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는 올 한 해 동안 연중기획으로 '쓰레기와 에너지'를 다룹니다. 지난 5월 '친환경 결혼'을 주제로 쓰레기 문제를 다뤘고 6월~8월엔 '쓰레기 이동을 막아라'란 주제를 통해 쓰레기 감량과 재활용 없이는 결국 쓰레기 절대치가 변함 없다는 점을 확인할 계획입니다. 이번엔 오마이뉴스 사무실 안에서 쓰레기 줄이기 실험을 한 결과를 공개합니다. [편집자말] |
처음부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옛 어르신들이 습관을 바꾼다는 게 천하를 도모하는 것보다 어렵다고 하지 않았나.
오랫동안 지켜본 결과 <오마이뉴스> 직원 대부분은 '손 컵'을 써서 양치질을 했다. 컵을 들고 다니는 것보다 편리하기도 했고, '물이 얼마나 낭비되겠어'라는 생각도 있었던 듯하다.
직원 대상으로 실험을 하기 전 몇 사람에게 슬쩍 분위기를 떠봤다. '제대로 안 될 것'이라는 반응이 절대 다수다. 애초부터 패배의 먹구름이 짙다. 패배하리라 생각하면서도 길을 나선 프로도(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절대반지를 파괴하기 위해 나선 호빗족, 맨몸으로 악의 왕국을 찾아간다)의 심정이 이랬을까.
지난 4일(월)부터 10일(일)까지 실험을 한다는 공지를 띄웠다. 문제는 사람들이 '양치 컵'을 제대로 쓰는지 어떻게 확인하느냐는 것. 점심시간마다 화장실에 서서 눈을 부라리며 쳐다보면 가장 확실하겠지만, 그럴 순 없다. 내가 게슈타포가 아니고, 직원들이 유태인이 아니지 않은가. 나도 제대로 실천 못하는 주제에 이런 감시는 온당치 않다. 게다가 감시하는 분위기로 반짝 효과를 볼 순 있겠지만 얼마나 오래 가겠는가.
누군가 CCTV 설치를 이야기했지만, 아 이것은 인권침해 소지가 있다. 부당한 방법으로 목적을 정당화할 수는 없는 법이다. 게다가 설치비용은 누가 낸단 말인가. 해서 개별 면담을 통해서 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살펴보기로 했다.
습관 바꾸기의 어려움, 양치 컵을 쓰는 사람이 안 보인다
드디어 실험 첫째날. 양치 컵에 물을 받아서 쓸 때와 흐르는 물을 쓸 때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비교를 했다. 직접 양치질을 시작했고, 바로 옆에서 같은 시간동안 바가지에 물을 받았다. 모두 세 차례 비교를 했는데, 2배, 3배, 5배라는 결과가 나왔다. 평균 3.3배. 세 번 다 물을 콸콸 틀지 않았음에도 어쨌든 물 컵보다는 물을 많이 썼다. 실험참가자는 옆에서 쳐다보고 있으니까 평소처럼 못쓰겠다고 푸념을 했다.
물을 콸콸 트는 사람이 참여했다면 격차는 좀 더 크게 나왔을 것이다. 시민단체가 내놓은 자료엔 10배 이상 차이가 난다는 내용도 있었다.
첫째날과 둘째날, 점심시간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며 얼마나 컵을 쓰는지를 살펴봤다. 컵을 들고 들어가는 사람이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어떡할까. 고민을 했지만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궁리를 한 끝에 화장실 벽에 '양치컵을 쓰자'는 안내판을 붙이기로 했다. <주간 오마이뉴스>를 싼 종이 색깔이 분홍색이라 제법 예쁘다. 이 버리는 종이를 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당한 그림을 골라서 글을 넣고 분홍색 종이로 출력을 했다. 제법 그럴 듯하다. 물이 튀어서 지저분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우편물을 싼 비닐을 잘라 출력물을 감쌌다. 이렇게 해서 재활용 안내판 완성.
5일 오후 안내판을 붙였다. 사람들이 화장실을 쓰면서 한 번씩 안내판을 보는 듯하다. 오로지 내 생각인 듯도 하지만.
아무튼 1주일이 지난 뒤 직원들을 대상으로 설문을 했다. 참가한 사람은 모두 30명. 그중 원래부터 양치 컵을 썼다는 사람이 5명, 공지 후에 쓴 사람이 6명, 원래 가끔 썼다는(2주에 1-2번?) 사람이 4명, 이전부터 전혀 컵을 쓰지 않았고 공지 후에도 변함이 없었다는 사람이 15명이었다.
컵 미사용파가 절대권력을 쥐고 있었지만, 희망의 불씨를 봤다. 공지 후 컵을 쓰기 시작했다는 사람이 무려(?) 6명이나 됐기 때문이다. 한 두 명이나 될까 하는 애초 걱정에 비춰보면 대단한 성과였다.
공지 후 컵을 쓴 직원 중 한 명은 "이 기회에 습관을 들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거의 매일 컵을 썼다고 자평했다. 또 다른 직원도 공지가 뜬 뒤엔 거의 빠짐없이 컵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한 직원은 "생각을 하고 있지만, 습관을 들이기 쉽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그 직원은 딱 한 번 썼다고 고백했다.
컵 미사용파 중에도 앞으로는 쓰겠다는 '전향파'가 있었다. 옳은 일이기 때문에 앞으로는 꼭 쓰겠다고.
컵을 안쓰는 이유로는 다음과 같은 의견들이 나왔다.
"컵을 쓰면 왠지 제대로 닦은 느낌이 들지 않는다. 물을 콸콸 틀고 써야 깨끗이 닦은 느낌이다.""수십 년 동안 컵을 쓰지 않았다. 습관이란 게 참 무섭다.""아직 써야 한다고 절실히 느껴지지 않는다."양치 컵만 제대로 쓰도 큰 저수지 하나 채우고도 남아
직원들이 양치질을 하면서 버리는 물을 계산을 해봤다. 머그컵의 평균 용량은 150㎖. 양치질을 할 때 물 한 컵이면 충분하다. 회사에서 실험한 결과 흐르는 물을 썼을 때 드는 물의 양이 평균 3.3컵. 약 495㎖의 물이 쓰이는 셈이니, 컵을 쓸 때보다 345㎖를 더 쓰게 된다.
하루 세 번 이를 닦는다면 1.035ℓ. 직원 전체(80명 기준)를 대상으로 하면 82.8ℓ가 된다. 1년이면 30.2㎘. 약 30톤이다. 헉, 이렇게 보니 적지 않다. 옥상에 설치하는 급수탱크(3000ℓ) 10개 분량이다.
좀 더 범위를 넓혀보자. 국민 전체(4700만 기준)가 컵을 쓰지 않고 흐르는 물에 이를 닦는다면 연 1762만5000톤의 물을 버린다는 결론이 나온다. 국내 최대 규모 간척지 담수호인 삽교호(길이 3360m, 깊이 18m)가 저수량 8000만톤이니 5년만 양치 컵을 쓰면 큰 저수지 하나 채우고도 남는다.
'티끌 모아 태산'이란 말을 이럴 때 쓰면 꼭 어울릴 듯싶다.
양치 컵 사용해서 이 정도 물을 아낄 수 있다면, 샤워기 틀어놓고 하는 양치질, 수도꼭지 틀어놓고 하는 면도질까지 더해진다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물이 그냥 버려지고 있는 것일까.
다음에는 여름 휴가철을 맞아 '자가용 대신 대중교통 이용하기'를 실험할 계획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언론재단 기획취재 지원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이뤄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