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충청도가 고향인 그는 독일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 반독재민주화운동을 벌여 관계당국의 눈밖에 났다. 귀국했지만 대학 강단에 서기가 쉽지 않았다. 그랬던 그를 작고한 고 성내운 총장이 광주대학교로 불러들였다. 지난 2006년 정년을 맞았지만, 광주대를 멀리 떠나지 못하고 전남 화순 도암면에 둥지를 틀었다.

 

"부당한 KBS 이사 사퇴를 거부해 대학에서 해임된 신태섭 교수 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는 게 유일한 감투"라며 그는 허허로운 웃음을 지었다. 이종수 전 KBS 이사회 이사장. 그는 지난 2003년부터 2006년까지 KBS 이사장을 지냈다.

 

그는 정연주 KBS 이사회의 정연주 사장 해임제청안 파동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10일 정오 무렵 <오마이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도 이 전 이사장은 이번 사태를 '한국사회 민주주의의 진전과 성숙'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하고, 분석하고, 평가했다. 

 

"정연주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내놔라"

 

정연주 KBS 사장 해임제청안 파동의 진실을 형형한 목소리로 꼬집는 초로(初老)의 언론학자. 어쩌면 그의 오늘 이 외침도 한국 역사의 한 부분이 될 것이다. 해서 서툰 오려두기 글은 아예 생략하고 그와의 인터뷰로 바로 들어가고자 한다.

 

하지만 이 말만큼은 먼저 오려두기를 해야겠다. 그가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했다는 사실만으로 바쁜 시간 내서 인터뷰 오려두기 글을 성급하게 찾을 '공인'들이 있을 테니 말이다.

 

"모든 것은 역사가 평가할 것이다. 우리가 죽고 나서도 역사의 평가는 계속될 것이고, 우리의 자손들 역시 우리를 만대로 이어가며 평가할 것이다. 그래서 특히 '공인'이라 불리는 자들은 행동을 조심해야 하고, 말 한마디 글자 하나 함부로 내뱉거나 쓰지 말아야 한다. 말 한마디, 글자 하나하나가 역사 속에서 다 평가될 것이기 때문이다…(그리곤 잠시 침묵)… 보인다고 다 먹지 마라. 내 것 아니면 먹지 마라!"

 

다음은 이종수 전 KBS 이사장과의 일문일답이다.

 

- KBS 이사회가 감사원이 권유한 해임 제청안을 의결했다.

"방송법을 보면 KBS 사장에 대한 임명권만 있지 임면권이 없다. 이사회가 해임 제청안을 의결했다는 그 자체가 위법이다. 임면권을 뺀 건 권력자의 직권남용 소지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법에도 없는 권한을 이사회가 행사한 것이다. 명백한 위법이다."

 

- KBS 이사장의 요청에 따라 이사회 의결이 있던 날 공권력이 투입됐다.

"나도 KBS 이사장을 지냈다. 본관에 공권력을 투입할 정도로 첨예한 국가 안위를 위협할 사안이 있었나? KBS 이사회는 권력기관이 아니다. 국민을 대표해서 방송을 잘할 수 있도록 감시견제하고 도와주는 것이 이사회의 근본목적이다. 공권력을 투입해서까지 이사회 결정을 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이사장을 지낸 사람으로서 대단히 유감스럽다.

 

나는 이사회 의결할 때 100% 합의제를 원칙으로 했다. 거수하는 경우가 거의 드물었다. 거수하더라도 사장선임 문제는 중대 사안이기 때문에 의결까지 갔다는 자체가 모순이다. 법에도 명시가 없고 다른 이사들이 반대 의사를 표하고 나갔는데도, 친여 성향 이사들만 남아서 딱 올림픽 개막식날 공권력 비호 아래 의결했다? 법적 모순 이전에 이명박 정권의 통치철학을 노출시킨 전형적인 예로 기록될 것이다. 탈법정치의 신호탄이다. 위험스러운 일이지만 그나마 국민들이 미리 감지한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 이명박 정부는 정연주 사장의 경영부실 등을 이유로 해임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정연주 사장이 무엇을 잘못했는가? 그것을 구체적으로 내놔야 한다. 경영부실을 필요한대로 해석한다면 나 역시 간단하게 방안을 얘기할 수 있다. 수신료를 대폭 인상하면 된다. 수신료가 1981년부터 월 2500원이다. 유럽·일본에선 한국의 8배·10배를 받고 있다. 그 나라들은 방송국 경영을 여타 기업과 비교하지 않는다. 독일은 회계연도를 1년이 아닌 4년 단위로 한다. 경영이 악화될 수 있고 호황될 수도 있고, 또 방송장비는 엄청 비싸고 수시로 바뀌기 때문이다.

