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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도에 나홀로 입학생이 있다면서요?"

"금메 누굴까? 잘 몰겄소."

 

백야도 섬마을 마을 분들에게 물어물어 찾아갔습니다. 전남 여수 화정면 안일초등학교 백야분교 교정입니다. 벚나무 고목이 홀로 교문을 지키고 서있습니다. 아담한 교정의 작은 운동장에는 미끄럼틀과 철봉이 멀뚱하니 방문객을 맞이합니다. 건너편에는 하얀 아치형의 백야대교가 학교를 굽어보며 위용을 자랑합니다.

 

땡볕에 말라버린 교정의 연못가에는 오줌 누는 아이를 한 소녀가 손가락을 입에 물고 호기심으로 바라보는 석고상이 있습니다. 어딘가에서 아이들의 낭랑한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성경책을 들고 백야도교회로 가는 주찬이 형제입니다.

 

 

겁나게 야물고 싸나운 1학년

 

강주찬(8·안일초등 백야분교1년) 올해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한 나홀로 입학생입니다. 주찬이를 처음 만난 순간 왠지 모르게 죄를 지은 듯 착잡하기만 합니다. 좀 더 빨리 알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교차하는 순간입니다. 그랬더라면 더불어 입학식에 참여해 소서노 선생님과 함께 수업도 하고,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 때문입니다.

 

이제나마 만나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주찬이에게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좋은 예감 때문입니다. 주찬이 엄마는 교회 가는 아이들을 불러 세웁니다. 아이들이 한 걸음에 뛰어옵니다.

 

"우리 주찬이가 겁나게 야물어요."

 

엄마는 주찬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칭찬을 합니다. 곁에서 물끄러미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형 주안(11·안일초등 백야분교4년)이는 "그렇지 않다"며 엄마의 말을 부정합니다.

 

"싸나운디~ 형까지 패."

 

그 말이 끝나자마자 주찬이는 형에게 따집니다. 이게 빌미가 되어 둘의 말다툼이 시작되었습니다. 아이들은 하찮은 일에도 다툰다더니 역시 이들 형제는 천진한 아이들입니다. 아이들은 어느새 화해하고 감나무 그늘 아래에서 웃음꽃을 피워냅니다.

 

엄마가 바라는 꿈… 외과의사, 주찬이의 꿈… 축구선수

 

 

엄마는 주찬이가 외과의사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옛날 광주의 큰 병원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엄마가 주찬이에게 바라는 꿈입니다.

 

그렇게 잘 컸으면 좋겠는데 섬에서 살며 뒷바라지를 못해줘 엄마는 항상 안타깝다고 말합니다.

 

엄마가 가슴 아픈 줄도 모른 형 주안이는 "그건 맞는 말이지"라며 대꾸를 합니다. 툭 한 마디를 던져놓고 주안이도 무안했던지 방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엄마는 "어이가 없다"며 아이의 말에 실소를 날립니다.

 

엄마와 달리 주찬이의 꿈은 축구선수입니다. 몇달 전부터 축구에 열광합니다. 박지성 선수처럼 유명한 축구선수가 되고 싶어 합니다.

 

주찬이는 요즘 축구선수의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입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새벽부터 운동장을 누비고 다닙니다. 이전에는 안 보았던 스포츠뉴스도 보고, 게임도 축구만 합니다. 형과 함께 축구를 하다 자주 다투지만 이내 또 축구공을 들고 나섭니다.

 

'드로잉' '업사이드' '페널티킥'···. 축구 용어도 줄줄 욉니다. 형은 야구를 좋아합니다. 형이 야구를 하자고 자꾸만 꼬드깁니다. 축구를 좋아하는 주찬이는 야구를 하다 금세 싫증을 내고 돌아섭니다. 세이프와 아웃을 놓고 서로 따지다 주찬이가 토라진 것입니다.

 

"꼴 났어 꼴 나."

"아니거든~"

 

주찬이는 형과 함께 학교 교정에서 여름방학을 보내고 있습니다. 주찬이네 가족은 주찬이가 다니는 안일초등 백야분교의 사택에 세들어 삽니다. 주찬이 아빠는 뒤늦게 목사가 되기 위하여 나주에서 친구와 함께 목회활동을 하며 수업을 받고 있답니다.

 

의사 될까, 축구선수 될까... 씩씩하게만 자라다오

 

엄마와 함께 멋진 포즈를 취했습니다. 주찬이는 박지성 형처럼 될 거라며 주먹을 불끈 쥐었습니다. 형과 함께 운동장에서 축구를 합니다. 운동장 너머에는 푸른 바다가 일렁입니다. 이들 형제들의 꿈처럼 넓고 푸른 바다가 끝없이 펼쳐져 있습니다.

 

주찬이는 바다를 보면서 푸른 꿈을 키워간다고 합니다. 바다를 보면 깊은 생각이 나고 맑은 바닷물도 떠오른답니다. 백야도 청정바다는 녀석의 심성을 닮았습니다. 바다에서 나는 생선 고등어와 꽁치를 특히 좋아하는 주찬이는 쇠고기를 싫어합니다.

 

"쇠고기는 씹으면 껌 같아요. 그래서 싫어요."

 

형과 엄마와 함께 섬에서 생활하는 주찬이는 이따금씩 버스를 타고 여수의 쌍봉도서관에 갈 때가 제일 즐겁습니다. 그날은 가는 내내 버스에서 엄마의 휴대폰으로 축구게임도 할 수 있고 시내에서 쇼핑도 하기 때문입니다.

 

실은 기자가 물을 때는 "숙제할 때가 제일 재미있다"고 말했다가 "엄마 말하고 다르다"고 하자 헤헤 웃으며 정정했답니다. 녀석 귀엽죠?

 

학교 수업은 2학년 형(김기원)하고 복식수업을 합니다. 나홀로 공부가 싫다며 친구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친구들을 좋아하는 주찬이는 세포리에 있는 본교(안일초등학교)에서 협동수업을 하는 날이 좋답니다.

 

"본교 가는 날이 제일 좋겠네."

"응. 재밌어요."

"여자친구도 사귀었어?"

"딱 한 명 있어요. 근데 이름은 몰라요."

 

 

주찬이는 엄마 말을 잘 듣다가도 이따금씩 게걸음입니다. 전교생이 5명뿐인 섬마을 초등학교는 형들만 있어서 지겹다며 친구들을 그리워합니다. 주찬이와 함께 교정을 돌아봤습니다. 교실 뒤의 뒤란에는 방울토마토가 빨갛게 익어갑니다. 한 바퀴를 돌아보고 나서 주찬이는 목이 마르다며 수돗물을 벌컥벌컥 마십니다.

 

경쟁자가 없어도 누구보다 열심인 주찬이. 최고가 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는 주찬이의 유일한 경쟁자는 주안이 형입니다. 엄마의 말에 의하면 주찬이는 형을 이기고 싶어 몸부림을 친다고 말합니다.

 

가을 하늘은 주찬이의 꿈처럼 높고 푸르기만 합니다. 텅 빈 교정에는  태극기가 가을바람에 펄럭입니다. 무궁화 꽃도 활짝 피었습니다.


태그:#나홀로 입학생, #백야도, #안일초등학교 백야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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