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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사물도 대하는 시간과 개인의 감정과 연령에 따라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가 보다.

나는 20대와 30대의 몇 년간을 완도와 진도에서 보낸 적이 있다. 섬까지 가는 길은 사막 같은 비포장 길이 대부분이었던 시절이었다. 시간도 지금보다는 두 배나 더 걸렸다. 더구나  바람이라도 부는 날이면 빤히 바라보고도 건널 수 없을 때도 여러 번이었다. 오직 내 생활근거지를 기분으로 판단할 때 섬은 멀고도 불편한 곳이었을 뿐이다.


사람들이 던져준 과자맛을 알고 있는 갈매기들은  먹을 것을 달라는 듯 오랫동안 배를 따라왔다.
▲ 선유도 가는 길 사람들이 던져준 과자맛을 알고 있는 갈매기들은 먹을 것을 달라는 듯 오랫동안 배를 따라왔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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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다른 섬을 만난 것은 일본 교토의 대운산 용안사(龍安寺)에서였다. 그 곳에 폭 10여미터, 길이가 30여 미터쯤 되는 공간에 모래보다 하얀 굵은 자갈을 깔고 잔잔한 물결처럼 골을 내어 바다처럼 만들고, 네 곳에 일정한 간격으로 서로 다른 자연석을 섬처럼 펼쳐놓은 정원이었다. 섬이 세상이라는 고해(苦海)를 지나는 인간의 생노병사(生老病死)를 상징한다는 설명과 함께 절제된 여백의 미가 오랫동안 여운으로 남았다고 기억한다.

그러나 절집 마당의 작은 바다에 떠있는 섬의 의미도, 용안사 모퉁이에 한국에서 건너간 동백나무가 손님처럼 서있던 풍경도 바쁜 생활 때문에 이내 잊히고 말았다.


섬과 섬이 어우러진 풍경이 차분하게 다가왔다.
▲ 선유도의 일부 섬과 섬이 어우러진 풍경이 차분하게 다가왔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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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여행을 통해 많은 섬을 보았다. 제주도는 물론 머나먼 울릉도를 일부러 찾아가기도 했고, 주마간산격인 관광이었지만 나라 밖의 섬도 다녀온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름난 곳만 찾아간 때문인지 아름다운 곳이라는 감탄은 나왔지만 감동은 없었다. 사이비 평론가들의 장단에 배경만 화려한 내용이 없는 영화를 본 느낌이 그랬을 것이다. 어쩌면 많은 것을 기대하며 적잖은 경비를 들여 찾아간 섬 풍경의 가치를 애써 돈으로 계산하는 저울질 때문에 그랬는지 모른다.

지난 7월 30일에는 선유도와 8월 8일에는 거제도 해금강을 돌아 외도를 다녀왔다. 선유도는 인간이 사는 곳이었다. 관광 철이었기 때문인지 많은 사람이 붐비는 선착장, 좁은 길에 아슬아슬하게 비켜가는 차들과 자전거의 곡예가 조금은 불안스러운 곳이었지만, 약 60개의 섬들이 조화롭게 배치가 잘 되어 있고, 수평선도 볼 수 있어 잘만 가꾸면 베트남 하롱베이 못지 않은 명소가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마디로 선유도는 멀리서 볼 때 아름다운 섬이었다.


 멋스러운 다리였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 선유도의 일부 멋스러운 다리였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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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도는 남해의 푸른 물, 부근의 해금강과 어우러져 섬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운 곳이었지만 그보다는 섬 안에 인간의 고독한 상념, 이상향을 찾고자 하는 인간의 내재적인 욕망을 그림처럼 표현한 정돈된 정원이 있어 부러운 섬이었다. 그리고 보통 사람이 이루기 어려운 집념과 노력이 돋보이는 섬이었다.

한 사람의 집념과 노력이 보였다.
▲ 섬 안의 정원의 일부 한 사람의 집념과 노력이 보였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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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번 여행은 단순히 아름답다는 차원이 아니라 지금까지 대했던 섬들보다 새로운 느낌이 있었기에 좋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그간 텃밭 가꾸기에 여념이 없다가 오랜만의 외출이었기 때문에도 그랬을 것이다. 그보다는 내 주관적 기준으로 생활의 불편함을 따지지 않아도 좋은 여건에서 섬을 찾았기 때문에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는 섬이 단순한 공간으로 보이지 않았다는 이유 때문에 좋은 여행이었다.

내 주장이 정의요 집착을 희망이라고 여기며 살았던 세월이었다. 아무리 기도를 열심히 해도 행동이 없으면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주장했던 세월이었다. 사람과 사람의 연대만 이루어진다면 맨주먹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내 옆에 많은 사람들의 존재가 나와 연결된 하나의 맥으로 연결된 거대한 산이라고만 여겼다.

그런데 섬은 바다 가운데 솟은 물리적 공간만이 아니라 고해(苦海)를 시달리는 인생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라는 사실을 나에게 보여주고 주고 있었다. 비로소 내가 하나의 섬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본 것이다. 그리고 내 안에는 감추어진 또 다른 섬이 있다는 사실을 느낀 것이다. 그랬다. 나 역시 하나의 섬이었다. 그런데도 정작 자신이 섬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살아왔을 뿐이다.


섬 안의 정원으로 가는 길에 늘어선 종려가 이국적인 정취를 풍겼다.
▲ 외도 정원의 입구 섬 안의 정원으로 가는 길에 늘어선 종려가 이국적인 정취를 풍겼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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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조망하는 선유도, 섬 안에 들어서야 볼 수 있는 외도의 모습이 내 경계 밖의 땅이 아니라 내가 뿌리를 박고 서있는 땅과 한 세상임을 알 수 있었던 까닭은 섬의 원경과 근경을 구별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리라.

이제 자연을 거슬리지 않는 섬 하나 가꾸며 살고 싶다. 섬과 섬의 간극을 메우겠다며 나를 잊고 허우적거리기보다 파도에 씻겨도 흔들리지 않는 섬이 되고 싶다. 그 섬에 찾아온 사람들이 인생을 관조하면서 번뇌와 집착과 욕심의 뒤끝이 무엇인지를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수 있는 편안한 정원을 만들고 싶다.

그러나 이순(耳順)에야 입지(立志)를 말한들 나이가 줄고, 늦게 깨달은 만큼 생명이 연장될 수 있을 것인가? 2008년 여름은 세월이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歲月不待人)는 도연명의 시구가 더 가까이 보았던 계절로 기억될 것 같다.

다시 지나온 섬들을 떠올려본다.

덧붙이는 글 | 누군가 섬은 그리움이요 기다림이라고 했다. 그런 섬의 여행 소감을 나름대로 정리하여 메모한 글이다. 되먹지 못한 인간들이 법의 이름으로 설치는 세상이라 몇 번 망서리다 써놓은 글이기에 옮긴다.



태그:#선유도, #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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