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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고롱고로에서 코끼리와의 맞대결. 중남부 아프리카에는 타잔이 넝쿨을 타고 나닐 만큼 울창한 밀림이 없다.
 응고롱고로에서 코끼리와의 맞대결. 중남부 아프리카에는 타잔이 넝쿨을 타고 나닐 만큼 울창한 밀림이 없다.
ⓒ 조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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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차 과학교사의 학교생활은 무료했다. 학기 초가 되면 출석부 정리하고 좌석표 만들고 환경미화 하고, 올해도 어김없이 평균속력과 순간속력의 차이점을 설명하고 있었다.

10년째 나의 여행도 그랬다. 5개월을 준비하고 한 달씩 다니는 나의 여행은 이제 더 이상 설렘이 아닌 일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자극이 필요했다.

한참 무기력증에 시달리고 있을 때 친구가 이야기 했다.

"여행기 한번 써봐. 그렇게 준비하는데 아깝지 않니? 오블(오마이뉴스 블로그)은 어때?"
"여행기? 할 수 있을까? 근데, 오블이 뭐야?"

'오블'을 모르는데 '기사쓰기'는 어찌 알랴. 일단 회원가입을 하고 뚝딱뚝딱 글을 올리고 사진도 올리고, 내친 김에 3개를 한꺼번에 보내버렸다. 얼마 후 연락이 왔다.

"편집부 유** 기잡니다. 조수영 기자님, 여행기사를 한꺼번에 3개를 보내주셨는데 하루에 하나씩 올려주세요. 한꺼번에 보내주셔도 하루에 이어지는 여행기사라서 하루에 하나씩밖에 처리 못합니다."

<오마이뉴스>와의 인연은 이렇게 블로그와 기사의 구분도 되지 못하는 대책없는 상태에서 시작되었다. 더구나 초보 기자의 글쓰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제목에서 사진까지 좌충우돌 엉망진창이었다.

직장생활과 기자생활의 이중생활을 하는 것이 힘든 적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신뢰와 자극으로 끝까지 글을 쓸 수 있도록 이끌어 준 유 기자 덕분에 <실크로드 여행기>에 이어 아프리카 여행기까지 기사를 이어갈 수 있었다. 무엇보다 여행기를 연재하면서 여행과 과학이라는 좋은 콘셉트를 가질 수 있었다.

출판? 저 돈 없어요

사파리사이언스.
 사파리사이언스.
ⓒ 효형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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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뚱맞은 과학선생의 아프리카 여행>이 중반을 넘어설 무렵 몇몇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그 때는 솔직히 그들을 의심했다.

자비출판을 요구하거나 인세를 책으로 지급하는 바람에 자기 책을 냄비받침으로 쓰고도 남는다는 등의 이야기도 있었고, 무엇보다 이미 기사로 뿌려진 내용을 굳이 욕심을 내서 책으로 남길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러나 과학적인 내용을 좀 더 풀어서 여행책이 아닌 과학책으로 출판을 해보자는 효형출판사의 제의에 새로운 도전을 해보기로 했다.

출판사에서는 좀 더 과학적인 내용을 추가하여 원고 분량을 늘려줄 것을 요구했고, 해서 지난 겨울방학엔 10년 만에 처음으로 여행을 가지 않고 꼬박 글을 쓰며 보냈다.

<오마이뉴스>에 마지막 기사를 올린 2008년 2월, 그동안 쓴 원고와 정리된 사진들을 출판사에 보내며 이것으로 모든 일이 끝나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 때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날아오는 질문과 수정의견에 긴장하고 있어야 했다.

출판일자에 다가올수록 질문 메일은 더 자주 왔다. 그러나 야근까지 하며 매달려 있는 편집자들을 오래 기다리게 할 순 없었다. 정말이지 마지막으로 '머리말'과 '작가소개'를 써야 할 때는 도망가고 싶었다.