 

이윤만 따지면 한편에 500억·600억 들어가는 대하드라마 안 찍으면 된다. 그럼 손해는 누가 보나? 국민이 본다. 방송국의 경영평가라는 것은 보통 회계법인에서 하는 평가와 차원이 다르다. 박권상 KBS 사장 시절 엄청난 돈을 주고 컨설팅을 했는데 무효됐다. 일반기업의 경영논리론 방송 철학에 접근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공영방송 경영평가는 대단히 어려운 것이다. 방송문화와 철학, 국가정체성 등이 함께 평가되어야 하는데 회계상 수치로는 그런 것을 계산 못하기 때문이다. 공영방송은 일반 사기업이 아니다. 그렇게 평가한 회계수치도 틀렸다고 KBS는 반발하고 있지 않나."

 

"정권은 바뀌어도 공영방송은 바뀔 수 없다"

 

- 여권은 정연주 사장을 해임해서 KBS를 '국민의 방송'으로 돌려준다고 주장한다.

"매일매일 데이터가 나온다. 평균적으로 약 15위까지 KBS가 1등을 한 적이 많았다. 만약 부실 방송하고 편파방송 했으면 국민들이 봤겠나. 오히려 제가 보기엔 보수적 국민들이 많기 때문에 KBS는 상당히 보수적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조금 진보적 방송은 3%나 될까.

 

중요한 건 보수·진보를 떠나 KBS가 방송을 잘한다는 것이다. 일례로 <차마고도> 같은 수작이 나왔는데 KBS 아니면 못해낼 작품이다. 방송을 잘하는 이유는 첫째는 구성원들이 헌신적이다. 서양 사람들 그렇게 못한다. 둘째는 기술력이 좋다. 셋째는 노하우가 있다. 이 삼위일체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KBS가 영국의 BBC, 일본의 NHK와 함께 세계 3대 공영방송 중 하나라는 평가를 받는다.

 

정연주 사장 경영이 무엇이 방만했다는 것인가? 검찰·감사원·국세청이 다 나섰지만 정 사장 개인비리 하나 나왔나? 정 사장을 반대하는 KBS 내부 구성원들조차 인정하는 사실이다. 정 사장이 너무 검소해서 본부장들이 불편하다고 한다. 차도 큰 거 팔아버리고, 식사도 지나치게 검소하게 하고…. 그리고 KBS는 수천 명이 참여하는 시스템인데 공권력에서 (정 사장 책임이라고) 주장하는 건 너무 억지스럽다. 정 사장만 내쫓으려는 게 아니라 방송을 장악하려는 포석임이 분명한 것이다."

 

- 정권이 바뀌었으니 당연히 사장을 교체해야 한다는 이들도 있다.

"공영방송은 정권의 방송이 아닌 국민의 방송이다. 공영방송은 공영성이 생명인데 착각하는 것이다. 정권은 공영방송을 시녀로 만들고자 하는 욕망이 다 있다. 그러나 정권은 수십 번 바뀌어도 공영방송은 그대로 있어야 한다. 공영방송은 그 나라의 정체성이다. '정권 바뀌었으니 사장직 내놔라' 하는 것은 무지의 소치고, 후진국가에서나 일어날 일이다. 저 사람들 불쌍하다. 자기 무덤을 파는지도 모르고, 조그만 이득에 집착하고 있다."

 

 - 그렇다면 왜 이명박 정부가 KBS사장 교체에 집착하는 것 같은가.

