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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우룬파(朱潤發)와 같은 복장을 하고 전신사진 옆에 선 오태근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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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9일 토요일 오후 2시. 섭씨 33도를 넘는 뜨거운 날씨에 서울 서대문구의 드림시네마 앞에는 트렌치코트를 입고 선글라스를 낀 한 남자가 나타난다. 입에는 성냥개비, 오른손에는 장난감 권총을 들었다. '영화 촬영 중인가' 싶어 주위를 둘러보지만, 카메라는 눈에 띄지 않는다.
"<영웅본색>을 너무 좋아해서 이렇게 입고 왔다"는 오태근(37)씨. "영화관에서 <영웅본색>을 다시 본다니 첫사랑을 만나는 기분이 든다. 행복하다"고 말한다.
서울에 남은 유일한 단관 극장인 드림시네마(구 화양극장)를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드림시네마는 <더티댄싱><고교얄개><벤허><미션>에 이어 올해 다섯 번째 작품인 <영웅본색>의 상영을 지난 8일부터 시작했다. <영웅본색>의 재상영과 함께 일주일 동안 영화 속 저우룬파(朱潤發)의 패션인 롱코트에 선글라스, 성냥을 물고 나타나는 관객을 무료입장시키는 이벤트를 시작한 것. 트렌치 코트를 입고 나타나는 관객들은 그 때문이다.
오씨처럼 <영웅본색>을 보기 위해 드림시네마를 찾은 관객은 오후 3시 상영인 1회에만 100여명. 6월 <미션>을 상영할 때는 하루 평균 100여명의 관객이 드림시네마를 찾았다. 이 중에는 김태양(29), 전호진(27)씨 부부처럼 지방에서 영화를 보기 위해 서울로 상경한 사람들도 있다.
"지금 광주에서 올라오는 길"이라는 김태양씨는 "어렸을 때 극장에서 보지 못하고 비디오로만 봐서 늘 아쉬웠는데 이번에 이렇게 영화관에서 상영하게 되었다고 해서 쉬는 날을 틈타 올라오게 되었다"고 말한다.
개봉작이 아니고 이미 한번쯤은 영화를 미리 본 사람들이 영화에 대한 애정으로 극장을 찾다 보니 상영 후 기립박수가 흔하게 나온다. 다른 멀티플렉스 극장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풍경이다.
올해만 드림시네마를 다섯 번째 찾는다는 김진욱씨(30)는 "단관이기 때문에 운이 나쁘면 영화를 보기 위해 1시간 이상 기다려야 하지만 그 시간이 별로 지루하지 않다"고 말한다. 실제로 로비에서 영화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손에는 책 한 권씩이 들려있다. 오늘 처음 드림시네마를 찾는다는 김한중(26)씨는 "우연히 얘기를 듣고 오게 되었다"며 "극장이 무척 아늑해서 좋다. <영웅본색>을 잘 모르지만 재미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다시 보고 싶은 옛날 영화' 보여주는 옛 극장의 풍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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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림시네마의 간판을 그리는 지하실. <고교얄개> 재개봉때 쓰였던 간판이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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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드림시네마는 재개발 구역 안에 있어 올 초 폐관될 예정이었다. 그래서 폐관 작품으로 잡았던 것이 영화 <더티댄싱>. 하는 김에 폐관 이벤트로 쓰기 위해 고물상에서 과거 <더티댄싱>이 상영될 때 쓰이던 극장표를 구해왔고 관람료도 3500원씩 받았다.
입소문을 듣고 매일 100여명에 가까운 관객들이 이어졌다. 그러던 중 애초 재개발 계획이 갑작스럽게 몇 년 후로 밀리는 바람에 올 1월까지만 상영할 예정이었던 <더티댄싱>을 4월까지 계속 상영하게 된 것. "그때부터 '다시 보고 싶은 옛날 영화'를 컨셉으로 상영작을 꾸리게 됐다"는 것이 드림시네마 김은주 대표의 설명이다.
"3∼40대 관객이 향수를 느끼는 1980∼90년대 영화로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김 대표의 말처럼 극장 곳곳에는 그 시절 '옛날 극장'의 풍모를 재생해 놓았다.
우선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손으로 그려진 간판. 영화관 지하 창고에서 세 명의 화공이 달라붙어 그린다. 극장 입구에는 과거 '너무 야해서' 사용을 금지당했던 <더티댄싱>의 첫 간판이 작게 걸려있다. 극장 안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는 극장 로비에 있는 DJ부스에서 LP로 재생하는 것. 영화를 기다리는 관객들이 신청곡을 신청하면 즉석에서 LP판을 틀어주기도 한다고.
어머니와 함께 오랜만에 극장을 찾았다는 김지윤(27)씨는 "요즘 영화관 같지 않다고 어머니께서 좋아하신다"며 "다음 작품이 걸리면 또 함께 올 생각"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영화를 보고 나가는 관객 중 "다음 작품은 뭐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DJ부스를 담당하고 있는 김현주씨의 말이다. <영웅본색>과 관련한 전시품 가운데 적지 않은 물품이 드림시네마에 관심을 갖게 된 일반 관객들의 협찬(?)이라고 한다.
김 대표는 "3∼40대가 향유할만한 문화 공간이 없는 것이 아쉽다"며 "<영웅본색>에 이어 여름에는 <영웅본색> 2편과 <첩혈쌍웅> 등 홍콩 누아르를, 11월에는 틸 슈바이거 감독의 <노킹 온 헤븐스 도어>(knoking on heaven's door)를 재개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김동환 기자는 <오마이뉴스> 8기 대학생 인턴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