정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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