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거기, 내 마음 빨래처럼 하얗게 널어놓은 수평선에 젊은 날 잃어버린 사랑이 짙푸른 파도로 출렁이고 있네. 그 짙푸른 파도, 잃어버린 사랑이 남긴 '사랑해, 영원히'라는 말이 되어 시퍼렇게 피멍 든 가슴 후벼 파고 있네. 청자 빛 하늘 돛단배처럼 떠도는 갈매기 서너 마리 그 가시나가 남긴 마지막 편지처럼 슬프게 끼룩거리고 있네.

 

거기, 그 가시나 쏘옥 빼다 박은 황옥공주가 짙푸른 수평선 바라보며 깊은 슬픔에 잠겨 눈물짓고 있네. 용트림하며 하늘로 치솟아 오르는 노송이 내민 진초록 솔잎에 눈 먼 하늘이 아야야야~ 땡볕 거품을 내뿜으며 소리치고 있네. 수평선을 물고 온 파도가 뒹구는 금빛 모래밭에 그 가시나 뒷모습 쏘옥 빼다 박은 가시나 하나 오도카니 앉아 있네.

 

오늘도 그 가시나가 삐쭘이 내민 입술처럼 빠알간 동백꽃이 피어나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동백섬. 여름을 맞은 동백섬은 울퉁불퉁 튀어나온 갯바위에 빠알간 동백꽃 대신 하얀 파도꽃을 피운다. 땡볕이 바늘처럼 따끔따끔 쏟아지는 동백섬은 짙푸른 바다에 빨래줄 같은 수평선 하나 걸어놓고 가마솥더위를 잘근잘근 씹고 있다.

 

동백꽃이 없는 동백섬. 섬 아닌 섬 동백섬엔 오늘도 동백나무가 하트를 닮은 예쁜 초록빛 잎사귀를 내밀며 가끔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땀방울을 식히고 있다. 땡겨울부터 늦은 봄까지 예쁜 동백꽃이 지천으로 피어난다 하여 이름 붙여진 동백섬. 동백섬은 그 모습이 다리미를 닮았다 하여 '다리미섬'이라 불리기도 하는 섬 아닌 섬이다.

 

 

여름엔 노송이 더 많아 보이는 섬 아닌 섬 '동백섬'

 

가을이 일어선다는 입추(7일)가 지나고 마지막 삼복더위라는 말복(8일)까지 지났지만 가마솥더위는 좀처럼 꺾일 줄 모른다. 바다… 가마솥더위를 싸악 물리치는 짙푸른 바다, 그 가시나처럼 가슴에 포옥 안겨 그대로 무너지는 파도가 절로 그리워진다. 하늘을 입에 문 수평선이 바다를 부채살처럼 활짝 펼치는 그런 시원한 바다는 없을까.

 

있다. 누구나 애인처럼 품을 수 있는 짙푸른 바다. 그냥 한번 바라보기만 해도 절로 무더위가 싸악 가시는 바다. 그 바다는 바다 밖 먼 나라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바다는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타면 5시간 남짓, 서울역에서 고속전철 KTX를 타면 3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에 있다.

 

동백섬(부산 해운대구 중동과 우동). 동백섬은 예전에는 독립된 하나의 섬이었다. 하지만 오랜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흙, 모래, 자갈이 바다를 메워 지금은 해운대 해수욕장에 있는 백사장과 이어져 섬 아닌 섬이 되고 말았다. 동백섬은 이름 그대로 예전에는 동백나무가 참 많았지만 지금은 승천하는 용처럼 꿈틀대는 멋들어진 노송이 더 많다.

 

그렇다고 동백섬에 동백나무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땡겨울부터 늦은 봄까지는 짙푸른 바다와 갯바위 사이로 툭툭 떨어지는 빠알간 동백꽃이 지천으로 널려있다. 다만 여름을 맞은 동백섬엔 동백나무보다 노송이 더 많게 보인다는 것이다. 까닭에 나그네는 이 자그마하고 예쁜 섬 아닌 섬을 겨울과 봄에는 동백섬, 여름과 가을에는 '솔섬'이라 부른다.

                   

사실, 동백나무가 많이 자라는 남해안에는 부산 해운대에 있는 동백섬과 같은 동백섬이란 이름을 가진 섬이 제법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백섬 하면 부산에 있는 동백섬을 으뜸으로 꼽는다. 가수 조용필이 부른 '돌아와요 부산항에'에도 '꽃피는 동백섬에 봄이 왔건만'이란 가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니겠는가. 

