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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와를 쌓아놓은 담장이네.”

 

정겹다. 담장이 그렇게 가슴에 와 닿을 수가 없다. 참 오랜만에 보기 때문에 더욱 더 반갑다. 얼마만인가? 언제인지 기억할 수도 없다. 시멘트 문화에 예속된 지 오래다. 내면의 욕구나 개성이 존중받지 못한 지도 아주 오래다.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잊어버리고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상황에서 기와 담장을 보게 되니,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어린 시절에 내가 살고 있던 동내에서는 이웃을 가로 막는 것은 없었다. 담장은 아예 없는 곳이 태반이었다. 있다고 하여도 대개는 돌담이었다. 사방에 널려 있는 돌을 주워다 한 켜 쌓고 그 위에 흙으로 또 한 켜 쌓은 그런 돌담이었다. 그 담장마저도 높이가 낮아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넘을 수 있는 그런 담장이었다.

 

물질적인 풍요는 누릴 수 없어도 정신적인 풍요로움은 넘치던 시절이었다. 무엇보다도 넉넉하게 만든 것은 어머니의 사랑이었다. 어머니의 따뜻한 손길을 통해 맑아진 영혼은 세상을 바르게 볼 수 있게 해주었다. 왜곡되지 않고 사실 대로 인식할 수 있게 해주었다. 얼마나 경이롭고 아름다운 곳인지를 확인하면서 살아갈 수 있었다.

 

언제부터였을까? 세상의 모습이 사실 대로 볼 수 없게 된 것이. 진실은 은폐되어지고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가식으로 넘쳐났다. 길들여지는 것이 사람이다. 물론 처음에는 부정도 하고 아니라고 강조도 한다. 그러나 시나브로 몸에 배이게 되면 스스로 인식조차 할 수 없게 된다. 거짓을 참이라 믿고 살아가게 된다.

 

 

세상은 급변하고 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분간하기가 아주 어려워졌다. 상식이 정답이 아니게 된 것은 오래 되었고 알고 있는 것이 문제의 해답이 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기존의 것에만 매달려서 버리지 못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시대에 뒤떨어지게 되고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게 되었다.

 

 현대를 변화의 시기라고 한다. 無常이 진리인 줄은 알지만, 그 속도가 너무나 빨라졌다. 익숙한 것과의 이별에 적응하지 않고는 시대에 뒤떨어지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아무리 나에게 맞고 나에게 필요한 것이라 할지라도 언제라도 그 것과 헤어질 수 있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살아야 하는 시대다.

 

 어제 마음을 잡고 있는 것도 오늘에는 미련 없이 버릴 수 있을 때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에서 살다보니, 부작용도 많다. 버리지 않아야 할 소중한 것들까지도 그 가치가 반감되어 무의식중에 버리곤 한다. 아쉽고 서운한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버리는 것에 익숙해져 있어 어렵지 않게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담장이 그것을 깨우쳐 준다. 얼마나 많은 것을 버리고 살아가고 있는지 실감하게 해준다. 버리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믿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그 것 중의 하나가 바로 담장이다. 담장은 소통을 가로막는 존재가 아니다. 그런데 그렇게 착각한 것이다. 담장은 이웃을 존중해주는 방편이고 소통의 격을 높여주는 기능을 수행한다.

 

 경계를 통해서 구분을 해주는 것은 소통을 막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하고 배려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배려의 의미는 사라지고 구분을 짓는 경계의 기능만을 강조하게 됨으로서 세상의 모습을 왜곡시키고 있는 것이다. 담장의 기능이 달라짐으로 해서 세상은 삭막해지고 고해가 되어버린 것이다.

 

 담장을 바라보면서 세상의 참 모습을 생각한다. 변화는 필연이다. 그러나 변화하는 그 자체에 선악이 존재하지는 않는다. 변화를 바라보는 사람의 의식이 단정할 뿐이다. 그런 주관적인 판단으로 인해 세상의 모습은 가려지고 굴절되어지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볼 수 없게 된다면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행복 또한 멀어질 수밖에 없다.

 

 담장을 통해서 변화를 인정하고 수용하되, 세상의 왜곡을 바로 잡을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닫게 된다. 담장을 통해 나를 들여다볼 수 있게 되고 걸어온 지난  날을 반추해보게 된다. 거짓 세상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허상에 실수하게 된다. 이제부터라도 세상의 참 모습을 직시하면서 살아가야 하겠다.<春城>

덧붙이는 글 | 사진은 충남 무량사에서


태그:#담장, #왜곡, #참, #거짓,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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