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임기 첫 해에 내놓은 광복절 경축사를 두고 '알맹이가 없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 대통령으로서는 최근의 KBS 사태를 비롯해 '강부자' 내각 논란과 미국산 쇠고기 파동 등 다사다난했던 6개월의 국정을 정리하고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이날 경축사에서 향후 국정의 청사진과 전략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못했다.
기본·안전·신뢰·법치가 선진화의 4대 키워드?... 진정성에는 의문
이 대통령의 연설에는 말 그대로 새로운 것이 없었다.
이 대통령은 '저탄소 녹색성장'을 향후 60년을 먹여 살릴 새로운 비전 축으로 제시하고 "친환경 고효율 그린카(무공해 차)를 신성장동력산업으로 중점 육성해 임기 중에 세계 4대 그린카 강국으로 도약시키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저탄소 녹색성장'은 이 대통령이 G8 확대정상회의(7월 9일)와 국회 시정연설(7월 11일) 등에서 이미 언급한 것. 그래서 기존의 레퍼토리를 포장만 그럴 듯하게 해서 재탕 삼탕한 게 아니냐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또한 이 대통령은 기본·안전·신뢰·법치를 선진화의 4대 핵심키워드로 제시했다. 그러나 안전성이 의심되는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해 오고 비리를 저지른 재벌총수들을 무차별 사면한 전력을 생각하면 이 같은 선언의 진정성이 떨어진다.
금강산 피격사건 등으로 남북대화가 사실상 단절된 상황에서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에 눈에 띄는 대북 제안이 없었던 것도 남북관계의 '답답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줬다. 역대 대통령들이 광복절 경축사에 무게 있는 대북 메시지를 던져 남북관계를 추스르는 전기로 삼았던 것과 비교하면, 이 대통령의 경축사는 더욱 아쉬움으로 남는다.
한나라당이 '잃어버린 10년'이라고 지칭했던 시기의 두 대통령이 임기 첫 해 광복절에 향후 5년을 관통할 핵심과제를 제시한 뒤 논란 속에 이를 실행한 것도 이 대통령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부수립 50주년을 기념하는 1998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장·차관급을 대표로 하는 남북 상설대화기구의 창설과 대통령 특사의 파견을 북한에 제의해 훗날 햇별정책의 씨앗을 뿌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3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우리의 안보를 언제까지나 주한미군에 의존하려는 생각도 옳지 않다"며 "앞으로 10년 내에 우리 군이 자주국방의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토대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는데, 그의 구상은 결국 '2012년 전시작전권 환수'로 현실화됐다.
반면, 이 대통령의 경축사에서는 앞으로 중점적으로 추진할 과제가 무엇인지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다. 이 대통령이 신성장동력산업으로 제시한 '그린카'의 경우 일본과 미국, EU가 이미 세계3강 체제를 구축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로서는 이들의 틈바구니에서 불투명한 사업 전망을 극복하는 게 관건이다.
민주당은 이명박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를 두고 "앞뒤도 맞지 않고 정체성도 혼란스러운 내용"이라며 "한마디로 60년대 장밋빛 선거공약을 보는 것 같다"고 혹평했다.
최재성 당 대변인은 "이 정부가 녹색성장을 주장할 논리적 타당성을 갖추려면 이산화탄소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콘크리트로 대운하를 만들겠다는 생각부터 포기해야 할 것"이라고 대운하의 포기를 압박했다.
야3당은 백범 묘소 참배... "건국절 추진 기도를 좌절 시키겠다"
이명박 정부가 '광복'보다 '건국'에 방점을 찍은 기념행사를 추진하면서 '이승만 대 김구'라는 우리 현대사의 해묵은 논쟁이 다시 촉발된 것도 짚어볼 대목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경축사에서 "대한민국 건국 60년은 '성공의 역사', '발전의 역사', '기적의 역사'였다"고 평가했다. 이는 "남북한이 각각 정부를 수립한 것이 오늘날의 분단으로 이어져 민족의 에너지가 낭비되고 있다"는 진보진영의 평가를 일축하고 남한의 정통성만을 강조한 수사로 풀이되는데, 단독정부 수립을 선택한 이승만 노선에 호의적인 보수진영과 여권의 평가와도 맞닿아 있다.
반면,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창조한국당 야3당은 정부의 건국 60주년 기념식 참석을 거부하고 효창공원에 있는 백범 김구 선생의 묘소를 공동 참배했다.
야3당의 정부 기념식 불참은 원구성 협상 결렬로 대표되는 여야 관계를 반영한 것이지만, 야3당으로서는 "완전한 독립은 곧 통일"이라며 단독정부에 불참했던 김구의 노선을 적극 지지한다는 메시지를 통해 이승만의 '건국'을 기념하려는 현 정부에 대립각을 분명히 한 셈이다.
야당들은 8·15 광복절의 명칭을 건국절로 바꾸려는 한나라당 일각의 움직임에도 불편한 심경을 감추지 않았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는 "8·15는 분명 광복절인데 이를 건국절이라고 덧씌우기를 하거나 역사를 왜곡하려는 일부 잘못된 사람들이 있다"며 "광복절을 건국절이라고 역사를 잘못 쓰려고 하는 기도는 분명히 좌절시키겠다"고 말했다.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도 "민족해방절인 8·15는 지금까지 행정부나 입법부나 국민들이 한 마음으로 기뻐하는 축제의 날이었는데 이 정부가 들어서면서 또 다른 분열을 가져오는 날로 시작되고 있다"면서 "이 정부가 통일의 역사를 부정할뿐더러 오히려 반통일적 행보를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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