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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금천구 가산동 기륭전자 전경. 조합원들이 생활하는 컨테이너 하나와 천막, 그리고 정문 옥상 위에는 단식하는 조합원들의 천막이 보인다.
서울 금천구 가산동 기륭전자 전경. 조합원들이 생활하는 컨테이너 하나와 천막, 그리고 정문 옥상 위에는 단식하는 조합원들의 천막이 보인다. ⓒ 장일호

'기륭전자'를 검색창에 넣고 새로운 기사들을 검색해 봤다. 혹여 지난 밤 사이 무슨 일이 있었을까 싶어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검색결과들을 훑다 보니 '기륭전자 2년 만에 흑자전환 성공'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눈에 띈다.

 

내용을 살펴보니 2분기 경영실적보고에서 1분기에 비해 800%에 가까운 성장률을 기록했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배영훈 대표는 생산설비의 중국 이전과 '윤리경영'을 경영안정화의 이유로 꼽았다. 그가 말하는 윤리경영은 기륭전자 노조 조합원들의 1087일째 투쟁, 65일째 단식에 대한 무관심을 보여주는, 한편으로는 책임회피와 다름없는 발언이었다.

 

요즘 기륭전자의 투쟁은 매일매일이 뉴스다. 그리고 눈물이다. 하루하루 무심히 갈아치워지는 숫자의 무거움 앞에 어떤 글로 표현해야 할지, 단어를 고르기가 너무 어렵다. 인간으로서 감당하기 어려운 비현실적인 숫자를 보면서 마음이 먹먹하다. 하루 밤이 지났으니 저 날짜들은 또 하나씩 더해져 몸집을 불려갈 것이다.

 

저는 기륭여성 노동자들을 지지합니다

 

지난 14일 오전 8시 반 서울 가산동 기륭전자로 들어가는 길. '핸드폰 문자해고로부터 시작된 1000일을 넘는 투쟁 반드시 기륭의 동지들은 생산현장으로 복귀할 것입니다', '기륭전자 동지들, 힘내십시오! 승리가 다가옵니다!' 등 회사로 들어가는 골목부터 각종 현수막들이 눈에 띈다.

 

전깃줄 높이에 매달려 있는 빨갛고 노란 색 리본에는 '회사로 돌아가고 싶다'는 내용들의 소망이 적혀 있다. 조합원들의 바람이 적혀 있는 현수막이며 리본들은 하나 같이 오랜 싸움의 힘겨움을 웅변하듯 비바람에 낡은 모습으로 닳아 흔들리고 있었다.

 

가장 마음을 물컹하게 했던 것은 '목숨을 건 투쟁으로 정규직화 쟁취하자'는 현수막이었다. 일하기 위해 혹은 정규직이 되는 것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것, 그것이 남 일 같지 않았다. 대학동기들이 공무원, 공기업 입사 시험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것도 850만 비정규직 시대에 정규직으로 일하기 위해서였다.

 

64만 1850원짜리 임금이었던 기륭 조합원들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내 친구들의 불안한 고용 문제도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막연하고 당연한 생각이 들었다. 20대의 실업문제와 기륭전자의 노동자들의 문제는 그렇게 맞닿아 있었다.

 

 내가 매고 있던 몸 자보. '우리는 기륭 여성 노동자들을 지지합니다'라는 동조 릴레이 단식 몸 자보를 매고 하루 지지 단식을 했다.
내가 매고 있던 몸 자보. '우리는 기륭 여성 노동자들을 지지합니다'라는 동조 릴레이 단식 몸 자보를 매고 하루 지지 단식을 했다. ⓒ 장일호

'우리는 기륭 여성노동자들을 지지합니다'라고 적힌 몸 팻말을 매고 나도 현수막에 같이 앉았다. 65일째 단식이라니, 어쩌면 이건 매우 선정적인 뉴스다.

 

이런 소식을 전해야 하는 현실 앞에 현기증이 일고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솔직히 하루하루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는 단식자들 앞에 '기사'를 쓰겠다고 앉아 있는 내가 가증스럽기도 했다.