 

 

황옥공주의 슬픈 전설 깃든 작고 예쁜 섬

 

"아주 먼 옛날, 수평선 너머 인어 나라 '나란다' 왕국에서 어여쁜 공주 한 명이 뭍에 있는 '무궁나라' 은혜왕에게 시집을 온다. 그때부터 고향이 애타게 그리웠던 공주는 보름달이 뜨는 밤마다 바닷가에 나가 외할머니가 주신 황옥에 비친 고국을 바라보며 눈물짓는다. 이 공주가 가야 수로왕에게 시집 온 황옥공주, 허황옥이다." - 글쓴이 '전설' 손질  

 

지난 7월 끝자락에 홀로 찾았던 동백섬. 1999년 3월 9일 부산기념물 제46호로 지정된 동백섬에 가면 가장 먼저 눈에 띠는 것이 바닷가 갯바위 위에 앉아 턱을 괴고 앉아 있는 인어상이다. 이 인어상이 바로 황옥공주다. 이 인어상은 1974년 처음 세웠다. 하지만 1987년 태풍 셀마 때 어디론가 사라져 지금은 상체 일부만 부산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청동좌상 인어상은 1989년에 세운 것이다. 높이 2.5m, 무게 4톤. 이 인어상 앞에 가까이 서서 끝없이 출렁이는 수평선을 오래 오래 바라보고 있노라면 저만치 수평선을 헤엄치며 고국으로 달려가는 황옥공주의 예쁜 지느러미가 눈앞에 가물거리는 듯하다.

 

동백섬은 최치원 선생을 비롯한 수많은 시인 묵객들이 다녀간 역사가 서린 섬이다. 섬 한가운데 있는 동백공원에 가면 신라 끝자락 유학자 최치원 선생이 쓴 '해운대'(해운대란 이름이 여기서 비롯되었다)란 글씨가 동쪽 해벽에 새겨져 있고, 동상과 시비, 누리마루 APEC하우스 등 과거와 현재가 사이좋게 어깨를 기대고 있다.

 

 

솔솔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몸과 마음을 맡겨보라

 

해운대가 낳은 보석 동백섬에서 바라보는 수평선과 달맞이언덕, 바다와 하늘을 가로지르는 광안대교, 부산의 상징 오륙도 등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어디 그뿐인가. <동국여지승람>을 보면 '겨울과 봄 사이 동백꽃이 땅에 쌓여 지나가는 말발굽에 밟히는 것이 서너 치나 된다'고 씌어져 있다. 그만큼 동백섬은 예전부터 동백꽃이 지천으로 피고 지던 아름다운 섬이었다.

 

동백섬은 2005년 APEC 때 세계 21개국 정상들을 맞이하기도 했다. APEC 개최 때 제2정상회의장으로 지어진 '누리마루 APEC 하우스'가 그것이다.  이 섬 꼭대기에 자리 잡고 있는 이 하우스는 오전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누구나 무료로 들어갈 수 있다. 이곳에는 21개국 정상들이 앉아서 회의를 하던 좌석이 그대로 있고 마당에서 정상들처럼 기념촬영도 할 수 있다.

 

등대광장도 동백섬에서 빼놓으면 섭섭하다. 이 광장은 APEC 때 동백섬을 새롭게 만들면서 예전의 군부대 초소 자리에 세웠다. 이곳에 서면 마치 다른 나라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경치가 곱고 부드럽다. 특히 매달 열리는 '달빛음악회'에 참석해 달빛 출렁이는 예쁜 밤바다와 밤바다를 가르는 등대 불빛 사이로 흐르는 연주에 빠져보라.

 

노송 사이사이로 난 데크계단을 밟으며 바라보는 수평선과 기암괴석, 짙푸른 바다…. 예전에는 이 해안가에서 잠녀들이 짙푸른 바다에서 갓 건져 올린 해산물을 팔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모습을 볼 수 없어 조금 아쉽긴 하다. 하지만 갯바위를 때리며 묵은 체증처럼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소리, 솔향 솔솔 풍기며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그대로 해산물이 된다.

 

 

어디 그뿐이랴. 동백섬 곳곳을 예쁘게 휘감아 돌고 있는 산책로를 거닐어보라. 어느새 몸은 하얗게 부서져 내리는 거센 파도가 되고, 마음은 향긋하게 풍기는 솔향이 되고, 몸과 마음은 수평선 흔드는 짙푸른 바다가 되고, 애인처럼 앉아 있는 동백섬을 쏴아아 스치는 시원한 바닷바람이 되리라.

 

울창한 해송과 어우러지는 바다구름이 고운 동백섬. 동백섬은 낚시를 즐기는 강태공과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도 이름 높다. 이와 함께 왼편으로 눈을 돌리면 거기 금빛 모래가 따가운 햇살에 반짝반짝 빛나는 그 유명한 해운대 해수욕장이 있다. 이 해수욕장에서 바라보는 동백섬, 그 모습은 말 그대로 예쁜 동백꽃 한 송이다.

 

나그네가 마음이 울적할 때마다 찾는 파라다이스 동백섬. 몸과 마음 어느 한곳에 기댈 때 없으면 어머니가 되기도 하고, 잃어버린 사랑 찾아 애타게 술을 마실 때면 어느새 다가와 애인이 되기도 하는 그 섬 동백섬. 올 여름엔 동백섬에 가서 지친 세상살이와 찌는 듯한 무더위를 한꺼번에 싸악 날려보는 것은 어떨까.  

 

덧붙이는 글 | ☞가는 길/서울-부산, 1001번 해운대역, 1003번 해운대해수욕장, 139번, 39번 해운대시장(40분). 지하철 / 부산역에서 1호선-서면역에서 2호선-해운대역(40분)


태그:#동백섬, #황옥공주 , #해운대해수욕장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