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전 10시 30분. 태안 터미널에 내리자마자 눈에 띄던 홍보 문구는 '황금의 땅 관광태안'이었다. 무더위에도 눈에 거슬리던 그 문구는 기름유출과 태안이 아무 상관없다는 듯 무심해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분명 태안은 작년 12월 허베이 스피리트호의 기름유출 사건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황금'에 비견해도 좋을 만큼 아름답고 귀한 땅이었다. 1978년에는 국내 유일의 해안국립공원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관광객 20~30% 줄었다"
2008년 8월, 태안에서 희망 같은 걸 보고 싶었다. 사람이 많이 찾으면서도 가장 가까운 시간에 도착할 수 있는 곳을 묻자 버스 매표소 직원이 '몽산포 해수욕장'을 추천해줬다.
도착하자마자 태안반도 국립공원 몽산포 분소 사무실을 찾았다. 조두행 소장은 기름유출 관련 피해가 없는지 묻자 "몽산포는 당시에 별 피해가 없었던 곳"이라며 기름피해 복구 관련 사진첩을 꺼내 보여줬다. 지난 겨울 태안 바다를 휩쓸었던 기름은 몽산포도 피해가지 않았지만, 그 피해 정도는 다른 해안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 정도였다.
"그래도 관광객이 20~30% 정도 줄었다고 봐야한다"고 말하며 "국립공원 입장료가 폐지돼서 정확한 통계를 갖고 있지는 않지만, 올해는 주차장이 꽉 찬 적이 몇 번 없었다"고 했다. 예년 성수기에는 매번 주차장이 꽉 찼었다고 했다.
발걸음을 서둘러 해변가로 나섰다. 커다란 짐 보따리와 가벼운 옷차림의 관광객들이 삼삼오오 발걸음을 서둘고 있었다. 몽산포 해수욕장으로 들어오는 자동차의 행렬도 쉼없이 이어졌다.
한숨이 절로 나는 무더위에도 간간히 부는 바람에는 짠 냄새가 몸을 섞고 있었다. '여기가 바다구나' 하는 생각에 저절로 달뜬 마음이 되었다. 탁 트인 넓은 바다와 푸른 수평선이 무더위와 그렇게 잘 어울릴 수 없었다. 조개와 작은 게들이 뻘마다 내놓은 작은 구멍들은 건강한 바다의 생명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몽산포는 50년 이상 된 넓은 소나무 숲과 탁 트인 백사장으로 유명한 곳이다. 사람들은 소나무 숲을 배경 삼아 물속에서 뛰어 놀거나 호미와 맛소금으로 조개잡는 데 여념 없었다. 여느 해수욕장과 별다른 차이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
"일부러 태안으로 왔어요"
북적이지 않고 여유로웠다. 대학 동아리 친구 4명과 함께 온 송재희(25)씨는 "일부러 태안을 찾았다"며 "뉴스 보니 부산 해운대는 많은 파라솔로 기네스북에 오른다던데, 이곳은 그 곳처럼 북적이지도 않으니 더 좋다"고 말했다.
가족과 함께 조개잡이를 하던 김 아무개(40) 씨도 "솔직히 걱정하면서 왔는데 생각보다 맑은 물에 안도감이 든다"며 "건강한 바다를 보니 뿌듯하다"고 말하며 웃음을 지었다. 그는 "지난 번 기름유출 때 봉사활동 오지 못했던 것이 마음에 걸려 휴가기간 동안 일부러 태안을 찾았다"고 했다.
몽산포 해수욕장 주변에 있던 한 횟집 주인은 "좋게 써줄 거 아니면 물어보지 말라"며 각을 세웠다. 그러면서도 "일부러 와서 먹어주는 사람도 간간히 있다"고 말하며 "그래도 점점 손님이 늘고 있다"고 했다. 민박집 주인 박 아무개씨 또한 "주말엔 방이 다 찼다"면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다.
지난 겨울 태안 바다 곳곳에 검은 상처를 남기고 있던 기름을 닦아내기 위해 백만 명이 다녀간 이야기는 '국민의 힘'이라 칭송되어지며 전설처럼 남았다. 그리고 8개월이 지난 지금, 태안의 해수욕장들은 불황 가운데서도 '희망'을 말하고 있었고, 사람들은 일부러 태안을 찾기도 하며 국민의 힘이 잠시가 아니었음을 보여줬다.
태안 시내로 나가는 버스 정류장에서 만난 강 모 할머니는 태안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표하면서도 "사람들이 계속 관심을 가져줘야 한다"며 태안의 회복을 위한 국민들의 '끈질긴 관심'을 요구했다.
태안반도 내 약 30여 개 모두의 '완전한 회복'을 위해서는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몽산포의 모래와 바다는 인간의 실수를 너른 품으로 안아주며 '회복'을 온 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러한 자연에 화답하여 몸을 맡기고 바다를 즐기고 있었다. 회복되고 있는 자연과 거리낌 없이 물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을 보며, '황금의 땅 관광태안'이라는 문구가 어색해지지 않을 날이 머지 않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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