어느 날 갑자기 20권의 책이 배달되어서야 길고 치열했던 편집이 끝났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포장을 뜯지 못하고 한참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꿈꿔오긴 했지만 욕심내기에는 너무 요원해 보였던 일이 실제로 일어난 것이다. 모니터에서만 보았던 나의 글이 문자화되어 보니 너무나 근사해 보였다.

<사파리 사이언스>라는 책은 아프리카 여행을 하면서 보고 느꼈던 사람이야기, 동물 이야기, 과학이야기를 엮은 책이다. 남들과 조금 다른 시각으로 본 여행, 과학도 충분히 여행의 이야깃거리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예를 들어 킬리만자로를 오르면서 "왜 표범이 보이지 않을까"라는 의문이나, 세렝게티 사파리를 하면서 "왜 사자는 가젤을 싹쓸이해서 잡아먹지 않을까" "어떻게 하면 빅토리아폭포에서 더 스릴있게 번지점프를 할 수 있을까" 등 여행 중 한 번쯤 해 보았을 생각에 대한 대답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남극탐험대 가자고요? 이거 부담되네

죽음의 웅덩이 '데드플라이'. 타임머신을 타고 인류가 멸망한 지구에 혼자 서 있는 느낌이다.
 죽음의 웅덩이 '데드플라이'. 타임머신을 타고 인류가 멸망한 지구에 혼자 서 있는 느낌이다.
ⓒ 조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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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출간되고 난 뒤 나의 생활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우선 이곳저곳에서 많은 연락이 왔다. 어떤분은 114에 물어 학교 전화번호를 찾는 수고까지 하셨다. 강원도 모 대학 교수님은 아프리카에 대한 책을 보니 너무 반갑다며 강원도에 들르면 식사대접을 해주신단다.

아프리카 특히 사하라 사막을 사랑하신다는 분은 꼭 만나서 와인을 마시며 사하라 사막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하고 싶다고 하신다. 책 한 권을 읽고 이렇게 연락까지 주시다니 정말 열정적인 분들이신 것 같다.

남극탐험대에 합류하라는 연락도 받았다. 여행에 대한 주변의 반응도 부담스러워졌다. 이젠 아마존 탐험이나 갈라파고스 정도는 가줘야 될 것 같은 분위기다.

근무하는 학교의 학생들 사이에서도 어찌 알게 되었는지 소문이 퍼졌다.

"선생님, 테이블마운틴에서 진짜 울었어요?"

학기 초에 출판준비로 잘 돌봐주지 못했다는 미안함을 가지고 있는 담임에게 아이들이 건넨 말이다. 선생님이 무서워서 울고, 사기 당하고, 원숭이에게 할퀸 이야기에 아이들은 즐거워했다.

우리 반 아이들은 <사파리 사이언스> 모니터링 요원이다. 책에 대한 기사가 있으면 가지고 오기도 하고, 어느 부분은 설명이 어렵다고 고쳐달라고도 한다. 물론 책을 사면 수행평가 점수를 올려주겠냐고 물어보는 아이들도 있다.

<사파리 사이언스>가 나온 지도 어느 덧 4개월의 시간이 흘렀고, 2쇄도 찍었다. 책이 나오고 나면 뿌듯할 줄만 알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또 하나의 책임감으로 부담스럽고 걱정스러운 것 역시 사실이다.

그러나 처음 <오마이뉴스>에 문을 두드릴 때의 용기를 가지고 다시 여행과 글쓰기를 준비하려 한다. 물론 새 학기가 시작되면 바빠지겠지만 글을 쓴다는 사실이 직업에 불성실할 핑곗거리가 아니라, 매 순간순간 아이들에게 충실하고 그 과정 중에 조금씩 가슴에 맺힌 이슬을 글로 풀어가는 것이 <오마이뉴스> 기자로서 나아갈 길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태그:#사파리사이언스, #아프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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