 

뼈 밖에 남지 않은 사람들을 앞에 두고 따뜻한 말 대신 카메라 렌즈를 들이대고 있는 내가 미웠다. 그렇기에 '흉내라도 내야지' 싶었다. 동조단식이랍시고 기륭전자 조합원들 위하는 척하며 굶주린 얼굴로 앉아 있었지만 결국은 내 마음 편하자고 하는 이기심에 다르지 않았다.

 

또 동조 단식 참여가 '(인턴이지만) 기자'라는 말에 어울리는 행동인지는 아직도 판단하기 어렵다. 하지만 단식을 감행한 분들의 결의를 '감히' 이해하기 어렵지만, 이 문제에 대해 냉정하거나 건조할 수가 없었다.

 

단식으로밖에 치닫을 수 없었던 지난 1087일

 

박행란 조합원은 "64만 1850원의 임금도 적은 건지 많은 건지 모르고 일했다"고 했다. "아파도 쉴 수 없었고, 옆 동료와 떠들었다고 해고 당하는 직원도 있었다"고 했다. 휴대폰 문자메시지로 '내일부터 나오지 않아도 된다'고 하면 그게 해고였다. 파견노동자였던 그들은 노조를 만들었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상황에서 일하고자 하는 몸부림이었다. 그러자 뭉텅이 해고가 강행됐다. 현재 남은 조합원 30여 명은 모두 해고자 신분이다.

 

기륭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의 송경동 시인은 "조합원들은 그간 다시 회사로 돌아가기 위해 고공농성을 했고, 삭발도 했다"고 말하며 "그 외에도 1000일이 넘는 시간 동안 오만 가지 방법으로 호소해 봤지만 안되기 때문에 단식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안타깝고 조심스럽고 조마조마하다"고 하면서도 "그 결의를 이해한다"고 했다.

 

아들 전태일을 노동운동으로 잃은 이소선 어머니는 답답한 마음에 "병원에 가야 한다"고 계속 김소연 분회장을 다그쳤다. 김 분회장은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높이며 "갈 수 없다"고 강변했다.

 

그로서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걸고, '사람답게' 살기 위한 최후의 방법으로 선택한 단식이었다. 내려가야 한다면 '직접고용 정규직화'가 이뤄진 후여야 했다. 그 마음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이소선 어머님은 "너 병원 갈 때까지 나 못간다"고 실랑이를 벌였다.

 

"들여다보니 말이 안 나온다"

 

 단식하는 두 조합원에게 '병원에 가야한다'고 종용하던 고 전태일 열사의 어머님 이소선 여사.
단식하는 두 조합원에게 '병원에 가야한다'고 종용하던 고 전태일 열사의 어머님 이소선 여사. ⓒ 장일호

 문정현 신부도 단식 조합원들의 천막을 방문했다. 문정현 신부의 걱정에 김소연 분회장은 '살려고 싸우는 것'이라고 말하며 힘없이 웃었다.
문정현 신부도 단식 조합원들의 천막을 방문했다. 문정현 신부의 걱정에 김소연 분회장은 '살려고 싸우는 것'이라고 말하며 힘없이 웃었다. ⓒ 장일호

문정현 신부 또한 말을 잇지 못했다. "무슨 말을 할지, 뭘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고 착잡한 마음을 대신했다. 그런 그에게 오히려 김소연 분회장이 "살려고 싸운다"고 말하며 "신부님, 저 살 거예요"라고 힘없이 웃는다. 그는 이날 오후부터 다시 소금을 섭취하기 시작했다. "살려고 싸운다"고 말하는 그의 말 속에는 65일 단식을 버텨온 '의학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정신력이 숨어 있었다.

 

인권현장 방문을 위해 찾은 유남영 인권위 상임위원장도 "들여다 보니 말이 안 나온다"는 말로 심정을 대신했다. "묻지 않아도,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것 아니냐"고 하며 쓴 입을 다셨다. 그러면서도 "노력은 하겠지만 인권위 업무 범위에 노동관계는 빠져 있어 우리가 직접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부분이 없다"고 했다.