"역설적이게도 KBS가 건강하고 유익한 방송을 했기 때문이다. 보수세력들은 '잃어버린 10년'이라며 모든 것을 뒤집으려 하고 있다. 특히 방송 때문에 두 번이나 정권을 놓쳤다고 주장하면서 집착한다. 시청자 중엔 보수도 있고 진보도 있다. 자기 맘에 안 드는 방송을 했다고 '방송 잘못했다'고 얘기하는 것은 국민을 우롱하는 소리다.

 

박정희 유신정권도 전두환 5공정권도 총칼로 밀고 들어왔는데…. 정권장악했다고 공권력을 악용할 수 있겠지만 우리 국민들은 5공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저들이 후회할 날 올 것이다. 역사는 발전하기 마련이고 정의의 편에 서기 마련이다."

 

"지금 공영방송은 '준 독립군'이 되어야 한다"

 

- 이번 사태를 지켜보며 가장 우려하는 것은 무엇인가.

"민주주의 역사를 되돌리는, 매우 유감스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또 우린 시간이 없는데 국력을 낭비하는 비상식적인 일이 일어나 억울하다. 외국이 우릴 얕잡아보는 빌미를 주는 것이다. 국제무대에서 '너희는 언론자유도 파괴시키지 않냐'하면 '인정한다, 하지만 도와달라'고 또 얘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얼마나 창피한 일인가. 국민들이 인격적으로 무시당하는 것이다. 국제사회에선 돈 많다고 존경하지 않는다. 정치철학이 없는 정권 때문에 중요한 시기를 허송하게 된 건 재앙이다. 정치문화가 땅에 떨어지면 결국 손해 보는 건 경제다. 비싼 돈 들여 문화사절단 파견하는 이유가 뭐겠나. 이명박 정권이 자신들의 어설픈 정책으로 미칠 영향을 잊고 있는 것 같아 유감스럽다."

 

- 그렇다면 한국 공영방송은 앞으로 어떤 길을 가야 하나.

"아직 한국은 완벽한 민주사회는 아니다. 민주화의 과도기적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발전할 수도 퇴보할 수 있다. 불행하게도 일부 세력들은 기득권 수호를 위해 근시안적 사고를 하고 있어서 국민들의 거시적 혜안이 필요한 때다. 이를 책임질 집단 중 하나가 공영방송이다. '준 독립군'같은 사명감이 필요한 때다.

 

훌륭한 공영방송은 직원들만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다. 국민의 전폭적 지지가 있어야 한다. 프로그램 하나 둘 놓고 간섭하는데 좀 더 잘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하부구조와 인프라는 어느 정도 구축돼 있다. 경제적인 여건은 수신료 인상을 통해 방송만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또 방송제도를 바꿔서 유럽 경영위원회처럼 정권으로부터 완전독립된 체제로 최대한 자율권을 줘야 한다. 창조적 발상이 보장되는 시스템 구축해야 한다.

 

국민들의 이해에 따라 운영되는 독립적인 기구로 거듭날 때, 공영방송도 살고 한국 민주주의도 건강하게 정착할 것이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다시 한번 부탁하건대 이 사람들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된다. 그대로 둬라. 공영방송을 둘러싼 감시기구가 너무 많다. 규제 기구를 대폭 축소시켜라. 방송이란 정신적 활동인데 규제가 심하면 창의성이 상실된다. 이사회, 자체 감사팀, 감사원, 기획예산처, 국회 등 감시기구만 열몇 군데다. 감사 준비하다가 프로그램 못하는 웃지 못할 경우도 많다. 그 손해는 결국 국민이 본다. 구성원들을 믿어라. 자체 감사만으로 충분하다.

 

그리고 모든 것은 역사가 평가할 것이다. 우리가 죽고 나서도 역사의 평가는 계속될 것이고, 우리의 자손들 역시 우리를 만대로 이어가며 평가할 것이다. 그래서 특히 공인이라 불리는 자들은 행동을 조심해야 하고, 말 한마디 글자 하나 함부로 내뱉거나 쓰지 말아야 한다. 말 한마디, 글자 하나하나가 역사 속에서 다 평가될 것이기 때문이다…(잠시 침묵)…보인다고 다 먹지 마라. 내 것이 아니면 먹지 마라!"


태그:#KBS, #정연주, #이종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