 

65일째 단식하는 사람을 위한 구급차는 보이지 않는데, 경찰차는 계속 주변을 배회했다. 각 시민사회단체의 지지방문 집회가 있었던 오후 4시에는 전경 100여 명이 회사보호를 위해 회사 안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현재 경찰은 움직일 수도 없는 사람에게 체포영장을 발부한 상태다. 죄목은 건조물 침입이라고 했다.

 

 기륭전자 조합원들의 지지방문과 집회가 이어지자 회사 안으로 투입되는 전경들.
기륭전자 조합원들의 지지방문과 집회가 이어지자 회사 안으로 투입되는 전경들. ⓒ 장일호

 

"사람사는 세상에선 있을 수 없는 일...우리 사회의 양심을 묻는다"

 

이날 밤, 또 한 번의 교섭이 결렬됐다. 오전 10시 서울지방노동청 관악지청으로 향하던 조합원들이 '끝장교섭'을 선언하고 갔던 터였다. 윤종희 조합원은 교섭상황을 설명하면서 "오늘 교섭이 잘 돼서 두 동지를 병원에 보내고 싶었다"고 말하며 눈물을 감추지 않았다. "누구보다 가슴 아프고 미칠 것 같은 심정"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두 동지를 단순히 내리는 것은 살리는 길이 아니다"고 했다. 그리고 "결코 두 동지를 죽이지 않겠다"라고 말했다. "동지를 옥상 아래로 내리자는 항의와 분노로 기륭과 함께 싸워달라"고도 말했다.

 

 기륭여성노동자문제 해결을 바라는 종교인 기도회 참가자들의 호소문 낭독을 들으며 울고 있는 윤종희 조합원.
기륭여성노동자문제 해결을 바라는 종교인 기도회 참가자들의 호소문 낭독을 들으며 울고 있는 윤종희 조합원. ⓒ 장일호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의 김철주씨는 김소연 분회장과 유흥희 조합원의 상태를 보고 어머어마한 병명들을 쏟아냈다. "단식으로 인해 단백질이 부족해지면 부종이 생기는데 폐에 생기는 부종이 제일 위험하다"고 했다.

 

그는 조심스레 "폐부종"을 이야기하는 한 편, "몸에 당이 부족해 뇌세포에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그 외에도 각종 피부질환과 치질 등 두 조합원의 상태를 조심스레 설명하는 그의 표정이 참담해 보였다.

 

기륭 여성 노동자 문제 해결을 바라는 종교인 기도회 참가자 일동은 "기륭전자 경영진은 물론이고 노동부와 국회, 검찰과 법원조차 당연하고 상식적이며 최소한의 수준에 불과한 기륭노동자들의 요구를 무관심과 따돌림으로 일관했다"고 일갈했다.

 

그들은 "사람 사는 세상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며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는 우리 사회의 최소한의 양심을 묻고 있다"고 했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있을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 태연자약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우리의 양심은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 태연히 윤리경영을 해왔다고 하는 자 앞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하루 종일 마음이 너무 무거웠다. "거창한 노동해방이 아니라 인간답게 살고 싶을 뿐"이라는 한 조합원의 말이 당연하고도 아팠다.

 

14일 어제 하루 참 많은 사람들이 지지방문을 다녀갔다. 그러나 모두 감히 '희망'을 말할 수 없었다. 한숨과 눈물과 걱정으로 돌아서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무거워 보였다. 나 또한 하루를 굶는 것만으로도 너무 지치고 힘들었다. 집에 돌아와 목구멍으로 쉬이 넘어가지 않는 밥을 삼키며 눈물도 함께 넘겨야 했다. 어떻게 65일이 넘는 시간을 버텨왔을까 생각하니 목이 맸다.

 

15일 오늘로서 66일째. 단식을 통해 사회의 야만을 몸으로 부딪치고 있는 저들을 오늘 저녁에는 병원으로 보낼 수 있을까. 저들을 병원으로 보내는 길은 '다시 일하게 하는 것'이다. 그 간단한 것을 우리 사회는 풀지 못한 숙제로 받아 안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장일호 기자는 <오마이뉴스> 8기 대학생 인턴기자 입니다. 


#기륭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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